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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개의 달 Dec 25. 2018

선물하기 좋은 날

선물

고백하자면 아직 산타를 믿는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몰래 와서 선물을 쓱 넣어두고 간다는 산타 할아버지. 물론 양말에 선물이 들어있거나 머리맡에 큼지막한 리본이 달린 상자를 두고 갈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매 해의 마지막에 다음해에 내가 만날 어떤 귀한 사람이나 즐거운 일들을 주고 간다고 믿고 있다. 항상 연말마다 그 해의 가장 좋았던 일, 신기했던 일, 고마웠던 사람 등을 찬찬히 생각해보면 도저히 평소라면 생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뿅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데 마법 같은 일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작년의 산타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산타를 믿는다. 올해는 산타에게 참 많은 사람을 선물로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 든든한 동료, 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까지 정말 많이도 받았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생각지 못했던 일로, 작은 용기로 알게 된 사람들. 그래서 놓치지 않게 품에 꼭 안고 오래 걷고 싶다. 방금 막 받은 선물상자처럼.
 이렇게 선물을 받는 것도 참 행복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산타가 되어 선물을 주는 순간이 더 좋다. 크리스마스처럼 작정하고 선물을 주는 날도 있지만 나의 대부분의 선물 구입은 “그냥 네 생각나서 샀어.”다. 어떤 사람이 나의 세계에 들어와서 한 구석에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이다. 과일가게 앞에 서서 귤을 까먹으며 즐거워하던 H를 생각하며 귤을 고르게 되거나, 젤리 귀신인 B가 떠올라 서양과자할인점을 지나치지 못하고 들러보게 되는 것. 수족냉증으로 매일 손이 차가운 J와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반대쪽 주머니에 따듯한 캔 커피를 쓱 넣어주는 것. 그런 순간들이 좋다. 고를 때는 가격과 상관없이 상대만 생각하며 선물을 산다. 돈이 슬쩍 끼어들면 자꾸 계산을 하게 되니 행복과는 멀어진다. 그냥 내가 기분 좋게 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사둔 선물을 가지고 있다가 살짝 전했을 때, 미소가 번지는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웃게 된다. 히히. 행복이 별 거 있나.
 물론 생일이나 기념일처럼 작정하고 선물을 골라야 하는 순간도 있다. 내게 선물하기는 하나의 놀이 같다. 고르는 순간부터 포장해서 주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다 기쁨의 연속이다. 먼저 선물 줄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의 방을 열심히 훑어본다. 평소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 요즘 관심 있어 하는 것까지. 범위가 좁혀지면 그중 ‘내 돈으로 사기에는 영 망설여지지만 남에게 받으면 신나고 기쁠만한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고른다. 곧 뜯을 것인데 포장은 왜 하냐는 사람도 있지만 탄탄한 선물상자를 보면 누구라도 기쁠 걸! 포장리본은 이왕이면 상대가 좋아하는 색, 또는 상대에게 어울리는 색으로 고르고 할 수 있다면 내손으로 직접 포장을 한다. 마지막은 역시 카드지. 나는 소문난 악필이지만, 이때만큼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글씨를 그린다. 고른 이유부터 얼마나 고맙고 사랑하는지, 이 선물이 어떻게 당신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지 열심히 담아서 쓴다. 그리고는 눈을 빼꼼 내놓고 주변을 살피는 바닷가의 게처럼 언제 주면 좋을지 열심히 때를 살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의 반응 미리 상상하지 않기! 나 역시 오랫동안 이걸 받으면 이만큼 기뻐하겠지 하고 내 마음대로 상상해왔지만, 그것이 끝내 우리의 기쁨을 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가 내가 정해둔 반응만큼 기뻐하지 않았을 때 혼자 시무룩해하거나 반응을 강요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두근거리는 순간들을 망치는 것을 보면서 그냥 내가 준비하고 고르는 순간까지를 혼자 즐기기로 했다. 반응이 좋으면 더 기쁘고! 줬다는 사실로도 이미 기분 좋고.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부분이다.
 어떤 선물은 형태가 없어도 충분히 전달된다. 새해 아침 보내오는 일출 사진이나 크리스마스 새벽을 처음으로 알리는 전화, 가장 빠른 축하라고 날아오는 카톡 같은 것들도. 전에 누가 그랬다. 다정은 재능이라고. 어떤 방식이든 닿은 다정한 마음은 전부 충분히 설레고 고마운 선물이 된다. 밀린 마음은 있다가를 외치기 전에 한 번 더 손을 들어 슬쩍 보내본다. 늦었지만 그래도. 히히. 참, 그리고 선물 줄 때 꼭 빼놓지 않아야 할 사람에는 나도 있다. 매해 매순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열심히 파닥거렸던 내가 제일 애썼을 테니까.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따듯한 방바닥도 좋은 휴식도 열심히 선물해야지. 내년에도 잘 부탁해 나야. 하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이 밤. 아직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살포시 내리는 눈처럼 전해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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