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in New Zealand Oct 12. 2024

너도 결혼해 (2)

너도 해라..

KBS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쉬는 마음으로.

부쩍 건조해진 피부 때문에 수분보습에 좋은 팩을 시범하는 동안이라는 여자가 나온 걸 보고 있었다.

요샌 시술/수술하고도 동안소리를 붙이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신뢰가 가지 않는 정보들이 가득했다. 한 키 작은 그녀가 한컷 키높이 구두를 신고 신나게 뽕 달린 공주옷을 입고 나와 자신을 동안이라 소개하고 맨 얼굴로 팩 시범을 보인다. 그런데... 가만있자.. 뭔가 낯이 익다.



억!!!!!!!!!!


그녀는 나랑 고등학교 3학년을 같이 보낸 반 아이였다.

방송반을 했던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점심시간에 음악지킴이가 돼주었고, 동네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랑 과외도 같은 곳에서 해서 몇 번 봤던 가수의 노래를 틀면 입에 밥과 김치가 오가면서도 여기저기서 중학교 때 같은반 친구가 가수로 데뷔했다며 웅성이기 시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능 끝나곤 예비 새내기인 우리에게 메이크업 강의를 해주기 위해 모셔온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모델이 되어 학교 방송을 탔던 그녀가 생각났다. 동시에 나도 방송반 시험을 봤을 때,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부분에서 (전원일기) 일용엄니 목소리를 내서 선배들이 키득거리고 떨어뜨렸던 오래된 기억도 소환해 냈다.


그래, 그녀였다.....

그녀가 작지만 아담하고 예쁜 얼굴로, 그러나 이번엔 동안얼굴로 나와 학교 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을 탔다.

그녀와 대학을 앞두고 했던 짧은 대화가 생각났다. 창가를 바라보며, 나는 많은 혼란에 빠져있었고, 그녀는 명료하게 간호대를 가겠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방송에 나와 수간호사 다음의 2위 서열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란다. 나는 착하고 예쁘고 참했던 그녀가 의사를 만나 서른 즈음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한번 한 적이 있던 터였다. 나랑 같이 독신을 외치던 수많은 여자들이 나몰래 약속이나 한듯 30초반에 다 시집을 가는걸 보고 적잖이 놀라며 마지막 남은 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를 (일방적으로) 보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니...? 나도 작년에 겨우 결혼을 했어.. 나는 오랜시간 외국에 거주하고 있고, 결혼도 외국인과 했어. 내 삶의 여정도 너에겐 의외투성이겠지만, 너의 소식도 나에겐 많이 의외다.

답글을 달고 싶었다. 반가움이 일어서. 하지만, 그냥 그 반가움 여기에 남기고 싶다.




어른들이 결혼하라고 할 때는 죽도록 듣기 싫지.. 왜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 말 안에, 어떤 나를 위함이나 삶의 진심을 숨긴 채, 획일적인 삶을 강요하는 거 같아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말이야. 그래도 평생 혼자 독신의 삶을 살게 아니라면, 네가 가장 젊고 아름다운 지금에서 가까운 때에, 꼭 다정한 사람 만나기 바래. 너의 템포에 발맞춰 함께 인생을 걸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야.. 

결혼도 해보니까, 내 삶의 이벤트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더라고. 누가 해주는 생일파티 같은 게 아니야. 결혼해 보니 삶의 주인이 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내 선택, 나의 결정들이 만들어가는 삶 말이야.

잠시나마 반가웠어. :-)




 

작가의 이전글 살며, 기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