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기안84, 쌈디)
얼마 전이었다. 늦은 오후, 고요한 거실에서 나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니 오랜 친구였다. 그가 이번에 JTBC 마라톤에 출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4시간 3분?" 거의 4시간 만에 풀코스(42.195km)를 완주했다고 했다. 마라톤 선수 대열에 들어서는 시간이 3시간대라던데,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다. 아마 일반적인 러닝 크루 내에서는 상위권 그룹에 속할 만한 기록일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실 요즘 러닝이 유행이다. 나도 이 친구 덕분에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 일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시절, 친구는 동네를 달리며 마음이 상쾌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매일 오전 3km, 5km를 달리던 친구는 동네 러닝 크루에 가입했고, 마실 나갈 때 신던 편한 운동화는 어느새 러닝화로 바뀌어 있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내가 구입한 첫 러닝화는 브룩스(Brooks)였다. 당시에는 굉장히 낯선 브랜드였다. SSF SHOP에 입점해서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었고, 오프라인 매장은 가로수길에 있었다. (브룩스는 이후 국내에서 철수했다가, 지금은 개인이 브랜드 유통을 맡고 있는 것 같다.) 살면서 처음 내 발의 길이나 특징을 제대로 알아본 것도 그때였다. 브룩스의 대표 모델은 고스트(쿠셔닝 중립화)와 아드레날린(쿠셔닝 안정화) 두 가지였다. 나는 아드레날린 모델을 선택했다.
신발을 신고 매일 3~5km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0m 뛰는 것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다. 그렇게 몇 개월 후, 2019년 서울 100K 마라톤의 10km 코스에 참가했다. 남산을 가로지르는 트레일러닝 코스였다. 첫 대회부터 서다 걷다를 반복하며 고군분투했지만, 땀을 흘리며 친구들과 함께 골인 지점을 지날 때의 쾌감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최근에는 조선일보에서 주최했던 2024 서울 하프 마라톤 10km에 출전했다.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가는 코스였다. 평소 차로 다니던 길을 막고 수많은 러너들과 함께 달리는 기분은 달콤했다. 특히 마포대교를 가로지를 때가 하이라이트였다. 날씨도 좋아서, 좌우로 펼쳐진 강과 건물들, 그리고 파란 하늘을 보며 달리는 그 순간은 도파민이 한껏 분비되는 느낌이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3D로 경험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는 사실 나이롱 러너였다. 러닝이 주는 여러 장점과 여정을 마쳤을 때의 쾌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귀차니즘 때문에 친구가 같이 뛰자고 연락을 해도 매번 핑계를 대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기안84와 쌈디의 일본 여행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에서 두 친구가 일본의 낯선 거리를 함께 뛰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때 "같이 달리자"고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 두 번, 아니 수십 번이나 연락을 해주던 친구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수십 번, 수백 번의 연락이 이제는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내 온몸을 꾹꾹 누르는 것 같았다.
요즘은 호카, 서코니, 뉴발란스, 아식스 등 러닝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이 많다. '대 러닝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브룩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발을 구매했다. 첫 러닝에 입문하도록 도와준 그 녀석과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100m, 200m, 500m, 1km, 3km, 그리고 5km. 이렇게 차근차근,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쓰다 보니 브룩스 홍보처럼 되었지만, 나중엔 호카도 신어볼 생각이다.
어쨌든, 기안84님 영상 보다가 급 삘 받아서 끄적여봅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요.
그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