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월 중순의 순간) 다쳐서 다치지 않으면 다치지 않겠네.
축구 경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왼쪽 종아리에서 투둑,
노크 소리가 났습니다.
경기가 끝나기 몇 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상기된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 위에 올라타서 뛴 것이
원인 같습니다.
수비수 두 명 사이로 보이는 틈
그 사이로 축구공을 톡 차 넣고,
나도 그리로 파고들려고
왼쪽발을 끝까지 쭉 편채로
힘을 주어 몸을 밀어내는
그 순간이었을 겁니다.
몸 안에서 들리는 뭔가 끊어지는 소리.
아마도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며 난 그 소리는
마치 방음벽 너머로 들려오는 듯 외침인듯
어색하게 얌전한 소리였습니다.
왼쪽 종아리 근육에는 원래 문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나오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몸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어떤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의와 규칙이 손발을 막고,
내 눈치가 입과 눈을 막으니,
그것이 흘러나오지 못하고
내 몸 안에서 헤매다가
그간 약해져 있던 왼쪽 종아리로
터져 나왔나 봅니다.
어떤 말, 어떤 행동, 어떤 통로로
몸 밖에 내보내야 할지 미처 정립하지 못한 그것을,
내가 막아보려고
잠깐 뒤돌아서 반대쪽으로 걷다가
나도 모르게 장갑을 벗어 땅에 내던지는 순간에
오히려 스스로 분명해졌나 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튀어나오는 험한 것을 막아보려
차가운 눈을 그러쥐며 열을 식히려 했던 그 손짓과,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혼자 왔다 갔다 하던
그 발걸음까지 다 실패하고 만 것은
속에서 요동치던 그것을
내가 직접 대면해 달래지 않고
단지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억지로 막아놓고
대강 지나가려 했던 때문이겠지요.
다치기 직전에
단독 드리블을 하며 골을 넣을 찬스가 있었습니다.
혼자 전방에 서 있다가 내 쪽으로 잘 연결된 패스.
빙글 몸을 돌리며 왼발로 공을 상대방 골 쪽으로 꺾어놓으며
동시에 뒤따라오던 수비수와 공 사이로 내 몸을 집어넣어 스크린에 성공.
이제 막 골문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등뒤에서 나를 턱 미는 손짓이 느껴집니다.
그대로 달리기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상을 넘어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 순간에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좀 멍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뭐라 규정되지 않은 채
머릿속이 하얗고 입은 벙벙해 말도 못 하고 있는 그런 순간
저 뒤에서 날아오는 다른 목소리 하나.
“그 정도는 반칙이 아니여”
그 목소리가 이후의 내 감정의 방향을 지시해주었나 봅니다.
좀 험한 쪽으로요.
그 험한 것이 튀어나오는 결에
왼쪽 종아리 근육이 살짝 터진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그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아니라
그 험한 것을 다루는데 여전히 서툰 내 탓입니다.
여태껏 지나온 부상의 시간 동안
- 오른쪽 발목, 종아리, 왼쪽 발목까지 -
몇 번이나 다쳐 놓고도
여전히 나 다스리기를 배우지 못해서,
또다시 시간과 돈을 수업료로 지불하게 된 것이지요.
그나마 작년 이맘때 다쳐서 구비했던 목발과 반깁스가
집 신발장 쪽 수납함에 보관되어 있어서
재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다리를 다쳤을 때 어찌 움직여야 하는지를 좀 알아서
예전만큼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흘러가는 시간들에
아내에게 죄스럽기는 이전보다 더합니다.
다칠 때마다
뭔가를 배우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아직 철들려면 좀 남은 것 같습니다.
두 주 정도 지나고 나니
다음 주엔 공차러 나갈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친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동안 멀리하던 축구를 다시 하게 되며 얻은 즐거움과
두세 달의 시간 동안 만들어온 몸의 감각이
금세 사라질 것을 아쉬워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적어도 한 달은 운동을 못할 테니 말입니다.
그때 그렇게 열을 내기보단
그저 잘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며 후회를 하다가
또 금방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 원망도 하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절뚝이며 애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고 하면서
더디게라도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부상은 회복됩니다.
종아리가 나아가면서
그 소리가 잦아들고 있지만은
왼쪽 종아리에서 여전히
톡톡 노크소리가 간간이 들립니다.
때론 뭉근하고 때론 저릿하게
나를 일깨우는 그 느낌이 날 때마다
종아리를 다친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내가 좀 더 자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