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6
많은 퇴사자들이 준비 부족이라는 실수를 저지른다. 준비라는 것이 아무리 해도 모자란 것이긴 하지만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전력 질주하지 못하고 퇴사 후에 준비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이다. 이것은 물에 뛰어든 뒤 준비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퇴사 후에 할 일을 회사에 다니면서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적 문제가 가장 큰데 열심히 준비하다가도 갑자기 3개월 해외 출장 명령이 떨어지면 모든 것이 중단된다. 3개월이 아니라 2주만 출장을 가도 계획은 어그러진다.
이직할 회사 면접을 보기 위한 휴가조차 내기 쉽지 않다. 면접은 평일에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참가하려면 휴가를 낼 수밖에 없는데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휴가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혼자는 아이를, 미혼자는 가족을 핑계로 휴가를 내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이렇게 어렵게 면접에 참여했는데 불합격했다면 더 억울할 것이다. 그래서 이직은 의지만으로는 어렵고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퇴사 후 다른 직장으로 갈 때까지 얼마나 기간을 둘지 명확한 계산 없이 이직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만약 퇴사 후 3개월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떤 근거로 나온 계획인가? 별 근거 없이 3개월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 퇴사한 후에 바로 이직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3개월이란 기간이 어떻게 나오는가? 실제 이직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당신은 퇴사했다. 그리고 어떤 직장으로 가기 위해 시험을 보려고 한다. 이력서를 내려고 하니 토익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토익을 준비한다. 운 좋게 금방 점수를 따서 서류를 접수하려고 하는데 채용공고가 안 뜬다. 알고 보니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는 연초에 모집하는데 지금은 벌써 7월이라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가기로 하고 공고를 기다린다. 그러나 7, 8월은 채용공고 비수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휴가철이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도, 채용공고를 결제해줄 사장님도 휴가를 간다. 두 달의 시간을 망부석이 되어 기다리기로 한다. 이윽고 9월이 되고 하반기 모집이 시작되었다. 경력직 자리가 났다. 그런데 경력 3년을 요구한다. 나는 2년 9개월 경력이 있다. 이거 애매한데….
우선 2년 9개월이란 경력 문제부터 짚어보면 3년이 못 된다고 지원 못 할 것은 없다. 서류 내는 데 돈 들어가는 것 아니니 일단 제출하고 인사담당자의 판단에 맡기는 게 좋다. 이 경우 경력은 3년이 못 되지만 인사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인정되는 수도 있다. 서류 지원자들의 대체적인 수준에 따라 발탁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2년 9개월과 3년은 어감이 다르다. 각 지원자의 경력이 인사담당자의 책상 위에 나열되었을 때 당신은 개월 수를 빼고 2년이라고 인식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즉 퇴사할 때 경력 기간 산정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여차해서 서류를 통과했다고 치자. 이번엔 면접이다. 그런데 면접장에만 가면 긴장이 된다. 당신은 오랜만에 면접을 보기 때문에 준비가 안되어 있어 버벅거리기 일쑤다. 특히나 경력자에게 필수 질문이자 외통수인 "전 회사에서는 왜 퇴사하셨습니까?"라는 마의 한 수에 여지없이 걸려든다.
이 질문에는 취업 9단도 헤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대답이 나와도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만 가지고 10분 이상 면접관과 공방을 벌인 적도 있었다.
"전 회사에서는 왜 퇴사하셨습니까? 좋은 회사인 것 같은데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들이 일반적이다.
1. “지방이라 힘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2.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어서 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3. “이 회사가 더 비전이 있어 보여서 퇴사했습니다.”
4. “전 회사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고 여러 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번을 제외하고는 비슷비슷한 답변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 회사에 대한 험담보다 미래지향적인 답변일 수밖에 없고 상세한 이유를 말할수록 공격의 여지는 늘어나기 때문에 말을 길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번 답변을 공격해볼까?
"그렇다면 우리 회사 지점(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먼저 한 발언을 뒤집을 것인가 소신을 지킬 것인가?
"발령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이중인격자이거나 거짓말쟁이다. 다른 회사에서는 지방이라고 해서 이직까지 결심한 사람이 여기서는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그건 논리 모순이다. 이번 면접은 이걸로 끝이다. 조용히 면접비라도 챙겨서 술이나 한잔 사 먹기 바란다. 다른 경우는 어떨까?
"우선 인사팀에 재고를 요청하고 가능하면 본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부탁하겠습니다.”
완곡한 답이긴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회사의 명령을 거부한 셈인데 마이너스 5점을 받고 다음 질문에서 카운터펀치를 맞는다.
"그래도 지방에 꼭 인재가 필요해서 가야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당신은 머뭇거리다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어 링에서 패하고 만다. 경기는 그걸로 끝이다. 이 질문은 경력직 면접에서 필수로 나오는데 어떤 답변도 공격 가능해서 마의 질문으로 부르고 싶다. 이 질문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면접 전에 반드시 시나리오를 짜서 연습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면접 시 어떤 질문에 대한 재질문은 두 번 이하가 보통이다. 그러나 스트레스 면접을 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 피면접자의 태도에 따라 재질문을 계속 반복해 거의 KO 직전까지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만큼 면접장은 냉혹하다.
결국 당신은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이렇게 몇 번 면접을 치르면 3개월은 금방 가버린다. 당신이 처음 계획했던 3개월은 취업이라는 세계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최종면접까지 갈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이 가는 것도 금방이다. 면접이라는 것도 경험이 쌓이고 모범답안이 축적돼야 합격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자격 준비, 모집공고 타이밍, 면접 준비 등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 때문에 이직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힐링 여행 갔다 오고 몇 달 동안 휴식을 취한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쉬는 기간이 6개월 이상 된다면 꼼꼼한 면접관들은 이 기간에 뭘 했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을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볼 테니 답변을 잘 준비해야 한다.
"1년 공백기가 있네요. 어디 다른 데서 일을 하셨나요? 아니면 무엇을 하셨나요?"
이렇게 물어볼 때 답할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냥 취업하려고 계속 지원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면접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이런 영양가 없는 답변에 면접관이 좋은 점수를 줄 리가 없다. 이직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 이직을 결심했다면 먼저 목표를 정해라. 그리고 시간 테이블로 계획을 짜보라. 목표는 명확할수록 좋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최소한 어떤 회사 군(Group)에 가겠다는 것이라도 정해놓아야 한다. 공기업을 가겠다. 대기업을 가겠다. 아니면 재단이나 단체를 가겠다. 공무원이 되겠다. 등등.
계획을 짤 때는 현재 직장에 최대한 충실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짜야 한다. 평일에 칼퇴근해서 주 5일 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이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자기 일을 소홀히 하면서 뭔가를 준비하다가는 일도 안되고 이직도 안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이직 결심은 절대로 외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것이 있는 상황에서 소문이 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것도 없이 소문이 먼저 퍼지면 당신은 동료들의 실시간 감시와 상사의 면도날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일단 소문이 나면 평소와 똑같은 실수를 해도 이직 준비 때문에 일을 허술하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것이다. 사내연애와 이직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정하면 안 된다. 주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도 본인이 인정하면 안 되고 결정적인 단서를 잡혀서도 안 된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앞으로 계속 다닐만한 곳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정도는 다녀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어떤 회사라도 최소 1년 정도 다니면서 한 사이클을 돌아봐야 그 회사의 참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가 괜찮고 동료들이 좋으면 3년 정도 버티는 게 좋다. 일시적으로 회사가 힘들 수도 있고 바쁠 수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문제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퇴사 후에 이직 준비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시행착오를 회사에서 다 하고 나와야 빨리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이든 공부든 모든 연습은 퇴사 전에 다 끝내고 완성된 실력을 갖추고 회사를 나와야 한다. 퇴사하는 순간부터 현금이 들어오지 않고 지출만 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다른 회사에 합격이 되어도 쉬고 싶다며 퇴사 후에 한 달 이상 공백을 두는 경우도 있는데 가능하면 공백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다. 중간에 쉬는 기간이 길어져서 도움 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에 매여 있다가 보면 몇 달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이 기간이 나중에 비수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가 회사에 종일 앉아 있는 것도 훈련된 행동이다. 아침 9시부터 일하는 것도, 일찍 자는 것도 다 직장인으로서 훈련된 리듬이다. 쉬는 기간이 길어서 생활 리듬이 깨지면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입사할 회사라면 빨리 들어가는 게 새로 입사하는 회사의 복지혜택을 최대한 챙기는 방법이다. 연차수당, 월급 기산일, 초과근무수당 등 회사마다 복잡한 사내규정이 있는데 어떤 규정이라도 빨리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
승진 일자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두 달 차이 때문에 승진대상이 1년씩 밀리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두고두고 비수가 된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퇴사는 마음대로지만 이직(재취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2. 시행착오는 현 회사에서 모두 끝내라.
3. 면접은 경험이 자산이다.
4. 퇴사판단은 최소 1년 정도 근무 후에 내리는 것이 좋다.
5. 이직 결심은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
6. 퇴사 후 새로운 회사 입사까지의 기간은 최대한 짧게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