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신경을 썼던 얼마 안되는 기억들.
머리 기르는 일에 관심 없이
평생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년 살면서 머리에 대해 신경을 써본 시기는
다 합쳐서 1년 정도가 아닐까 하니까.
고교 시절, 짧은 머리에 젤을 발라
힘을 줘보려고 했던 시기가 잠깐 있었다.
내 윗 세대들은 ‘무스’라는 걸 썼었고,
우리 때는 젤을 썼던 것 같다.
젤이 아니면, ‘왁스'였던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 소위 ‘힘 좀 쓰는’ 애들은
자기 머리에도 힘을 썼던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부류는 아니었다.
다만, 좀 다른 의미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뭐였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여튼 그 때 사진을 보면 무표정하고 차가우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무언가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것도 몇 달 하다 그만두긴 했지만.
머리에 신경 썼던 일이 또 하나 떠오르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 머리로만이라도 - 알기에
남들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어렸을 땐 속으로 다른 이들의 눈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90년대 중반의 초여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이지, 왠지 모르게 아버지가
내 머리를 잘라 주셨다.
전체적으로 손을 봐주신 것은 당연히 아니고,
소위 ‘앞머리’를 가위로 다듬어 주셨다.
그 때 집에 아주 오래된, 옛날식의
검은색 무쇠 가위가 있었는데,
그 가위로 - 말 그대로 서걱서걱 -
앞머리를 손봐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발의 과정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다만 내 기억에는 그 날 학교에서의
내 책상과 내 양 팔, 그리고 내 허벅지,
그리고 주변의 소리들만 남아 있다.
계속 엎드려 있었으므로,
엎드려 있으려고 노력했으므로.
교실에서도 운동장 스탠드에서도.
대략 바가지 머리 스타일에서
이마 부분만 반원 형태 (위쪽으로 둥그렇게) 자른
모양이었을 것이다.
엎드려 있을 때 웅성거리는 교실의 소리와
친구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책걸상이 삐끄덕 하던 소리들,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와와 거리던 소리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이 기억이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 때의 어떤 깨달음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도 엎어져 있으니 친구가 나를 불렀고,
나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고
그에게 뭐라뭐라 말을 했다.
말의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다만, 그 친구가 내 머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는
내가 - 당시로서는 그저 ‘느낌’에 머무른 어떤 것이었지만 -
어떤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내 머리를 관찰하고 있지는 않는구나.
그 이후로 내가 머리에 대해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아버지가 내 머리를 다듬어 주신 적도 없다.
지금도 짧게 자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긴 하지만.
내가 가진 이 기억이 전부 정확한지는 확신이 없다.
다만 정확한 것은,
내가 머리에 신경쓴 일은 짧은 한 두 때 정도뿐이었다는 것.
그러니 머리를 기르고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는, 지금이
내 삶에서 머리를 기르는 일에 대해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처음의 시간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저런 낯선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