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대하여.

(25년 7월 중순의 순간..을 빌린 5월 중순의 이야기)

by 제II제이

‘이루어지다’라는 말은 ‘이루다’가 기본형이다.


‘이루다’는 아마도 ‘일다’의 사동형일 것이다.

‘일다’는 ‘없던 현상이 생기다’,

‘희미하거나 약하던 것이 왕성하여지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니까,

‘일다’의 사동형이라면

‘없던 현상이 생겨나게 만들다’나

‘희미하거나 약하던 것이 왕성해지게 만들다’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정리하면,

‘이루다’는 없던 것을 생겨나게 하거나

약하던 것을 왕성하게 만들어 갈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우리 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지마는,

다른 한 편으로 일상의 덧없는 반복은

결국 생활이라는 것을 점점

부스러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계속 굴러가는 바퀴가 점점 닳듯이 말이다.


부스러지며 파편화 되고

지나가며 손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일상 중에

때때로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겨

어떤 시작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대개 짧게는 작심삼일로 끝나고,

드물게 몇 주 정도 이어가며 보람을 느끼는 경우라면 다행이다.

그나마 그렇게 몇 주간 이어지던 노력도

일상과 편함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이런 새로운 시도는커녕

현상을 유지하며 서서히 부스러지는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점점점점 희미해져가는 생활은

나의 존재감과 연동되어 있다.

나는, 나의 생활은

그저 이렇게 닳아가다가

종국에는 사라지는 그런 가벼운 것인가.

그런데 또 순간순간은 무겁고 급박하고

혹은 곧 큰일이 날 것 같다는 느낌에 쫓기거나 할까.


우리의 생활이라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일까.

굴러굴러가며

주변으로부터 소외되고,

생활에서로부터 소외되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연결되어 닿는 지점이 하나씩 제외되며 줄어든다.

어떤 곳이든 연결될 곳으로

나는 나를 내보내고, 또 다른 힘을 잠깐이나마 얻는다.

그러나 결국 연결된 곳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점점 힘이 빠질만하다.

나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나의 시간들, 나의 공간들도

하나하나 분리되고 연결이 끊어지면서

조각조각 흩어지고 다시 작은 것부터 바스러진다.

깨물어 놓은 사탕이 입에서 더 빨리 녹는 것처럼,

그저 작은 조각들로 죄 흩어진채 사라져가는 존재.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목표를 향한 대단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작고 소소한 하나의 이어짐이 아닐까 한다.

앞의 20분과 뒤의 20분의 연결,

지금 내가 앉은 의자와 바로 옆의 책상의 연결,

내 손과 필통 속의 볼펜의 연결,

눈 앞의 모니터와 창밖 도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의 연결 같은

작은 연결.

그런 사소한 연결이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때’

잠깐 연결된 전선을 통해

전구가 찰나의 순간 잠깐 반짝이는 것처럼

그 다음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어떤 힘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연결일지라도

거기에는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일하다 큰 실수를 해서 풀죽어 있을 때,

늘상 하던 작은 일들 중 한두가지라도

늘 그렇듯 진행되어 처리가 완료된 순간

약간의 힘이 솟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내 생활의 바닥에 늘어 놓여져 있는 사소한 것들 중

아무거라도 하나 집어서 다른 것과 붙여보기를.

이루어진 것은 대개 처음 계획과는 다른 모양이니까

결과에 대한 상상은 일단은 무의미할테니,

그저 그것을 한번 바라보기를.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이루어가는 일을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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