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8
오늘부로 퇴사를 했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직할 곳이 정해져 있는지에 따라 다른데 만약 갈 곳이 정해져 있다면 잠깐의 쉬는 기간이기 때문에 뭘 새로 시작하기도 그렇고 그냥 쉬기도 애매한 기간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관련 공부를 미리 해두거나 그동안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지식을 쌓는 기간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취미활동(게임 등)을 원 없이 해보는 것도 좋다.
회사에 들어가면 장기간 휴가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럴 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면 된다. 자격증, 면허를 따는 것도 좋고 그동안 참여하지 못했던 오프라인 모임이나 문화예술 쪽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회사 생활은 일단 출근하는 날부터 레이스가 시작된다. 운동화 끈을 다시 맬 여유는 없기 때문에 이 소중한 시간 동안 충분히 자기 자신을 정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퇴사 후 갈 회사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 책의 조언대로라면 퇴사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이직 준비에 총력으로 나설 때이다. 쉬는 기간은 길어서 좋을 게 없다.
이직을 위해서는 일단 기업을 물색해야 한다. 이것은 퇴사하기 전에 해놓으면 좋다.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고 경험과 데이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사이트나 구직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보통인데 취업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는 여러 직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곳과 특정 직종만 다루는 곳이 따로 있다. 공기업이나 재단, 협회 중에서는 아주 소규모의 회사들도 있는데 이런 기업들의 채용정보는 특정 직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취업 커뮤니티가 있으므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분야의 커뮤니티에 가입해 정보를 찾으면 된다.
전문 구직 사이트에서도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데 여기 나오는 정보를 그냥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구직사이트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을 알아보겠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기준이므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1. 업력
회사가 생긴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회사를 판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회사의 역사에 따라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업무 환경과 인력, 복지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들어맞는다.
일단 회사는 무조건 오래된 회사가 좋다. 업력이 길면 길수록 좋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회사가 한번 세우면 잘 안 망한다고 하는 것인데 창업진흥원에서 나온 “창업기업의 생존율 및 고용창출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창업 5년 이내 부도난 회사 비율이 무려 73.1%(생존율 26.9%)이었다.
그만큼 기업의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것은 대기업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IMF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30대 기업의 절반가량이 교체되었다. 예전에는 꿈에서라도 대우그룹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삼성이 망한다고 상상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모든 산업경제 사이클이 빨라지고 있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아무리 큰 기업도 도태되어 사라진다. 철옹성 같던 노키아의 몰락이 단적인 증거이다.
기업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위험에 노출되었고 그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한 강자란 뜻이다. 물론 최근에는 정부 지원금만 축내는 좀비기업도 많지만 만약 지원금만 받아서 30년을 버텼다면 그것도 능력이다. 대개는 그런 경우가 없다.
내가 보기에 기업 역사는 최소 20년 가능하면 40년 이상이 돼야 안정권이라 볼 수 있다. 기업과 사람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기업은 영속적 운영을 목표로 한다. 기업의 시간 개념으로 20년은 짧은 기간이다. 창업 후 5년은 시장에서 자리 잡는 기간이다.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라고 불리는 기간으로 시장에 안착하기 전 투자 자금 소모 기간인데 대부분 회사가 이때 무너진다.
창업 후 10년이 되면 어떤 캐시카우를 확보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때쯤 위기가 온다. 왜냐하면, 10년이면 산업 사이클이 한번 돌 때가 되었고 성장도 한계에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20년이 되면 이런 위기도 한두 번 겪어보고 시장의 변화도 겪으면서 회사가 본격적인 성숙 단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20년도 부족하다. 40년 이상 되어야 웬만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된다.
40년 이상 된 회사가 좋은 이유는 우선 창립멤버가 회사에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 멤버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같이 일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항상 기득권을 주장하고 시대변화를 거부한다. 회사를 자신들이 키웠다는 자부심이 다른 직원들을 찍어 누르는 데 이용된다. 어떤 면에서는 회사를 좀먹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회사를 자신들이 키웠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고 이 회사에서 개인적 이득을 좀 취한다고 해도 자기들이 바친 시간에 대한 보상이므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것이 당신이다. 당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를 무한 반복으로 들어야 하는 것도 당신이다. 그리고 낡은 업무 처리 방식과 변화 거부로 인해 당신을 힘들게 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세대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일이다. 변화를 거부해야 기존 세대가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생존 차원에서라도 혁신을 거부해야 하는 운명이다.
업력이 40년이 넘으면 한세대가 퇴장하고 2세대 내지 2.5세대가 회사의 상층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물론 민간기업의 경우에 근속기간이 짧기 때문에 40년이면 이미 최소 3번은 세대가 바뀔 만한 시간이다. 이 정도면 세대 차이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바로 복지이다. 직원의 복리후생은 회사가 오래될수록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최적화된다. 대체로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특히 적립식 공제회 같은 경우 기존 적립금이 많이 쌓여있어서 오래된 회사가 훨씬 유리하다. 상조회도 마찬가지다. 복리후생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절대로 하루아침에 정교한 체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오래되면 그만큼 유리하다.
업무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조직구조, 업무처리방식, 연봉체계, 회사 자산 등 모든 면에서 오래된 회사가 유리하다. 만약 이것저것 보기 힘들다면 역사만이라도 따져보기 바란다. 만약 회사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볼펜으로 장부를 쓰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요즘 그런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볼펜만 없을 뿐 수작업으로 하는 직장이 있다. ERP 같은 것도 서류처리에서 전산으로 업무 전환이기 때문에 큰 결단이 필요하며 돈이 들어간다. 업력이 짧은 회사는 이런 것을 하기 힘들다. 시스템이 없으면 당연히 당신의 잡무는 늘어날 것이다.
역사가 짧은 회사에 들어가려면 아예 창립멤버가 되는 것이 좋다. 확실한 기득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이 많고 기초 작업과 시행착오를 다 겪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이점을 분명히 알고 선택하기 바란다. 회사를 선택할 때 회사 홍보물이나 이미지만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눈감고 입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모든 회사가 혁신, 창의, 미래를 외친다. 장담하건대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말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다.
경영자, 간부층의 세대가 수십 년 전에 일을 배운 사람들인데 당신들에게 구글(Google)처럼 일을 시키겠는가? 그 사람들 중 극히 일부는 시대를 앞선 생각을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다. 혁신 외치는 회사에 혁신은 없다. 홍보에 속지 말고 입사하려는 회사에 대해 다양한 경로로 미리 조사해보기 바란다.
2. 회사의 규모
태풍이 불 때 배가 클수록 안전하듯이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안정적이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려면 큰 회사에 다녀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을 수십 년째 펼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라는 게 권장돼야 할 사항인지는 의문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많아도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극복되지 않는 것이다. 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기업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라 경쟁력, 성장 가능성이 있을 때 지원해야 한다.
회사 규모가 크다는 것은 분야별로 전담인력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로 교육, 복리, 인사 등 여러 분야에서 직원들을 편하게 해 줄 수밖에 없다. 큰 회사에서는 사적인 면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하기도 훨씬 편하다. 작은 회사에서는 서로 사적으로 잘 알고 관심도 많기 때문에 친밀도는 높지만 필연적으로 파벌이 생기고 미운 놈, 고운 놈이 생긴다.
큰 회사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공적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개인의 전횡이 그만큼 쉽지 않다. 서로 견제하는 사람도 많고 한 사람의 비중이 작기 때문에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개인행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이 인간관계에 능숙하지 않다면 큰 회사로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사람도 잘 사귀고 서로 끈끈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면 작은 회사를 가도 상관없다.
내 경험상 대체로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으로 가까워지면 필연적으로 서로 불만이 생긴다. 인간이란 가까워질수록 서로 기대하는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실망하고 적으로 돌아선다. 작은 회사는 부딪힐 기회가 많아서 서로 실망할 일도 많다. 큰 회사는 그런 면에서 그나마 신경 쓸 일이 적은 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큰 회사인가? 100명? 200명? 내가 볼 때 공적 사회로서 기능하려면 최소 200명(정규직 기준), 권장하기로는 400명 이상이 좋다. 왜 200명일까? 내 경험상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낼 수 있는 현실적인 숫자는 최대 100명~200명이다. 즉 200명 이하의 회사는 직원들끼리 서로 얼굴을 알고 있다.
400명 정도 되면 솔직히 모르는 직원이 100명은 넘는다. 3천 명이 넘게 근무하는 곳에서 일해봤는데 평생 모르고 지낼 직원이 더 많았다. 그 정도 규모가 되면 회사가 완전히 하나의 공적 사회가 되어 사적인 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이 줄어든다. 정말 싫어하는 상사에게 한번 버럭 하더라도 회사생활이 끝나지는 않는다.
전체인원이 40명인 회사에 당신이 입사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신입사원으로 가는 순간부터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고 회사에서는 실시간으로 소문이 날 것이다. 아침에 뭘 입었고 주량이 얼마고 애인이 있는지, 아버지가 뭐 하시는 지까지 시시콜콜 사내에 소문이 난다. 평소 이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큰 회사로 가는 게 유리하다.
중소기업이 발전하고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가도록 하려면 회사에 대한 지원보다는 중소기업이 노동법을 비롯한 제반 법규를 완전히 준수하게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법을 지키는 데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야근 수당을 안 주거나 휴가, 근무시간 등 정해진 근로계약을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이런 것만 해결돼도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는 많이 사라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상태에서는 중소기업을 추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눈높이의 문제가 아니다. 근무환경이 그만큼 차이 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 규모는 직원 수로 판단하는 게 가장 쉬운데 이때의 직원은 정규직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은 같은 회사에서도 회사생활의 여러 규칙에서 조금씩 다르게 적용받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회사로부터 받는 혜택이 정규직에 비해 적다보니 당연히 의무도 적을 수밖에 없다. 직원 수가 많아서 큰 회사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경우 실질적인 생활은 작은 회사나 다름없게 돌아간다. 회사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심하면 서로 암묵적인 벽이 생긴다. 비정규직도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조직문화가 소수의 정규직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정착된다.
회사를 고를 때는 앞에서 말한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누가 명시적인 데이터로 알려주지 않는다. 경험이 알려주는 정보이다. 잘 모를 때는 회사 평판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데 요즘에는 이런 것을 다루는 SNS나 웹서비스가 많다. 내가 이직을 할 때만 해도 이런 것이 거의 없어서 그저 인터넷 카페를 전전해야 했다.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홍보담당자의 의견이 아니라 현장의 소리를 단점 위주로 수집해서 분석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생활은 겉으로 보는 것과 안에서 겪는 것이 천지 차이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특히 장점보다는 단점 위주로 봐야 한다. 우리가 회사를 그만둘 때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점은 떠나는 사람을 붙잡는 데 한계가 있지만 단점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마음이 떠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