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튼, 좀, 튀어야 한다.
머리를 기르는 일은 - 5
‘옆머리’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지? 앞머리가 아닌 ‘옆’머리. 머리를 길게 기르다 보니 ‘이걸 어쩌지?’ 할 때가 생긴다. 애매한 길이로 자라서 그냥 두자니 거치적거리고, 묶어보자니 짧아서 안 묶기는 이 머리 때문에 ‘확 그냥 전체적으로 쳐버려?’ 하며 다시 짧은 머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생기는 것이다. 이 ‘옆머리’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머리다.
앞머리는 과거에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등장했어서, 나도 알고 있었다. 앞머리가 ‘있는’ 상태는 대략 눈을 찌르지 않을 정도의 길이로 이마를 덮을 수 있는 머리가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듯하다. 이 머리가 길어지면 앞으로 마냥 내릴 수 없기에 이마 뒤로 넘겨 묶든가 가르마를 갈라서 옆으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 긴 앞머리를 늘어뜨려 눈을 가리는 - 일종의 - 멋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말이다. 근데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앞머리가 없어진다(?!). 말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앞머리는 앞머리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앞’이나 ‘뒤’는 방향이나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길이’라는 의미요소가 작용을 한다.
머리를 자르지 않은지 6개월 정도가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아예 자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번에 파마를 하면서 일부 잘렸을 테니. 시간은 어김없고, 머리가 자라는 일도 끊김이 없는 일이라, 흐르는 시간처럼 내 안에서 머리는 자꾸자꾸 밀려 나오고 그만큼 길어진다. 지금은 가르마를 가르지 않으면 머리가 눈을 덮어 시야를 가리는 상태다. - 혼자만 - 우수에 젖은 순정만화 주인공 놀이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아침이나 밤에 특히 많이 부스스한 상태인데, 이리저리 오가면서 이곳저곳 턱턱 부딪히는 일이 늘었다. 머리가 시야를 가리는 탓이다. 이것도 머리를 기르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다.
머리를 묶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머리를 묶으면서도 아직은 애매하다. 귀 쪽으로부터 양손으로 머리를 싹 훑어서 뒤로 한 손에 모아 쥐고 미리 손목에 걸어둔 머리끈으로 묶는다. 묶고 나서 거울을 보면, 머리가 전체적으로 커져있다. 양 옆으로 흘러내리는 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길이가 전혀 없진 않지만 뒤로 같이 묶일 만큼은 길어지지 않고 묶이지 않은 채 다시 옆으로 떨어지는 그 머리가 바로 옆머리다.
반곱슬인 나의 옆머리는 머리를 묶고 나면 귀 밑으로 무슨 꼬리마냥 늘어진다. 귀 뒤로 넘겨보지만 조금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흘러내려오는 머리들. 거기에다가 앞머리 중 묶이지 않은 일부까지 내려와서 점점 귀와 볼선을 덮어온다. 이 애매함. 아예 짧으면 이름 없는 머리요, 아예 길면 뒤로 묶일 머리이지만, 애매한 길이의 머리는 그 이름을 얻는다. 옆으로 자라는 애매한 길이의 머리는 ‘옆머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얻으려면 아무튼 어떤 식으로라도 좀 튀어야 된다. 머리를 기르는 일은 앞머리를 알게 하고, 또 옆머리를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