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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in New Zealand May 19. 2019

화려한 음식의 향연

내가 사랑한 하이티(High-tea)

새 집으로 급하게 이사하게 되어 만나게 된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자니.."라고 말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아이가 참 사랑스럽다 느껴졌다. 19살이라던 아이.. 제니라는 발음처럼 입안에 착 붙는 이름은 아니지만 왠지 어울리는 이름이다. 학교 숙제 유인물을 앞에다 두고 한숨을 쉬던 아이, 핫초코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

집 앞에 있는 학교를 가려고 대충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건너다 말고 내가 있는 창을 향해 손 흔들던 그 빼빼한 긴 머리 아이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쫄쫄 굶는 아이를 보며, 가끔 떡볶이도 해주고 볶음밥도 해주고, 내 김치를 먹으랬더니, 생각보다 많이 먹어서 당황했던 일, K-POP, 이민호를 좋아하던 그녀. 내가 얼마나 너희 문화에 관심이 많은지를 말하던 그녀.



그렇다. Jani의 스물한 번째 생일, 지금은 역사 속에 사라져 버린, 랭햄 호텔에서의 하이티를 못 잊어, 나는 집에서 하이티를 만들어 보았다. 그녀의 매혹적인 드레스를 볼 순 없지만,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그 음식에 나는 사실 매료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하이티는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갖는 티 타임이었다. 커피만큼 홍차를 즐겼던 그들은 허기진 배를 달래며 따뜻하고 혹은 달콤한 홍차와 어울리는 빵들을 함께 했다. 누군가는 에프터눈 티 (Afternoon-tea)와 하이티(High-tea)가 계급에 따른 (시간의 여유에 따른)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많았던 귀족계급에서 오후에 갖는 티타임과 노동자 계급에서 일 끝난 후 갖는 티타임이라는 것인데, 사실, 이층 접시에 담아낸 빵과 홍차가 주는 위로만 갖고 싶다. 호텔에서는 하이티라는 이름으로 더 불린다. 차 대신 커피나 와인과 가볍게 한잔 할 수도 있고, 버블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이티를 준비하며, 나는 Jani와 함께 했던 그 특별한 순간을 되새겼다. 하지만 내 식탁은 고요했다. 화려한 티 세트와 다채로운 디저트들이 놓여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은 그때와 대비를 이루며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네 명의 여자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그 순간은 이제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 내 곁에는 단지 하이티의 맛만이 남았다. 이 맛이 주는 위안은 분명하지만, 함께 나누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은 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 하이티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되기를, 이 외로움이 언젠가 따뜻한 대화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한번 홍차를 우려내고, 작은 소망을 담아 그 잔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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