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하순의 순간) 너의 화이트와 나의 블루.
크리스마스입니다.
어디서나 캐롤이 들립니다.
언제였을지는 모르지만,
크리스마스가
해마다 오는 특별한 날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이맘때엔 어디서나
캐롤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롤은
아마도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일 텐데요.
약간 느끼한 남자 목소리로
“꿈~ 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그 노래의 원본 버전 입니다.
이 노래에는
삶이 즐겁고 밝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풍성하게 눈이 내리는 이미지가
즐겁고 밝은 삶의 풍요로움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눈은 필요충분 조건이라기보다 소품입니다.
꼭 눈이 필요할까요?
눈이 없으면 없는대로
크리스마스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거나,
적어도 애틋하지 않은가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따뜻하고 애틋한 건
당연한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더 나아가 ‘크리스마스’에서
어떤 차가움이나
속상함,
질투 내지는 부족함 같은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렇지 않은
반대 사이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쉬운 예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You’ll be doin’ all right,
with your Christmas of white,
But I’ll have a blue, blue Christmas.”
(당신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만,
나는 파란(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거예요.)
뜬금없는
‘파란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파란 크리스마스를 상상해 본 적이
아마도 없으실 텐데요.
있다면 당신은 올드팝 팬이겠지요.
그보다 크리스마스의 색에 대해
떠올려봅시다.
이미 노래 가사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마 크리스마스의 색은
빨강, 초록, 그리고 하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웬 파랑인가 하겠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영단어 ‘Blue’가 단순히 ‘파랑’의 의미 넘어
‘우울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대해서,
또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와 우울을 연결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파란 크리스마스를 노래했습니다.
그의 노래 <Blue christmas>는,
- 비록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연애라도 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지만 -
다른 느낌의 크리스마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 있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머리 속으로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즐거운 파랑으로
따뜻하게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파랑을 넘어
빨강, 아니 핏빛 크리스마스는 어떤가요?
혹은 화약으로 검게 그을린 크리스마스는요?
굳이 지구 반대편까지
낯선 크리스마스를
보러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내린 눈이 녹다 얼어서
빙판이 된 보도블럭,
그 한 켠에서
다 찢어진 은박돗자리 하나를 깔고
밤새 누워있었던
노숙인의 소주 한병짜리
쨍하게 투명한 크리스마스는요?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더욱 그렇지요.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여야 하는걸까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울 수 있도록 모아지는
크리스마스의 온정이
분명 실재하지만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화려함이 발생시키는
어떤 우울함보다
꼭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정확히 계산을 해볼 자신은 없네요.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어떤 이들에게,
대부분,
즐거운 날로
매년 지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순간을
한두번, 그리고 또 한두번 경험을 하게 되면서
생각은 변해갑니다.
그래서,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그저 절망을 가리는 날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트리 장식, 전구의 불빛,
따뜻한 분위기와 특별한 음식들로
주변의 고통과 아픔들을 포장해버리고는
어두운 밤 한쪽을 밝고 화려하게 밝히는
트리 아래 쌓인 선물들을 보듯
그것들을 그렇게 바꿔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의 화려함이
반대급부적인 우울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는 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더욱 그렇게 될 겁니다.
육아에 지친 저는 어쩌다 생긴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그냥저냥 보내다
하릴없이 소소한 일을 하며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우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 어쩌다 얻은
짧은 자유 시간에 할 일이 무엇이든,
지금의 이런 순간이
적어도 한동안은 앞으로 꾸준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는걸
알기에 느껴지게되는 어떤 허무함 때문입니다.
여전히,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어떤 이들에게, 대부분,
우울한 날로 매년 지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천 년 전의 어떤 현실이,
더군다나 인류의 구원자가 온 이후로도
이천 년 동안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강렬하게 확인하는
그런 날이 되지는 않게 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밝지 않고, 즐겁지 않고, 희망차지 않은
그런 캐롤도 간간히 끼워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저 이런 반성조차도
크리스마스에 누리는 호사는 또 아닌지 생각하게되는
그런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