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는 진리다(?!)
머리를 기르는 일은 - 4
파마를 했다, 고 흔히 말을 하는 일을 했다, 기보다는 미용실 원장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얌전히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어쨌든 파마를 했다. 길어진 머리는 이제 웨이브를 가지고 부피를 품었다. 부푼 내 두상. 낯설다. 낯설어서 낯설다.
‘파마’ 혹은 ‘펌’이라고 흔히 부르는 그 말은 영어의 ‘permanent’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긴 단어의 앞부분만으로 줄여 말하는 식으로 ‘펌’이 된 것이겠고, ‘파마’라는 말은 아무래도 일본식 발음의 영향을 받은 말일 테다. ‘permanent’는 ‘영원한’ 정도의 뜻을 가진 영단어다. ‘헉, 머리 모양을 다듬는 일상적인 일에 이런 무지막지한 단어를 붙이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나의 생각조차 일종의 선입견이라는 것도 금세 알게 되었다. 처음 이런 이름을 붙인 사람은 -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마도 프랑스의 마르셀 그라토라 한다 - 심오한 무슨 철학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순전히 기술적인 - 그것도 조금 과장을 섞은 - 이유로 이름을 붙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하면 이걸 머리 모양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고정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 말고도 머리 모양을 바꾸는/바뀌는 일은 늘 있는 일이지 않을까? 누구는 머리를 묶고, 누구는 젤이나 왁스를 발라 힘을 주기도 하니까. 더 간단하게는 빗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빗어 넘기면 그때그때 머리 모양이 바뀐다. 게다가 바람이라도 좀 부는 날이면 매순간순간 바뀐다. 말하자면, 머리 모양은 ‘자유’로운 것이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 기록에는, 경찰들이 가위나 바리깡을 들고 다니면서 장발 단속을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거니와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두발 규정이 있는 곳이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머리 모양과 ‘자유’는 분명히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런 사정이라면, 자신의 머리를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에서 ‘억압’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나.
그래서 말이다. 이게 바로, 내가 그동안 파마를 - 그렇게 주변에서 한 번 해보라고 많은 권유를 들었지만 - 지금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좀 (나만) 멋진 이유를 뒤늦게 꾸며내 보는 것이다. ‘아니, 한 번 하면 영원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머리 모양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억압의 삶을 살아가는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뭔가 설명하기 힘들지만 파마를 하기는 싫었던 그동안의 고집 아닌 고집이 사실은 자유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라니 좀 (나만) 멋진 것 같다.
물론, 파마를 한 지금의 내 머리도 여전히 고정된 깔끔함이나 변함없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부스스하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남들의 감탄을 받는 - 자유롭기를 지나쳐 제멋대로인 그런 상태이다. ‘예술가 같다 - 락커, 베토벤 등등’ 아니면 ‘머리가… 아니, 예쁘네’와 같은 반응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대부분들 포기들하셨다. 그러니까, 금세 익숙해지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 머리에 대한 관심은 길어야 2주 정도인 것이다. 어쨌든 머리는 여전히 자라고, 또 계속 변할 것이다. 앞으로 쭉. 계속. 이것이야말로 ‘파마’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뭘 하더라도 이것은 지나갈 것이다. 이것은 변할 것이다. 이 사실만이 영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종종 머리를 볶고 지지고 빠글빠글하게 빠마를 해오던 그 많은 긴 머리 선배들은, 그렇게 permanent 하게 머리를 ‘파마’ 해도, 이 또한 변화하리라는 인생의 ‘빠마’한 진리를 먼저 터득하여 머릿결에 새겨 보이던 자들이란 말인가. 리스펙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