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러진' 아이가 '개갤' 때...

'까진 애(새끼)(?)가 개길 때'(?!). '같지지' 말기.

by 제II제이

가스러―지다 【자동사】

① 성질이 온순하지 못하고 거칠어지다.

┈┈• 가스러진 성격.

② 잔털 따위가 거칠게 일어나다.

【어감이 큰 말 앞에】거스러지다.




뭔가를 만들거나,

교육을 하거나, 기르는 사람이라면

알아 둘 만한 단어라 생각합니다.


속칭 ‘문제아, 까진 애’ 정도로 부르는

아이들이 있지요.

물론 요즘은 애 어른 상관없이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워낙 많이 접하는 시대이긴 합니다.

하다못해 자기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의 눈에 자기 자녀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때가 많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기르는 일은

가스러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부모 눈에는 제 자식이

무조건 이뻐 보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윤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뜻을 알고 보면 더 재미가 있습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가시가 부드럽게 느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장담컨대,

고슴도치 부모도 자기 새끼의 가시가

미워 보일 때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까칠한 면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것이지요.

태어난 아이들을

그냥 알아서 크도록 둔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모로 끔찍합니다.

다방면으로 문제가 생기겠지만

성격적인 측면만 놓고 봐도

분명히 ‘가스러질’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엔트로피 법칙’ 같은

전 우주적 법칙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이

주변을 그냥 보면 알게 됩니다.


기르는 일, 가르치는 일은

‘가스러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요.

관심과 사랑은

어떤 방향성이 있는 마음을 기반으로 한

기술에 가깝습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또 상대방이 내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시 문제아(?!)들은

우리에게 도전을 해오지요.

시쳇말로 ‘개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기다’라는 말은 사실

‘개개다’라는 말을 잘못 표현한 말입니다.




개개다

【자동사】

① 자꾸 맞닿아 마찰이 일어나면서 표면이 닳거나 벗어지다.

┈┈• 구두 뒤축이 ∼.

②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 나게 하다.

┈┈• 내게 개개지 마라.


개기다

【자동사】

‘개개다’의 잘못.




‘개개다’의 원래 뜻은

마찰이 일어나면서 닳게 되는 현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뜻이 사람관계로 확대되면서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 나게 하다’의

뜻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비벼대며(?) 귀찮게 하고

나를 닳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가시게 하다 혹은 못살게 굴다의 의미로

쓰입니다.

요즘에는 ‘까불다’ 정도의 의미를 생각하며

“너 나한테 개기면 죽는다?!”하는 식으로

거칠게 사용되는 듯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든,

학교나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든

늘 소위 ‘개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일부러 그러든,

자기도 모르고 철없이 그러든

개개는 아이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양육과 교육의 현장에서는 크지요.


‘가스러진’ 아이가 ‘개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인류의 미래와 함께 갈 질문입니다.

육아법, 교육학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지만

본질은 이것이죠.


답은 시대의 흐름과 사상의 변화,

인간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완전히 군대처럼 다뤄야 한다는 생각부터

아예 방임에 가까운 정도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일반론이 있을 수는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역시 개개인 아이마다 맞는 방식을

잘 찾아가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래서 딱히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무언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반대로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적어도 ‘같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지다 [갇찌―]

【자동사】

씨름에서, 두 사람이 같이 넘어지다.




‘같지다’는 씨름 용어입니다.

씨름은 한쪽이 다른 쪽을 쓰러뜨려야

끝이 나는 경기이지요.

그런데 같이 넘어진다면?

둘 다 이긴 것일까요,

아니면 둘 다 진 것일까요?

스포츠에서는 무승부로 처리를 하겠지만,

말의 뉘앙스는 ‘둘 다 진 것’의 느낌이 강합니다.


씨름은 스포츠이고 이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씨름을 육아나 교육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아이들과 씨름하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육아나 교육의 본질적 특성이라면

부모나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같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동등한 자격과 조건으로 겨루는

스포츠로서의 씨름과는 달리,

육아와 교육은 씨름하는 두 사람이

동등한 자격과 조건이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조금 강하게 말한다면,

무승부는 곧 부모와 가르치는 사람의

패배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육아와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이

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씨름을 피할 수 없는데,

져서도 안된다는 어려움 말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막상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눈앞의 씨름에 집중하여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자녀와 학생을 잘 지도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는 부모와 선생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완벽한 부모와 선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점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부모와 선생이 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함께 같이 서로를 응원하게 될 밖에요.

그리고 같지지 않기를 잊지 말아야겠지요.


가스러진 아이가 개갤 때, 같지지 맙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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