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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드라마 Oct 24. 2023

러시아, 역사라 쓰고  무엇이라 읽는가?

-고통과 인내, 그리고 구원! -

                                            “긍지에 찬 인내 고이 간직하라”

                                          -푸쉬킨 <깊은 시베리아 광석에서>-




러시아 문화의 정문인 푸쉬킨을 열고 들어가면 러시아 역사가 등장한다. 그 역사의 첫 페이지엔 광활하게 펼쳐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와, 가혹한 추위가 불어 닥친다. 그리고 이 페이지를 읽는 이들에게 러시아는 “고통과 인내”의 역사라고 외친다.


이 외침에서 우리는 역사를 문화로 보는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흔히 역사를 사실의 기록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란 시간을 건너고, 그 시간을 파괴하면서 영원과 접촉하는 사건”이라는 야스퍼스의 주장은 문화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준거의 틀이 된다. 실제로 역사는 단지 사실을 넘어 한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개인에게 강력한 비유전적 흔적을 남겨주지 않던가?


역사는 지키는 것이다. 영토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고, 문화를 지키는 “지킴이”가 곧 역사 아니던가? 그리하여 문화로서 역사의 존재이유는 지켜온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역사를 문화로 규정하길 좋아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개척”의 역사라고 쓰고 정복이라 읽으며, 일본은 “국화와 칼”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이중성 보여주고, 중국은 “분열과 통일”의 역사에서 지속적인 뒤집힘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의 “한”의 역사는 5천년 응축된 슬픔과 폭발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미국의 학자 빌링턴은 러시아 역사를 “이콘과 도끼”라고 규정했다. 이콘이라는 종교와 도끼라는 폭력을 암시하는 이 말 속에서 강하게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고통과 인내 그리고 구원”이다!



러시아 역사의 다섯 장면!


천년 러시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보면 크게 다섯 장면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섯 사건을 계단삼아 걸어가 보자. 그곳을 걸으면 거칠지만 러시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첫번째는 988년 러시아의 “기독교 수용”이다. 동로마제국 비잔틴의 그리스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러시아는 캐톨릭의 유럽과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유럽”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 신앙의 길은 소위 “러시아 정신”의 핵심이 되고,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러시아 역사이다.


두번째는 240여년간의 “몽골의 지배” 시기이다. 흔히 서구에서 러시아가 지닌 아시아적 전제와 야만의 근원이라 여기는 이 긴 압제의 시간을 러시아는 “서구의 방패”로 몽골의 서진을 막고 “유럽의 지킴이”가 되었다는 고통의 역설을 보여준다.


세번째 장면은 300년 “제정 러시아”다. 이 시기 국토의 7배를 확장 시키면서[1],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대국으로 만든 팽창의 역사를 보여준다. 특히 나폴레옹의 정복으로부터 “유럽의 헌병”이 되어 유럽을 지키기 위한 지치지 않는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는 시간이다.


네번째 장면은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미국과 더불어 20세기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이다. 러시아는 “이념을 지키기”위해 고통스럽게 몸부림 치고, 2차세계대전에는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전체 전쟁 희생자의 절반이 넘는 2천600만명의 희생자를 낸다.[2]


다섯번째 계단이자 현재 진행형인 “새로운 러시아”는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역사는 과거의 정치이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라면 이 또한 중요하지 않겠는가? 70년간의 소련이 붕괴된 이후 “유라시아”주의로 걸어가는 “푸틴이즘”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러시아 역사 최초로 “러시아,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 푸틴 지지율의 핵심이기도 하다.


 

고통의 역사!


어쩌면 역사란 핵심적인 고통을 담아내는 일종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거칠게 바라본 다섯 장면의 1000년 역사도 러시아에게 엄청난 크기의 “고통”을 요구하였고, “희생”이 동반되었으며, “인내”를 필요로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다섯 장면을 지켜내기 위해 러시아 역사를 “시체위를 걷는 역사라고 외친 어느 시인이 말처럼, 전쟁과 통제의 역사는 러시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의 멍에, 300년간 지속되어온 농노제[3], 전제군주의 절대권력, 소비에트의 엄혹한 통제 그리고 현제 진행중인 서방의 “경제 제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단어는 여전히 고통이다. 역사를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 관성이라면, 러시아에서 아픔은 마치 관성처럼 고통 말고는 다른 궤도는 없어 보인다.


 

인내의 역사!


고통과 부딪치는 러시아 역사의 가장 큰 화두는 “인내”다. 마치 시인 츄체프가 “기나긴 인내의 땅, 너 러시아인의 땅이여”라고 노래한 것처럼 러시아의 “참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인 뿐 아니라, 서구인들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 참을 수 있는 민족”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서구인 입장에서 러시아의 인내심은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폄훼의 대상이며, 독재를 용인하고, 복종할 수 밖에 없는 러시아의 “비겁함”과 “게으름”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러시아인에게 인내심은 다른 의미이다. 그들의 “인내”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며 “소박함에 대한 자랑”이다. 뭐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의 서구인들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척박한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러시아의 인내를 비난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상실에 적응한다는 말은 삶에 강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므로 러시아의 인내는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자기 암시인 것이다.


 

구원의 역사!


고통 없는 역사가 세계에 어디 있으며, 인내하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러시아가 이 고통과 인내를 내세우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기독교 신앙”과 연결된다. 고통과 인내는 단순한 순응이 아닌 “저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러시아인의 가장 중요한 잠언에 포함된 30000개 중, 1위는 “구원”이고 2위는 “인내”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하나로 결합된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인 “인내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대상이 개인의 영혼일수도 있고, 패악한 세상일수도 있고, 세계질서 일수도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역사 문화를 “고통과 인내”라 할 때,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신화인지, 또는 강요인지 아니면 자발성인지, 노예근성인지 아니면 신앙심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이웃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우리의 시선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한”의 역사 또한 고통과 인내가 아니었던가? 누군가 우리의 고통과 인내를 게으름과 노예근성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다만 러시아인은 “고통과 인내”를 푸는 방식이 “구원”에 있고, 우리는 “한”의 역사를 푸는 방식으로 “신명”을 선택했다고 하면 족하지 않은가?


러시아는 오늘도 고통과 인내의 역사속에 있다. 푸쉬킨의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의 마지막 구절처럼 “민중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러시아의 마음이다. 에피그라프에서 인용한 “긍지에 찬 인내 고이 간직하고” 러시아가 “침묵”에서 “깨어난다”면 그때 이웃으로서 우리는 러시아를 무어라 부를 것인가? “역사는 깨어나고 싶어 하는 악몽”이라고 한 제임스 조이스의 예언이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인가?


 



[1] 이때 팽창의 역사는 주로 “모피”획득을 위한 동진정책으로, 유럽의 식민지 정책과는 상황이 다르다.


[2] 지난 500년간 러시아는 매년 한번 꼴로 전쟁에 휘말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전쟁중에서 러시아가 먼저 “침공”한 전쟁은 단지 9번이었다고 러시아는 주장한다.


[3] 1861년 러시아 농노는 해방되었다. 미국의 노예제 폐지는 2년후인 186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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