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2월 중순의 순간을 빌린, 25년 첫날에 관한 기록)
2025년의 첫 날인
지난 1월 1일의 가족 행사에 관한 기록이다.
백 년만의 큰 눈이 온 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새해가 왔다.
우리 가족의 전통에 따르면,
새해 첫날은
처가댁 식구들과 등산을 한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에
주로 뒷동산에 오른다.
비록 결혼하고 나서 어린 아기들 키우느라,
그리고 개인 운동 때문에 다리를 다친 일 때문에
몇 번 거른 적 있어도
해마다 꾸준히 같은 곳에 오르려고 노력했다.
전통을 통해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있다.
옛말은 참 틀린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말도 옛말이다.)
가족이 다 같이 산에 올랐던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일이 없었던 때가 오히려 적다.
올해는
아직 어린데다가 감기까지 걸린 막내와
그 막내를 봐야 하는 아내,
그리고 감기 몸살이 걸리신 장모님께서는
처가댁 집에 남으시고
아버님과 나,
그리고 초등학생인 두 아들만 올랐다.
목적지는 감투봉이라 불리는
동네 산자락의 작은 고개로 잡았다.
워낙에 큰 눈이 온 뒤인 터라
산길에 쌓인 눈이 녹지 않았을까 저어했지만
다행히 눈은 다 녹아 없고,
간밤 추위에 등산로도 단단했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거의 해마다 동산에 올라봤다고,
애들은 이제 익숙한 듯
거침없이 동네 골목을 지나가며
산길 입구로 향하고,
아직 천방지축인 애들이 불안한 나는
좁은 골목길에 오가는 차를 신경 쓰며 걸었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곧 상쾌해졌지만.
올라가는 길에
첫째가 ‘새해 첫날 산을 오르는
외가댁의 전통이 어떻게 시작되게 되었는가’에 대해
상상해 만든 이야기를 풀었다.
어설프니 어이없었지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대는 그 기운에
산길에 들어갈 힘을 얻었다.
안 그래도 가파른 초입 계단 중 일부가 허물어져
자기 키만큼의 언덕바지를 한 번에 올라야 하는 상황에도
둘째가 잘 따라 올라갔다.
둘째는 기운이 뻗치는 듯
돌아오는 등산로에서도 뜀박질을 했다.
첫째는 바위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벤치가 보일 때마다 쉬어가자고 했다.
들썩이며 떠들어대든, 뜀박질을 하든,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든,
어떻게든 손주들이 귀여워 보이시는지
아버님은 즐거우신듯했다.
하늘은 파랗게 맑았고,
고갯마루의 등산로는 바람이 차게 불었다.
큰 나무들 밑동에 푸른 이끼가 끼어 있었는데,
내게는 그것들이 마치 말의 발굽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무줄기가 말의 다리처럼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가지들의 수선거림에
수십 수백 마리의 말들이 달려가며
산 등성이에 발굽을 박아대는
그 틈 사이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등산로 간간이 한켠에 벤치가 모여 있는 곳이 있었는데,
어떤 한 나무 등성이에
누군가 곡물로 보이는 새 모이를 뿌려 두었다.
박새로 보이는 새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모이를 쪼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다시 와서 모이를 쪼는 걸 보니
이미 새들에게 익숙한 곳인 듯했다.
첫째가 그 앞에 서서 손에 모이를 놓고 가만히 있으니
새가 다가와 앉았다.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등산로 풍경이었다.
새가 와서 모이를 먹는 그 순간은
주위가 더 조용해지는 듯했다.
나무들 사이 사선으로 부드럽게 비추는 아침 햇살 사이로
첫째 손에 새들이 가까이 오는 일이
시간이 멈춘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투봉에 도착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감투봉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와
그 선비를 기다리는 처녀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전설로 담고 있는 곳이다.
나즈막한 언덕 같은 작은 봉우리에 얽힌 전설 치고는
호랑이까지 여러 마리 등장하는
꽤 거창한 전설이었다.
같이 전설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옆에 마련된 벤치에서 잠시 쉰 후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도 새 모이를 주는 경험을 했고,
이후로 거의 뛰다시피 하산했다.
둘째는 그때까지도 기운이 뻗친 듯했다.
약간 지쳐 보이는 첫째도
다행히 끝까지 무리 없이 산행을 소화했다.
돌아오는 길에
줄기가 심하게 꺾인 채
나무속의 찢어진 결들이 그대로 하늘에 드러난
한그루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꺾였지만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상태가
더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꺾여 있는 가지와 나무줄기,
아예 쓰러져 있는 나무들도 많이 보인 산행길이었다.
백 년 만의 큰 눈은
자신이 다 녹아 없어진 그날까지도
이 등산로에 수없이 많이 부러진 나무들의 비틀림을 통해
그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내려와서 어머님께서 끓이신 떡국을 먹었다.
그릇 안의 흰 떡, 그 위로 모락모락 오르는 훈훈한 김이
너무나도 따뜻한 한 끼였다.
변함없는 듯 매년 조금씩 변해가는 새해 첫날의 풍경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또 아쉽다.
그러나 이 따뜻함이
앞으로 오래오랜동안 남아서
겨울의 추위를 버틸 온기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이 온기가 남아 있으니.
지나간 시간을 헤아려보면
언제나 따뜻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힘든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그 힘든 시간들도 결국엔 지나가고,
때때로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그리고 앞으로 또 끼어 있을 따뜻한 일들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꼭 그럴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