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 있는 머리를 푸는 순간에 대하여.
머리를 기르는 일은 (당연하게도) 내 머리를 길게 해, 때때로 나는 머리를 묶게 된다. 그러다 보면 화장실 세면대 주변에 늘 머리끈이 있는 이유, 아내가 자고 일어나서 (가끔은 자다가) 침대 위를 이리저리 손으로 쓸어 대는 이유, 머리끈이 낱개로 팔리지 않고 뭉치나 상자 단위로 팔리는 이유 같은 걸 이해하게 된다. 머리를 묶어야 편한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된 것들이다.
뭐든 걸치고 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이 그간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나마 이런 내 성향이 눈감고 봐 주어 왔던 것이 결혼 반지가 유일했는데 - 참고로, 결혼 반지는 내가 걸치는 게 아니고 그게 나를 잡아 주는 것이다 - 내가 내 머리를 가끔 묶게 되면서 오히려 쫀쫀하게 나를 - 그러니까, 내 머리카락을 - 잡아 매는 일이 나를 - 그러니까, 내 성향을 - 바꿔간다. 어설프게 머리를 묶어놓으면 금새 모양이 늘어져버리니깐. 또 내 뒤통수나 머리 위에 묶어 놓은 내 머리 모양은 내 눈엔 잘 안보이니깐.
그러니까, 신경이 쓰인다. 원래 무신경했는데. 한 번 손을 대니, 한 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머리를 잡아 이리 저리 그러모아 한 손에 잡고, 또 모아 잡고. 그걸 머리끈 안에 잡아 매고, 머리끈을 돌려 다시 매고, 또 돌려 매고. 아 좀 빡빡한데 싶어도 - 이러다 끊어지면 어쩌지 해도 - 그걸 한 번 더 잡아 돌려 매게 되는 것이다. 단단하니 잡아 묶은 머리. 곧 묶인 느낌은 사라질 것이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 묶인 머리.
그리고 나는 새로 알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머리를 묶고 있다가 밤에 머리끈을 풀면, 묶여 있던 머리 뒤쪽으로 두피 아래로 저릿저릿하니, 콕콕 뭔가가 찔러대는 느낌이 난다는 것을. 40년 만의 발견. 오오, 위대한 여성들이여, 앞서간 머리 묶기의 선배들이여. 원래 그런거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얼마나 세게 묶었느냐, 그리고 그날의 몸 상태가 어떠하냐 등에 따라 느낌의 정도가 다르다 한다. 몇 번 더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이 느낌은, 처음 머리를 기르기 전에는 생각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묘한 느낌인데,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야 하는 - 살아야 했던 - 사람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진다고 하면 오바일까.
몰랐던 세계의 낯선 느낌. 저 세계로 발을 디뎌본 나의 말을 들으라, 남편들아. 혹시 아내가 늘 머리를 ‘쫌메고(?)’ 산다면, 아내가 머리를 풀 때, 다가가서 부드럽게 머리를 마사지 해주자. 진짜 심한 날은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