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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II제이 Jul 03. 2023

머리를 기르는 일은(1) (23년 7월 상순의 순간)

머리에 신경을 썼던 얼마 안되는 기억들.

평생 머리 기르는 일에 관심 없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년 살면서 머리에 대해 신경을 써본 시기는 다 합쳐서 1년 정도가 아닐까 하니까. 고교 시절, 짧은 머리에 젤을 발라 힘을 줘보려고 했던 짧은 시기가 있었다. 내 윗 세대는 ‘무스’라는 걸 썼었고, 우리 때는 젤을 썼던 것 같다. 젤이 아니면, ‘왁스’(?)였던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 소위 ‘힘 좀 쓰는’ 애들은 자기 머리에까지 힘을 썼던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부류는 아니었다. 다만,  좀 다른 의미로 무언가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뭐였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여튼 그 때 사진을 보면 무표정하고 차가우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무언가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것도 몇 달 하다 그만뒀을 것이다.


머리에 신경 썼던 일이 또 하나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 머리로라도 - 알기에 남들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어렸을 땐 속으로 다른이들의 눈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90년대 중반의 초여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이지, 왠지 모르게 아버지가 내 머리를 잘라 주셨다. 전체적으로 손을 봐주신 것은 당연히 아니고, 소위 ‘앞머리’를 가위로 다듬어 주셨다. 그 때 집에는 아주 오래된 옛날식의 검은색 무쇠 가위가 있었는데, 그 가위로 - 말 그대로 서걱서걱 - 앞머리를 손봐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발의 과정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내 기억에는 그 날 학교에서의 내 책상과 내 양팔, 그리고 내 허벅지, 그리고 주변의 소리들만 잔뜩 남아 있다. 계속 엎드려 있었으므로, 엎드려 있으려고 노력했으므로. 교실에서도 운동장 스탠드에서도. 대략 바가지 머리 스타일에서 이마 부분만 반원 형태 (위쪽으로 둥그렇게) 자른 모양이었을 것이다. 엎드려 있을 때 웅성거리는 교실의 소리와 친구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책걸상이 삐끄덕 하던 소리들,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와와 거리던 소리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이 기억이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 때의 어떤 깨달음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도 엎어져 있으니 친구가 나를 불렀고, 나는 고개를 들고 그에게 뭐라뭐라 말을 했다. 말의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다만, 그 친구가 내 머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는 내가 - 당시로서는 그저 ‘느낌’에 머무른 어떤 것이었지만 -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내 머리를 관찰하고 있지는 않는구나.


그 이후로 내가 머리에 대해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아버지가 내 머리를 다듬어 주신 적은 없다. 지금도 짧게 자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긴 하지만. 내가 가진 이 기억이 전부 정확한지는 확신이 없다. 다만 정확한 것은, 내가 머리에 신경쓴 일은 한 두 때 정도뿐이었다는 것. 그러니 머리를 기르고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는, 지금이 내 삶에서 머리를 기르는 일에 대해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처음의 시간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저런 낯선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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