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가 왜 좋냐는 아내의 질문에 대한 대답(1)

(25년 1월 하순의 순간) 이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by 제II제이

2022년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개정된

또 하나의 해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2007년 이후 여러번 개정되면서 교육과정이 변해왔지만

2022개정 교육과정은 특히 나에게 의미 있다.

이유는 내가 2022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 집필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출판사와도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대단한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출판사와 인연이 생기게 되면

책을 얻어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게 된다.

지난주에

중학생들이 읽을만한 소설을 모아놓은 도서가 나와서

내게도 책을 보내주셨다.

이 책은 이제 곧 예비 중학생이 되는

지인의 자녀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책이 왔다.

이번엔 고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소설집이다.

아내는 이 책은 자기가 읽어야겠다며 웃었다.

나는 이 책은 또 누구에게 줄만한 데가 없나 생각하며 표지를 봤는데,

작품 리스트 중에서 김연수 작가의 <뉴욕제과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소파로 가 앉아서 읽었다.

읽고, ‘역시’ 했다.

약간 울 것도 같았다.

가족들이 전부 집에 있었기 때문에 참았지만.




소설을 읽는 도중에 주방에 있던 아내가 물었다.

아마 뭘 읽고 있느냐하는 정도였던 것 같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읽어보려한다는 식으로 건성 대답했다.


“그 작가가 누군데?”

“말하면 아나? 김연수 작가라고 있어.”

“아니 대표작이라도 말해주면 알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작가가 왜 좋아?”


이 글은 여기서 시작되었는데,

그 순간에 나도 내가 김연수 작가를

왜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아내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씌여졌다.




김연수 작가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소개할 수 있겠지만,

2000년대를 휩쓴(?!) 소설가라고 하면 될 것 같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매 홀수해마다 문학상을 받았다.

(물론 이전에도, 이후에도 상을 받았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원더보이>> 그 외에도,

쓴 작품이 많다.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기 민망하게도

내가 직접 읽은 책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원더보이>>, <<소설가의 일>>

이 세 권 정도뿐인 것 같다.

더해서 몇몇 문예지에서 읽은 단편 소설 한두편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글이

이번에 읽은 소설 <뉴욕제과점>이다.

써놓고 보니 더 이상하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최근 글쓰기 실습을 이어하면서 생각한 점 하나가 있다.

내 글에 부족한 점.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내 세계관이랄지, 어떤 시선(관점)의 뚜렷함이다.

대놓고 무엇이라도 직접 글에 남기지는 당연히 않겠지만,

글에 담긴 일종의 지문같은 그런 것.


이것을 뒤집어 말한다면,

어떤 사람의 글들에는

서로서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글마다 공통적으로 흐르는

어떤 기운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라면 더 분명한 무언가가 있겠지.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수십권의 그의 저서 중에서 세네권밖에 안읽었어도 상관없다는

그런 핑계를 대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김연수 작가가 쓴 글 중의 일부만 읽었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그의 지문같은 어떤 것

- 아마도 그의 모든 글에 다 자리를 잡고 있을 -

에 내가 매력을 느꼈다는 뜻이다.




<뉴욕제과점>은

서술자가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학생 시절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면서

자녀들을 길러낼 수 있게 해준 생업의 장소인

‘뉴욕제과점’에 대한 추억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인

“인생은 그런 게 아니겠는가”하는 식의 문장은

서술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이 장소가 갖는

어떤 중요성과 엮여 있다.

자세히 소설 내용을 서술하기보다는

이 소설이 가진 멋진 점을 몇가지만 써본다.

이 소설도 김연수 작가의 글이니까

그의 지문같은 매력이 여기에도 당연히 담겨 있을 것이다.


우선 각각의 에피소드가 가진 내용을 흥미롭게 써내려가는 것.

당연하게도 그의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소설의 부분부분이

모두 다 허투루 사용되어 버려지지 않고

소설의 다른 부분과 엮이면서

하나의 유기체로 소설 한편이 잘 짜여져 만들어진다.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찾는 재미가 있다.

<뉴욕제과점>의 경우 ‘기레빠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기레빠시'가 뭔지 궁금하면... 소설을 읽어보자ㅎㅎ)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카스텔라’라는 소재는

이 에피소드에만 활용되지 않고

소설의 다른 부분에서 비유적인 표현으로 재활용되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모두 설치한 뉴욕제과점은 가스 오븐에 들어갔다가 나온 카스텔라 반죽 같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긴 한문단으로 죽 이어지는 서술이 있는데,

앞부분을 제대로 읽어왔다면

국밥을 먹는 서술자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그 부분을 읽고 있을 것이다.

요즘 말로 이 부분이 나에게는 '킥'이었다.

이런 서술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 가진 장점이다.

(이것도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라. 길지도 않다.

소설 전체가 20쪽 정도밖에 안된다.)




이 작품에서 발견한 생각들 중 하나는,

‘인생은 짧은데다가 금세 지나가고,

그건 나 자신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비관적일 수 있겠지만

그의 소설들은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해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과거와 지금과 앞을 의미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그 아이(서술자의 자녀-글쓴이 주)가

나 없는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잘 정리된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이렇게 써 놓고 나니

‘그냥 당연한 말을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가의 좋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이런 것에 대해

‘역시 그렇군’하고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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