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감을 붙잡고, 강목을 묶고, 감선을 말하다

감감히 멀어지는 하루를 붙잡고 싶다면...

by 제II제이

4살 아이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난감을 쏟아놓고는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저는 그걸 주워 담고,

또다시 쏟아진 걸 치우고,
그다음엔 또 다시 흩어진 장난감 앞에 앉습니다.
어떤 날은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일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은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게 됩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처럼
집중과 시간이 필요한 일은 자꾸만 미뤄지고,
그 대신 몇 분 단위로 흘러가는
짧은 영상이나 게임 같은 것들을

멍하니 보며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확히 떠올릴 수 없는 채로 밤이 됩니다.



하루가 감감히 멀어집니다.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잊었는지가 더 뚜렷합니다.




감감【부사】

① 멀어서 아득한 모양.

┈┈• ∼ 멀어져 가다.

② 어떤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가맣게 잊은 모양.

┈┈• 약속을 ∼ 잊다.




뭘 했는진 모르겠는데,
뭘 안 했는진 확실히 압니다.

해야 해서 했고,
하다 보니 다시 해야 할 일이 되었고,
그러는 사이 하루가 흘렀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 채.


이런 식입니다. 매일이 반복됩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쌓이지 않는 일들.



‘강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산에서 감돌이를 캐내지 못하고
헛수고만 한 작업을 뜻합니다.
결과는 없고, 피로만 남습니다.



강목【명사】

① ⦗광⦘ 채광할 때, 감돌이 나오지 않아 헛수고가 되는 작업.

② 아무런 소득 없이 허탕만 침을 이르는 말.




일상이 그렇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보냈지만,
무엇이 남았는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반복은 반복을 낳습니다.
반복하는 이유조차 흐려지고,
결국 반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어제 같던 오늘이
오늘 같던 내일이 되고,
어영부영 넘긴 하루가
어느덧 여럿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반복을 그냥 버티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별다른 변화나 시도 없이,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자극이나

이벤트 같은 것을 기다리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감내합니다.
생활은 점점 단조로워지고,
하루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외부의 우연한 사건이 됩니다.




‘감선’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스스로 수라상의 음식 수를 줄이던 행위.
근신의 뜻이라고 합니다.

저도 어느 순간부터 감선하듯 살아갑니다.
말을 줄이고, 감정을 줄이고, 식사도 줄입니다.
과하지 않게, 무던하게, 고요하게.
그게 마치 절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은 도망입니다.
크고 무거운 것을 시도할 자신이 없어서,
작고 무해한 일에 몰두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감ː선 (減膳)【명사】【~하다 → 자동사】

⦗역⦘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친히 근신하는 뜻으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일.



거대한 무언가를 꿈꾸는 일은
너무 멀고 크고,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지레 포기하고,
강목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무의미하다는 걸 압니다.
무의미하다고 하자니 의미가 없고,
의미를 찾자니 의미심장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억지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건 나만의 의식이라고,
조용한 성실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포장입니다.

그리고 다시 반복.
무의미 → 불안 → 의미 부여 → 반복 → 무의미.
완벽한 고리입니다.


감감히 멀어진 건 하루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함께 사라집니다.
어딘가로 향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중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저는 내가 나를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의미를 붙잡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는 중입니다.




의미에 목마를수록,

감정 하나라도 붙잡아 기록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줄이라도 쓰고 나면,
비로소 오늘을 살아낸 느낌이 듭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무엇을 쓰든, 쓰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삶은,
일상의 대본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려면,
익숙한 패턴 하나를 깨뜨리는 일이 먼저입니다.

감정 하나라도 붙잡아 기록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좋습니다.
하루에 한 줄을 쓰는 일,
자주 가던 길을 피해보는 일,
습관처럼 흘러가는 순간을 잠깐 멈춰보는 일.
그 사소한 어긋남이 반복의 고리를 깨뜨리는 실마리가 됩니다.


줄이기만 하는 감선의 태도를 멈추고,
이제는 표현할 차례입니다.
감정은 억눌러둘수록
마음 안에서 불편하게 부패하고,
말로 표현될 때 비로소 흐르기 시작합니다.


억눌린 감정은 쌓여 무거워지고,
말로 표현될 때 비로소 흐르기 시작합니다.
표현은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의미한 강목들을
한데 모아 다시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축적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시간도,
다시 돌아보며 말을 붙이면 다른 결이 됩니다.
삶의 서사를 다시 쓰는 일은, 그날을 다르게 기억하는 일입니다.

강목은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감감히 멀어진 하루도 쓸모없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다시 말하고 다시 묶을 수 있다면,
그건 감돌이가 아니라, 바로 '나'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챗gpt를 이용해 만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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