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일기 05화

퇴사 결정 공식

퇴사일기 #5

by 키르히아이스

앞서 퇴사는 이혼과 비슷하다고 말했는데 퇴사라는 결정이 하루아침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꾸준히 쌓여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퇴사는 마지막까지 결정 내리기 힘들다.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맞는지, 정말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태에서 욱하는 마음만 가지고 퇴사해버리면 여러 가지를 놓치고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퇴사 결정을 위한 몇 가지 원칙과 공식들을 정리해보았다.


원칙 1. 퇴사 결정은 연역식이 아닌 귀납식으로 하라.


퇴사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퇴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은행 대출부터 내놓고 무슨 물건을 살지 고민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어떤 결론을 원할 때 답을 내려놓고 각종 이유를 거기에 끼워 맞추기 쉽다. 즉 퇴사하고 싶으니까 연봉이 적고, 일이 힘들고, 사람들이 싫다는 이유를 끌어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른 회사와 비교를 할 때도 재직 중인 회사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비교를 해봤자 객관적이기 어렵다. 남의 것은 더 커 보이고 내 것은 작아 보이게 마련이다. 이미 가진 것은 보이지 않고 못 가진 것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심 퇴사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잡다한 것들을 이유로 댈 수가 있다.


이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이유보다 명확한 이유 한 가지가 필요하다. 퇴사는 여러 가지 이유가 모여 하게 되지만 그중에 결정적인 이유가 없다면 행동에 옮기지 말고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장점만 있는 회사는 없다. 어떤 회사든 단점이 있다. 다른 회사에 가도 단점이 있다. 단점이 있는 것 자체가 퇴사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말로 내가 견디지 못할 단점이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퇴사하면서 잃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필요하다. 연봉이 넉넉한 회사에서는 돈 귀한 줄 모르고 일이 여유로운 회사에서는 업무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결론도 내려놓지 말고 백지상태에서 냉철하게 자기가 처한 상황을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원칙 2. 퇴사 결정은 여러 번 반복해서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라.


욱하는 마음에 퇴사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최악이라는 말도 아까운 회사도 있다. 그러나 퇴사라는 결정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므로 내가 손해 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냉정하게 시간을 두고 반복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동일한 답에 이르는지 확인하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가짐은 하루하루 달라서 오늘은 그만둬야지 생각했다가도 내일은 그래도 참자는 생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주어진 조건을 대입하여 반복적으로 판단(계산)해보고 계속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 그때 결정하면 된다.


쉽게 말하면 연봉이 적어서 생활이 힘들고 그에 비해 일은 많아서 퇴사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런 생각을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후 한 번, 한 달 후 또 한 번 해서 같은 답이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정말 연봉이 적은가? → 정말 생활이 힘든가? → 일은 항상 많은가? → 다른 곳은 더 나은 환경인가?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논리적 판단을 거친 뒤 퇴사를 결정해야 한다. 답이 나와도 바로 확정하지 말고 좀 더 회사생활을 이어가면서 똑같은 생각의 과정을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 그래도 매번 똑같은 답이 나왔다면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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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회사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답이 나오는 회사도 있다. 무엇보다 윤리적으로 타락한 회사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다. 즉 성희롱이나 폭언, 폭행, 비리가 만연한 회사는 이런 계산 따위가 필요 없고 그런 문화가 개선의 여지가 없고 일회성이 아니라는 결론만 얻으면 바로 퇴사를 결정해도 좋다.


윤리적으로 완성도 높은 회사가 좋은 회사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외모나 재력이 우수한 사람은 우리가 살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사람은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세상에 완전한 보장이란 없지만 도덕적 수준이 높은 사람과 가까이하여 인생에 손해 볼 일은 없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자! 이제 앞에서 배운 두 가지 원칙을 마음에 안고 퇴사를 결정하는 공식을 펼쳐보자. 퇴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4단계로 구분되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 차분하게 결론에 도달하면 된다. 다음의 질문들에 모두 답하면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질문 1. 왜 이직하려고 하는가? (결정적 사유는 무엇인가?)

질문 2. 1의 답은 현재 회사에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퇴사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질문 3. 퇴사하면 달라지는가? (퇴사가 답이 되는가?) 현재 가지고 있는 불만은 없어지지만 다른 불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것은 상관없는가?

질문 4. 퇴사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구체적 그림이 있어야 함)


퇴사 결정을 하기 전에 이 네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자. 당신은 왜 퇴사(이직)하려고 하는가? 정말 결정적인 사유가 무엇인가? 추상적인 이야기만 나오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만이 많았는데 명확하게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경우 말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원칙들을 잘 지켰다면 공식에서는 답이 나와야 한다. 1번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나머지는 볼 필요가 없다.


2번 질문은 1번의 답에 대한 당신의 진정성을 묻고 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2번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말로 당신의 노력으로 해결이 안되는가, 꼭 퇴사를 해야만 하는가를 묻고 있다.


3번 질문은 퇴사라는 선택에 대한 확인 질문이다. 이 질문 역시 나중에 있을 후회를 덜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은 퇴사를 선택했지만 과연 퇴사하면 달라지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뒷일에 대한 생각도 없이 퇴사를 선택한다. 퇴사가 답이 되는지 아닌지는 상관없고 당장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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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평소 1년에 한두 알 먹던 두통약을 두세 통씩 먹어야 했던 시절에는 나도 눈 딱 감고 퇴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결정이나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조금만 시간을 내서 이 공식에 따라 네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결정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4번 질문은 퇴사 후에 관한 것인데 현실이 너무 힘들면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미래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4번 질문도 피하지 말고 답해야 한다. 4번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구체적 목표와 실행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퇴사를 결정한다면 망망대해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네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하고 그 답들을 조용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똑같은 질문을 일주일 후에, 한 달 후에 답해보라. 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 답이 다르다면 아직 퇴사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 가지 답만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은 반복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답안 예시를 들어보겠다. 같이 작성해보자.


1. 왜 이직하려고 하는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지고 스트레스 강도는 날이 갈수록 커져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있다.

2. 1의 답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팀 내 인력 변동이 거의 없고 내가 다른 부서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한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제2, 제3의 인물이 있다. 다른 부서로 가도 해결되지 않고 계속 반복될 것이다.

3. 퇴사를 하면 달라지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불만은 없어지지만 다른 불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것들은 상관없는가?)

이직하면 어떨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일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다. 나는 그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 대화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돈도 문제가 아니다.

4. 퇴사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현재 학원에 다니면서 관련 내용을 공부 중이다. 6개월 안에 게임이 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퇴사하게 되면 관련 공부와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배워야 할 과목과 학원비, 개발에 필요한 장비, 비용도 정리해 두었다. 어느 정도 기간을 버틸 생활자금은 있다.


위 답안은 다소 감정적으로 작성되었다. 이것보다는 차분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답안은 어떻게 작성되었는가? 여러 번 작성해서 쓸 때마다 답이 다르다면 아직 퇴사할 시점이 아니다. 일관되고 명확한 답이 나와야 퇴사를 생각할 시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참고 기회를 노려야 한다. 다만 본인 건강이나 회사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면 공식과 상관없이 당장 퇴사를 결정해도 좋다.


때로 사람들은 의무감, 책임감, 불안감 때문에 몸이 망가지거나 비윤리적 대우(예를 들어 성추행)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다니는 경우가 있다. 물론 회사 안에서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회사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자존감을 절대 잃으면 안 된다. 이것을 잃으면 노예나 다름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언론에서 회사 갑질에 못 이겨 자살한 분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무척 가슴이 아프다. 가족이 있어 도저히 사표는 못 내겠고 억지로 참고 다니는데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해서 충동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나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겼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더라도 차라리 퇴사를 선택하는 게 낫다. 살아있으면 좋은 날도 올 수 있지만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짐만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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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일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이타적이라서 나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사에게 매일 폭언을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정말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사람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경우는 없다. 아무리 일을 못 하고 큰 실수를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회사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직장 상사가 추근대서 힘들다면 이의제기를 하고 안되면 공식적으로 힘들다고 말해라. 그래도 안되면 감사팀에 호소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회사 밖의 조직에라도 도움을 요청하자. 꿈틀거려야 살아있는지 안다. 그렇지 않으면 짓밟힐 뿐이다. 퇴사도 답이 될 수 있다. 무작정 참는 것이 답은 아니다.


"미생" 같은 드라마 때문에 사람들은 회사 나가면 다 죽는 것처럼 여기는데 죽더라도 회사를 나가는 게 낫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회사에서 암 걸려 죽느니 자연인이 되어 굶어 죽는 게 더 행복하게 오래 사는 길일 것이다. 진흙 속에서 병든 개구리처럼 흔적도 없이 죽는 것보다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폭풍과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건강에 이상 신호를 발견했을 경우 지체하지 말고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스트레스, 업무량 등 무엇이 됐건 빨리 해결해야 한다. 건강하면 회사는 다시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병들면 모든 게 끝이다. 회사는 당신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는다. 병든 몸으로 시커멓게 썩은 얼굴을 해서 정년퇴직해봐야 소용없다. 1년 뒤에 무덤으로 갈 뿐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두통약을 자주 먹던 시절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쪽이 아픈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무슨 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덜컥 겁이 나서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러고 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 같았다. 그전까지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고 있던 나는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과로도 마찬가지이다.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특히 사무직의 경우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는데 넥타이 매고 일하고 있으면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육체노동을 하면 몸에 금방 티가 나니까 알지만 사무직들은 부지불식간에 몸이 망가진다. 전에 IT업계 개발자가 무리한 야근으로 폐를 절단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모든 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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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건설 현장 인부처럼 즉각적인 피곤이나 이상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사무직이라도 한 시간 더 일하면 그만큼 몸에 대미지가 온다. 그리고 그것은 누적된다. 오늘 한 시간 더 일했으면 내일은 한 시간 덜 일 해야 맞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다. 그것이 쌓이다 보면 결국 면역력이 저하되고 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야근, 잔업 같은 초과근무에 무감각한 편이다. 그러나 노동은 엄연히 우리 몸에 피곤을 준다. 건강한 몸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보다 값진 자산이다. 모든 것은 건강으로부터 출발한다. 잊지 말길 바란다.


퇴사 공식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런 논리적 흐름 따라 생각했다면 퇴사해도 큰 후회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식에 따라 답이 나왔을 때 작위적이란 느낌을 받으면 안 된다.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와야지 끼워 맞추기로 공식을 적용해서 답을 만들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퇴사하기 수개월 전에 공식에 따라서 결론을 짓고 그것에 맞춰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 인생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을 위한 것이다. 절대로 타협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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