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비쓰'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받을 때, 가장 좋은 것이지 않나.
머리를 기르는 일은 - 3
어느정도 머리가 자랐다 싶은지, 아내가 머리를 한 번 정리하라고 미용실에 예약을 해 주었다. 원장이 남자라서 더 잘 정리해 줄 것 같다고 했다. 자연사 모든 것이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지만,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관리 없이는 ‘자연스럽지’가 못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머리는 정확히 말하면 정말로 인위적인 머리가 아닐까. 더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더 자잘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 머리는 내버려두면 알아서 살짝 비틀어지는 소위 반곱슬이고, 한동안 머리가 자라게 내버려 두는 동안 앞머리가 눈을 찌르거나 시야를 가리는 것이 귀찮았던 나는 집에서 잘 들지도 않는 가위로 대충 앞머리를 두세번 정도 뭉텅뭉텅 잘랐으므로, 다른 곳보다 앞머리 길이만 짧은 그런 상태였다. 미용실에 도착해서 잠깐 앞손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아이스티를 한잔 얻어마셨다. 그것도 사장님이 직접 얼음까지 꺼내다가 시원하게 내줬다. 다 마시기도 전에 자리에 앉았는데, 원장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결론적으로 지금 손대기에는 내 머리 길이가 - 특히 앞머리가 -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내 앞머리는 그냥 두면 살짝 눈을 가리고, 뒤나 위로 당겨 묶자니 짧은 상태였다. 애초 머리를 기를 생각이었다면 귀찮더라도 앞머리를 자르지 말고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뒀었어야 하는 거였다. 어설픈 길이의 앞머리 끝이 눈을 찌르며 지나가는 것을 견뎌야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는 나는 당연히 몰랐지만. 결국 그냥 다음에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하고 바로 나왔다. 남아있는 아이스티 잔에 담긴 얼음이 민망해서 종이컵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나왔다. 앞머리를 내가 자른 일은 결과적으로는 시행착오가 되었다. 머리를 가지고 뭘 하려면 일단 길이가 있어야 한다. 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뭘 만들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듯이.
미용실에 들어갔다가 차만 얻어마시고 그냥 나와본 일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헤어 스타일에 관해 상담을 받고도 전혀 값을 지불하지 않은 손님을 웃으며 보내주는 사장. 이런 것이 ‘써비쓰’인 것일까.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내 머리를 모아서 뒤로도 묶어보고, 위로도 묶어보며 이리 저리 만지는 경험도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미용실에 가면 그냥 “단정하게 잘라주세요” 했고, 그러면 그냥 분무기로 물 칙칙 뿌리고는 커트를 했으니까.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묶어주는’ 일은, 특히나 그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어떻게 해야 더 괜찮게 나올까를 생각해주는 일은, 그러니까, 머리를 기르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것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