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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II제이 Nov 17. 2023

머리를 기르는 일은(6)

반려적 존재(?)로서의 머리.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를 감는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하는 루틴 중 하나다. 일어나면 물 한 컵을 마신다.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다시 화장실로 가서 큰일을 본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밥을 먹고 아니라면 바로 출근한다. 이런 아침 루틴은 머리가 길어지기 전에도 똑같았다. 


  머리를 자르지 않게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를 빗는 순서가 하나 추가 되었다. 머리를 기르는 일은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한 번 더, 신경 쓰는 일이 늘어나는 일이다. 머리가 길지 않을 때는 머리를 감고 나서 수건으로 한 번 털어버리고 머리 손질은 끝이었다. 빗을 필요도 없었다. 반곱슬인 내 머리는 그냥 손으로 슥슥 한두 번 넘기거나 흔들면 자리를 잡았다. 머리카락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고, 그 끝이 딱히 어디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길이가 아니었기에 각자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머리카락들은 방향과 위치를 선택할 여지가 늘어났고,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은 주인의 무능력은 그들을 서로 엉키게 만들었다. 아침에 머리를 빗을 때마다 엉킨 머리들이 빗을 잡아챈다. 나는 빗을 움켜쥔 내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빗을 쥔 손에 힘주어 엉킨 머리를 풀어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엉킨 머리카락 몇 가닥을 빗으로 뽑아낸다. 내 머리들이랑 싸우는 건가. 무능력의 결과는 갈등인가.


  머리가 길어지니 한 두 올이라도 바닥이나 욕조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더 잘 보인다. 청소기를 돌리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고, 결국 청소기를 손에 쥔다. 청소를 더 자주 해야 한다는 불편함도 머리를 기르는 일에 따라온다. 처음에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길이가 길어져서 더 잘 보이는 것인 듯하다. 화장실과 욕조 바닥의 물구멍에 있는 거름망도 머리카락으로 막히는 일이 예전보다 더 많아서 자주 빼줘야 하기에 번거로운 일 하나 더 추가다.


  샴푸도 더 많이 든다. 500원 동전만큼 샴푸를 손에 덜어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길어지며 늘어난 머리의 양만큼 샴푸의 양도 늘어야 한다. 그리고 뭔가 머릿결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쓰는 부가적인 제품들인 린스나 트리트먼트 뭐라뭐라하는 제품들도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머리를 기르는 일은 마치 반려동물을 기르는 일처럼, 무엇보다도, 돈이 더 드는 일이다.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떤 면에서 머리를 기르는 일은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일과 좀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털이 날리고, 씻어야 하는 일이 더 생기고, 주기적으로 먹여야(!?)하는 것들을 구매하고 챙겨야 하고 등등.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유튜브의 개인 방송들 중에는 때로 고양이가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고양이가 카메라를 가린다든지, 소리를 낸다든지 하여 개인 방송을 방해하는 장면이 웃음을 유발한다. 내 긴 머리는 고양이처럼 움직이진 못하지만 일하는 내 시야를 가리고 볼과 코를 간질이며 나를 방해할 때가 있다. 뭘 먹을 때 머리를 잡아 묶는지 여부가 그 음식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덤으로 추가하자. 여하튼 그래서 ‘묶어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놔두고 싶지만 때로는 묶거나 가둬두어야 한다는 것. 때때로 묶어두고 싶어지는 어떤 것이 늘 나를 따라다닌다는 것. 이것도 머리를 기르는 일이 갖는 특징이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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