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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백그라운드

 배경이 만들어 주는 각기 다른 너

by Olive in New Zealand Jul 06. 2019

너를 만나고 너를 긴 시간 알아온 건, 사장님 집에서였지.

사장님 집은 좋았어. 사실, 내가 가본 집중에서 가장 좋았어.


너를 떠올릴 땐, 

그 멋진 곳을 배경으로 항상 너를 그 안에 그려 넣었어.

그 안에 그려진 너는..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해 대화중 모든걸 멈추고 이야기 하던 너.

별 다섯개짜리 요리실력과 식탁에 정성을 들이는 모습.

빨간 크렌베리 보드카를 든 너의 느린 손.

높은 콧대에 단정히 걸린 안경과 야무진 입매에서 느껴지는 지적임.




3년이 흘렀어 너를 안지도

좀 많이 더뎠지만, 많이 느린 걸음을 걸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너를 많이 알아 가게 되었지

 너의 진짜 삶이 되는 너희 집에 갔어.


56년 된 집.

사장 집과 달리 운치는 있지만, 

낡은 싱크대, 오래된 서랍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

조부모님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모든 게 오래되었어. 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이라니!

브런치 글 이미지 1


거기엔 네가 즐겨 마시는 빨간 보드카도, 너의 지적임을 돋보이게 하는 최신식 주방도 없었고

다만 오래된 벽난로와 눈이 파란 버먼 종의 고양이 한 마리가

벽난로 주변 의자 밑에 웅크리고 앉아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었어.


브런치 글 이미지 2


조부모님 때문에 너는 유난히 젊어 보였고

낡고 오래된 조그만 오븐을 써서였을까..?

너의 음식에 대한 노력은 덜해 보였어

덩어리 치즈를 잘라 쓰던 너를 본 적이 없어 낯설었어.

항상 남은 음식을 잘 정리해 팩 처리하는 네가

살라미 소시지를 자르고 대충 꽈서 냉장고에 쑤셔 넣는 것도 어색했어.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너를 만났어. 

3년 전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렇게 다른 너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의 조용한 동선을 따라

너에 대한 상념을 자연스럽게 본인에게 돌리게 만드는 묘한 녀석이 있었어


파란 눈이 주는 도도함 때문일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색깔로 나를 사로잡곤

유유히 사라지던..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으로 목적 없이 밖을 거닐고 있는 동네 아저씨처럼 어슬렁 대는 너를

젖은 잔디 사이로 햇살이 드는 어느 날, 

오래 열어본 적 없는 거 같은 잠긴 창문을 열고

가볍게 너를 불렀지


너의 털을 빗겨준 덕에 정이 생긴 걸까

너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서 유유히 사라졌듯, 같은 방법으로 다가오더라


'안녕, 벡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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