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는 표정이 없다.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인쇄’ 버튼을 누른다. 이미 윙윙 철거덕 돌아가는 프린터를 보며 걸어가는 내 걸음 속도가 프린터의 인쇄 속도를 몇 RPM 앞질러 간다. 이 바쁜 아침에 수십장 인쇄를 걸어놓은 누군가를 잠깐 원망해보지만, 그보다는 고작 두 장짜리 내 인쇄물에 대한 갈급함이 더 크다. 프린터 LCD를 애처롭게 훑어 본다. ‘작업상태’ 버튼을 눌러본다. 삑삑삑. ‘우선인쇄’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기를. 버튼을 누를 때마다 울리는 소리도 다급하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앞선 인쇄 명령에 따라 철컥철컥 종이를 내 뱉는 이 흐름을 잠시 끊고 그 사이로 내 인쇄물을 끼워 넣을 수 있기를. 잠깐 누군가를 향해 고개가 올라오던 원망은 어느새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새로이 프린터 주변으로 흘깃흘깃 날아오는 시선에 보이는 눈치에 내 조급한 표정으로 대꾸해본다.
이런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장한장 그 자신의 기능을 다해 인쇄 작업을 수행하는 프린터는 표정이 없다. 오히려 그 수행 의지를 잠시 억지로 멈추는 엇박자의 울림과 중간에 ‘우선인쇄’로 끼워넣은 내 인쇄물의 시작의 소리까지 모두가 고스란히 프린터 기계음만으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지금 프린터 내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두에게 알리는 안내 방송이 같다. 이럴 때 종이가 걸리기라도 한다면? - 이런 불운은 정말 중요하고 급한 일일 때 찾아오는 것인데 - 괜히 더 긴장된다. 제발 이대로 잘 나와주라. 이런 ‘인간적인’ 마음을 프린터가 수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어리석음일까. 우선인쇄 버튼을 누를 때, 그것도 삑삑삑삑 몇 차례를 연속적으로 눌러볼 때의 그 마음을 프린터가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면, 알아줄 수 있다면, 그래서 왠지 급한 우선인쇄일수록 덜 기계적으로 - 그러니까, 조금은 대충대충이지만 더 빠른 속도로 - 인쇄물을 내뱉어 준다면?
그러나, 우선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앞에 진행 중인 인쇄를 멈추고, 새로 인쇄 대기를 하고, 종이를 빨아들이고, 인쇄 작업을 마무리 하고, 다시 이전의 인쇄 모드로 돌아가기 위해 세팅을 하고, 종이를 빨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이 문제 없이 정확하고 단호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 당위적이고 기계적인 반응. 드디어 급하게 인쇄한 인쇄물을 들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발걸음에 묻어 있는 약간의 안도감은, 프린터의 이런 기계적인 반응에 기대서 얻어진 것은 아닐까. 어떤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는 정해진대로 움직여주고 있구나 하는 그런, 뭔가 기댈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깊은 갈망이 종이 한 장 두께 분량만큼 채워지는 데서 오는 그런 안도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