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월 상순의 순간) 시작하는 마당이니 '마무리'를 합시다.
연말연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또 누군가에게는 회피하고 싶은
그런 때이지요.
본디 시간은 무심히 흐르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표시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작년이고
이후부터는 새로운 한 해니까
이 순간은 매우 특별하다는 식입니다.
우리가 표시를 해 놓고는,
거기에 맞춰 나이도 먹고
업무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시작도 하고 그러다보니
정말 특별해집니다.
특별한 시간이라고 하다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평소에 잘 안하던 일들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 하기, 책읽기, 일찍일어나기 등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이지요.
새로운 시간이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때이니 계획적으로.
역시 새것은 좋지요.
시작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매번 계획을 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이지,
계획을 한 번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획말고 다른 건 어떨까요?
‘시작하는 마당에 그걸 해?’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마무리’를 해보는 걸 제안합니다.
그래도 연초에 ‘마무리’를 한다는 생각이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모든 계획에는
그 일의 ‘마무리’에 대한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겁니다.
잠깐 상상해봅시다.
아무 일이나 골라서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어떤 일도 상관 없습니다.
대신 ‘일’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해 봅시다.
“만약 그 일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 된다면?”
좋으신가요?
우리가 무심히 흐르는 시간에게
그렇게 나름대로 스티커를 붙이며
시작과 끝의 마디를 만들어 놓는 것도,
다 어떤 식으로든
이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올해엔 책을 읽겠어’하고
마무리 없는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올해부터는 책을 읽겠어.
단, 이 계획은 우선 두달동안만 진행하고
되든 안되는 2월 말에는 일단 책표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SNS올리고 땡칠거야’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요?
살면서 계획은 여러 번 해 보았으나,
마무리를 해 본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마무리’라는 것은
스스로 - 능동적으로 -
어떤 일의 끝까지 가서 정리하여 맺는,
그런 의미의 ‘마무리’입니다.
여러번 해 보았던 계획들을 생각해봅시다.
시작은 신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인가
그 일이 서서히 잊히며 자체 종료 되든가,
또다시 세워보는 새로운 계획에 의해서
대체되든가 하지 않았던가 말입니다.
때로 외적으로 주어진 마감이나
업무 종료로 끝나는 타이밍까지 질질 끌면서,
적당히 때우면서
‘어서 끝나기만 해라’
‘빨리 좀 지나가라’ 같은 생각을 하며
털어버리듯 끝내는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갑자기 자아비판조가 되어 죄송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혹은 손에 잡히는 형태로
무언가를 끝끝내 완성해내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나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증빙자료 목록이 단순하다 못해 부실한 것은
나의 미숙한 마무리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지요.
근육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가는 ‘근력’이고,
얼마나 오래 지속적으로 힘을 낼 수 있는가는 ‘근지구력’입니다.
올해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나의 약한 지구력을
이미 계획이란 걸 하느라고
다 써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이전에 계획하면서
‘마무리’를 제대로 계획하지 못해
지금 이렇게 연말의 느낌이 뭔가 흐지부지,
어설픈 느낌이지는 않은지
생각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조금 미뤄두고,
새해의 기운을
못다한 마무리에 활용하여
지나간 시간을 잘 정리해
과거의 창고에 넣어두고
앞날로 나가보는 건 어떤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마무리가 잘 되지 않은 경험은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 일들도
미심쩍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보람이 없으니까요.
반대로, 마무리가 잘 된 경험은
앞으로 세워질 계획에
더 힘을 낼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마무리’에 대한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1900년대 초 선구적인 관점으로
당대 셀럽이었던 ‘나혜석’이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기록된 그녀는
당대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시인이었던
최승구와 연애를 했는데요,
그는 당시 조혼으로
이미 아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아내가 있었고,
이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 등으로
최승구와 나혜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영향을 끼쳐
최승구는 일찍 사망하게 됩니다.
나혜석도 실연으로 인해 괴로워했겠지요.
그 후 나혜석은
김우영이라는 다른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됩니다.
끈질긴 그의 구애 끝에
둘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나혜석이 참 충격적인 요구를 합니다.
‘애인(최승구)의 묘지에 묘비를 세워달라.’
그리고 신혼여행을
그 묘지가 있는 고흥으로 갑니다.
이 이해가 안가는 요청과 행동에 대한
나혜석의 설명은
옛애인을 영원히 잊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혜석은 이전 사랑에 대한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고,
새로운 사랑의 시작도
확실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또 어찌 생각하면 참 대단한
‘마무리’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혜석이 세운 비석같은 마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계획되어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한번쯤은 알맞은 ‘마무리’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교육계에서는
어떤 일의 끝(즉, 평가)을 생각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생각하며
교육과정 계획을 세워보는 것을
‘백워드 설계’라고 합니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이 일의 끝이
언제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를 생각해보며
계획도 세우는 것이지요.
너무나도 많은 계획 속에서
이리저리 기웃기웃하며
나도 뭔가 계획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까지 조성되어가는 요즘 같은 연초에
‘마무리’ 운운하는 것에 대해 어쩌면
‘‘회피’ 뉴 이어 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마무리’는
진정한 ‘해피’ 뉴 이어가 되도록 하는
시작일수도 있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잘 ‘마무리’ 해야할 일들은
어떤 것일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