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7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퇴사를 생각한 것은 1년 정도 근무했을 때부터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 위해서 몇 년 더 다니기로 했다. 회사라는 것이 어느 날은 당장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날은 그래도 좀 더 다녀할 것 같다고 마음이 약해진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인데 쉽게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영혼이 SOS를 보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벼랑 끝에 몰리고서야 결국 퇴사의 길을 선택했다.
‘퇴사의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회사라도 최대한 경력에 흠을 남기지 말고 떠나야 하므로 이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대개 회사를 들어가서 한 달이면 계속 다닐 회사인지 어느 정도 감이 오지만 1년 정도는 다녀보고 결론 내리는 게 좋다. 회사 일은 처음 1년이 제일 힘들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 1년간은 사실 크게 벽에 부딪힐 일은 없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을 잘 모르니까 의견 충돌도 없다. 1년 정도 근무하고 나면 어느 정도 회사가 보인다. 그때부터가 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기이다.
입사 후 1년도 안 돼서 퇴사하게 되면 이력서에 좋지 않은 기록이 되므로 그만두려면 입사 후 6개월 이전에 그만두고 이력서에는 적지 말아야 한다. 애매하게 8개월, 10개월 일하면 안 적기도 그렇다. 드물긴 하지만 이력서를 자세히 보는 인사담당자는 공백 기간에 무엇을 했는지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개월 동안 근무한 것을 이력서에 적지 않으면 그 기간에 뭘 했는지 답변이 궁색해진다. 6개월 넘게 일했다면 웬만하면 1년까지 다니는 게 낫다. 그렇게 해서 퇴직금이라도 받는 게 낫다.
경력직 채용에 적합한 경력은 3년인데 2년은 조금 부족하고 4년은 많다. 1년이 안 되는 경력이 이력서에 여러 개 들어가면 참을성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므로 자기 경력을 위해 적당히 기간을 맞춰서 퇴사해야 한다. 월급 잘 주고 동료들만 좋다면 웬만하면 3년은 버티는 것이 좋다. 경력이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쏟아져 나오는 신규 졸업생들과의 경쟁도 다소나마 피할 수 있다. 나중에 이력서상의 경력을 어필하고 싶다면 경력 내용이 어느 정도 일관성 있어야 한다. 특히 이공계 분야는 더 그렇다. 특정한 기술을 요구하는 이공계는 경험에 대한 가점이 많은 편이다.
인문계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요즘엔 본부 스텝 인원을 줄이는 추세이므로 인문계 전공으로 스텝부서에서 일한다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인사, 회계, 교육 등의 업무를 여러 팀을 돌아다니면서 맡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작은 회사는 한 팀 안에 이 업무가 같이 있다. 경력 기간이 짧아도 이 중 두세 가지 일은 해볼 것이다. 그중에 입사 지원한 회사와 가장 연관된 것으로 이력서에 쓸 수 있다.
경력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이 회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 때 최대한 빨리 그만두는 게 좋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가려진 면이 많아서 입사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연봉도 공개를 잘 안 하고 공개된 연봉도 실제와는 매우 다르다. 실제 연봉과 복지혜택이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떠나는 게 옳다.
퇴사 시기는 퇴사하기 불과 몇 달 전에 결정되는 게 보통이다. 물론 퇴직 후 자영업을 할 생각이라면 좀 더 오래전에 결정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퇴사라는 게 마지막까지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루는 게 보통이다.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 갈 곳이 확정되기 전에는 절대 회사를 나오지 않는 것이 좋다. 내 지인은 이직할 곳도 정하지 않고 퇴사했다가 막상 새로 취업이 되지 않아 3개월 넘게 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진다. 퇴직은 내 마음대로 돼도 취직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퇴사할 때 자발적 퇴직의 경우 실업수당 지급이 되지 않으므로 가급적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의 형식으로 나오는 것이 좋다. 회사 내규에 희망퇴직 제도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마음을 먼저 정하고 기회를 두고 보다가 정리해고 시기가 되었을 때 자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퇴사를 결정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방어적으로 일하게 된다. 이런 상태는 본인은 몰라도 옆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눈에 띈다. 그래서 최대한 내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퇴사를 통보하는 날까지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퇴사를 통보하는 날까지 평소 일하는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무리해서 야근까지 할 필요는 없고 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수준에서 하면 된다.
퇴사 통보 시기는 퇴사일과 가까울수록 좋다. 퇴사일 전에 휴가를 써도 되지만 연차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휴가를 쓰는 것보다 실제 퇴사일을 앞당기는 것이 좋다. 근무 일수에 따른 임금 지급기준이 회사마다 다르므로 이것도 고려해서 퇴사일을 정하는 것이 좋다. 꼭 한 달을 다 근무하지 않아도 한 달분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
퇴직을 통보할 때는 매우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금전적, 시간적으로 큰 이익은 아니더라도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퇴사를 통보하는 형식은 가급적 부서장에게 곧바로 통보하는 것보다는 중간관리자를 통해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차피 나가는 마당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부서장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 당신에게도 부담이 크고 부서장과 갑작스러운 협상 돌입 시 얼떨결에 중요한 것을 양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형식적으로도 부서장에게 직접 통보할 경우 중간관리자를 무시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므로 평화롭게 퇴사하고 싶다면 중간관리자를 통하는 게 좋다. 이것은 당신에게도 매우 유리한 결정이다. 중간관리자의 면을 한번 세워주고 퇴사 통보도 무척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통보 시기는 일주일 중 월요일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금요일에 통보할 경우 퇴사를 수용하지 않고 주말 동안 생각해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요일에 통보해야 관련 보고, 행정처리가 빨리 진행된다. 인사팀에 알려야 하고 인사팀은 관련 행정 처리를 해야 하는데 중간에 주말이 끼면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진다.
시간대로 보면 출근 후 1시간 이내가 좋고 가능하면 부서장이 없고 중간관리자만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부서장이 중간 관리자에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다면 아무 때나 해도 상관없다. 집중력이 좋은 아침에, 다른 일이 끼어들기 전에, 면담 시간이 충분히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부서장이 없을 때 하는 이유는 중간관리자에게 보고하는 중에 부서장이 끼어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퇴사 통보 시기는 후임자가 있어야 하는 경우 한 달 전, 없어도 되는 경우 2주 전에 통보하는 것이 적당하다. 2주면 행정처리에 충분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있어야 하는 경우 인사발령을 위해 시간을 더 주는 것이고 한 달 안에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나가더라도 그들이 당신에게 비난할 명분은 없다. 법적인 문제는 다를 수 있으므로 퇴사 전에 직접 체크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퇴사 통보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이런 것이 실전인데 통상 면담이나 차 마시는 시간을 요청하고 일대일 자리가 마련되면 되면 자연스럽게 퇴사를 통보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퇴사를 통보했을 때 부서장의 반응인데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어떻게 나오든 절대로 당황하면 안 된다.
1. 붙잡는 상황.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읍소하면서 붙잡을 수 있다. 강압적으로 붙잡는 경우가 당신을 당황하게 할 텐데 예를 들면 “네가 다른 데 가면 잘 될 것 같아?”,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이야. 그리고 이 바닥은 다 연결되어 있어.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아. 안 좋은 소문내 줄까?” 이런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통보할 것만 정확하게 통보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 된다. 어차피 시간은 당신의 편이고 퇴사를 결심한 마당에 눈치 볼 것은 없다. 회사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을 만만하게 봤다는 얘기이다. 퇴사하면 앞으로 안 볼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할 필요가 없어서 한번 질러보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 휘말리면 안 되고 그동안 신처럼 떠받들던 부서장이라 하더라도 움츠러들면 안 된다.
읍소하는 경우는 “니가 힘들었다면 내가 미안하다.”, ”너 이렇게 나가면 우린 어떡하냐? 후임자도 없잖아.", "곧 연봉도 올라갈 거야. 좀 기다려봐.”, "다른 부서로 발령 내줄게.”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다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부서장은 직원이 퇴사하면 안 좋은 평가를 받으므로 일단 붙잡는다. 당신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당신이 혹시라도 회사 고위층에 안 좋은 이야기라도 할까 봐 이미지 관리하는 것이다. 당신이 퇴사 의사를 접는 순간 이런 말들은 공허한 약속으로 끝나고 모든 상황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2. 냉정하고 쉽게 퇴사를 수용하는 상황.
이럴 때는 오히려 퇴사를 통보하는 사람이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서장이 당황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것이므로 밀어붙이면 된다. 회사는 당신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반응인데 섭섭하긴 하겠지만 당신의 퇴사 결정이 옳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서장이 “우리 회사 들어오고 싶은 사람 많아. 나가면 또 뽑으면 돼!"라고 말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자. 이런 마인드를 가진 회사에서 당신이 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3. 예상치 못한 거래를 요구하는 상황.
퇴사를 통보하니 갑자기 딜이 들어온다. 당신이 어떤 걸 하면 자기도 뭘 주겠다는 식이다. 퇴사를 몇 달 연기해달라거나 지금 남은 일 중 어떤 것을 마무리하고 가라는 식이다. 돈을 몇 푼 더 준다고 하면서 유혹할 수도 있는데 가능하면 단칼에 거절하는 게 좋다. 이것은 퇴사하는 순간까지 당신의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먹겠다는 의도이다. 게다가 딜을 받아들일 경우 당신은 퇴사를 통보한 상태에서 사원도 퇴사자도 아닌 애매한 입장으로 회사에 다녀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다른 준비해야 할 것들을 못 할 수도 있다. 원래 세워두었던 퇴사 후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 일도 안 시킬 테니 몇 달 더 있다가 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정말 일을 안 한다고 해도 퇴사를 결심한 이상 당신에겐 이 회사에 있는 시간이 가장 낭비되는 시간이다. 새로운 길을 정했으면 일분일초라도 그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다음 진로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남을 봐줄 상황이 아니다.
여담이지만 사람들이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인지 퇴사 통보하면 하얀 봉투에 사직서를 쓰는 줄 안다. 그러나 내가 본 경우에 그런 것은 없었다. 공공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전산시스템이 구축된 곳은 전자 결재를 올리고 좀 열악한 곳은 출력해서 서명한다. 이 문서를 보통 퇴직계라고 하는데 이걸 쓸 때 마음은 그야말로 씁쓸하고 착잡하다. 퇴사 통보하고 나면 후련할 것 같아도 이때만큼은 기분이 좋지 않다.
업무 인수인계는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면 된다. 신기하게도 내가 없으면 당장 멈출 것 같은 업무가 막상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인수인계는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후임자를 위한 것이므로 적당히 해주는 게 좋다. 전혀 하지 않으면 뒷말이 많아지고 후임자마저 당신을 욕할 것이다. 어차피 인수인계 때문에 회사가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죄 없는 후임자만 힘들 뿐이다. 당신이 그다지 후련하게 될 일은 없으므로 적당한 인수인계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