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일기 04화

회사 다니면서 하기 싫었던 일

퇴사일기 4

by 키르히아이스

회사가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조직 생활이란 녹록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80년대에 회사를 다닌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우리 아버지, 삼촌 세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80년대 회사에서 직장 내 상하 관계는 거의 주종관계에 가까웠고 폭언은 물론이고 폭력행사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이겨낸 선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요즘에도 가끔 폭언, 폭력으로 인한 직장 내 갑질 행태가 언론에 나와 국민적 공분을 사는데 80년대에는 수많은 샐러리맨이 그렇게 살았다. 그 시절 김 대리는 회사 으슥한 곳에서 얼마나 많이 울어야 했을까?


남녀차별도 말도 못 할 정도로 많았다. 여직원은 늘 커피나 타야 했고 결혼하면 바로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권위적인 직장 상사들이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들은 군대처럼 철저한 충성심을 강요한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 외의 어떤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우리 모두 가족으로서 소중한 존재이지만 권위적인 직장 상사들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임신해서 배가 나와도 야근하라고 은근히 압박을 주는 게 그들이다. 그것을 견디는 여성들도 대단하지만 자기 아이와 아내는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남의 소중한 배우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그들의 이중적 행태는 좋게 볼 구석이 없다.


그들에겐 회사가 세상 전부이겠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보면 그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 한없이 작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깥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한 줌의 모래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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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힘든 회사생활을 견뎌낸 많은 김 대리에게 존경을 보내고 싶지만 그들 중 일부가 직장 상사가 되어 지금의 회사생활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어 마냥 그럴 수도 없다. 자기가 겪은 회사생활이 기준이 되어 후배들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한다. "나 때는 이런 식으로 하면 난리 났어!" 하고 말이다. 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 옛날 같으면 엄청 혼냈을 거야. 지금 분위기가 좋아져서 그렇지.“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지금이 좋아졌다고 한다. 예전 회사에서는 아침 일찍 나와 배달 온 신문을 조심스럽게 사무실로 가져와서 부서장의 책상 위에 정해진 신문사 순서대로 놓고 신문 끝이 딱 맞아떨어지게 각을 잡아놓아야 비로소 아침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 긴장감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보수적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런 일을 종종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을 시키는 이유는 신문이 꼭 보고 싶은 것보다 아래 직원들의 군기를 보는 척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각종 하기 싫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장에서는 이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언론에서 이런 조사를 하면 굉장히 점잖은 답만 나오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1. 사적 심부름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보수적인 기업들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악습이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간단한 물품 사 오라는 것부터, 커피 타기, 물심부름이 있고 이거보다 좀 더 높은 수준에서는 은행 심부름, 인터넷상의 각종 업무(인터넷뱅킹, 물건 주문 등), 택배 심부름 등이 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단순해서 다행이다. 자신의 개인 문서 작성 시 대필, 자료 찾기, 영문 번역 등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이런 것들을 시킨다.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공사의 구분이 없다. 자신들이 그러하니 아랫사람에게도 당연히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회사는 왜 아직도 이 수준인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급 구조상 부서 내에서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부서장에게 말단 직원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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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사람 중에 거의 개인 기사 수준으로 운전을 하며 상사를 모시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 아버님한테는 과연 저 정도 해줬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그 마음만은 이해가 간다. 얼마나 억압을 받았으면 그랬겠나. 오히려 회사 생활면에서 나는 그 사람보다 한참 떨어진다. 회사생활의 진정한 강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회사 생활 강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내 생각엔 회사생활 최고의 고수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목석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겐 그 어떤 악덕 상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런 사람은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돌부처와 같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도량이 모자라기도 했고 내 성격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을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럴 수 없었다. 스트레스 내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견디는 힘이 어마어마한 그분들이야말로 직장의 신이다. 나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이런 책을 내야 하는데 워낙 목석처럼 말이 없으셔서 그 노하우는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2. 같이 밥 먹기, 긴 회식

아주 일반적인 현상인데 직장 상사가 가는 곳이 오늘 점심 먹을 곳이다. 메뉴 선택권은 없고 불참할 수도 없다. 못 먹는 음식도 그냥 먹는 척해야 한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란 그냥 배 채우는 시간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고 어떤 사람은 휴식하거나 식도락을 즐긴다. 그런 시간마저 상사와 보내야 한다면 회사생활은 더 갑갑해진다.


사실 같이 밥 먹는 건 해줄 수 있는데 밥만 먹는 게 아니라 밥 먹는 중에도 업무 이야기만 계속하고 끝나면 또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나의 소중한 점심시간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은근히 짜증이 난다. 왜 직장 상사들은 하나같이 밥을 같이 먹길 원할까?


나는 이유를 안다. 외롭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갈수록 외롭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한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평가자이고 한 사람은 피평가자이다. 피평가자는 이런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팀장은 "너 이 술 안 마시면 평가 D 줄 거야!"라며 웃으면서 농담을 해도 팀원은 그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낫을 가진 사람이 웃으면서 "너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목자를 거야."라고 하는데 그게 농담으로 들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부하직원들이 부서장을 보면 긴장하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된다. 말, 행동 모두 조심하게 되므로 친해질 수가 없다. 부서장은 이런 사정을 모른다. 사람은 입장이 바뀌면 올챙이 시절을 금방 잊어버린다.


평소 겸손하던 사람도 부서장의 자리에 앉자마자 눈빛부터 달라진다. 자기 말 한마디가 부서원들에게 어떤 임팩트로 다가오는지 까맣게 잊고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휴가 좀 다녀오겠다는 말에 잘 다녀오라고 하면 되는데 괜히 어디 가는지 누구랑 가는지 별걸 다 물어본다. 이렇게 되면 '가지 말라는 건가?'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행동이 아랫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빨리 진급한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게 외로우니 항상 팀원들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냥 치켜세워 주는 분위기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면도 있는데 이런 마인드로는 젊은 사람들과 대화가 통할 리가 없다. 업무만 생각하니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일 이야기밖에 없고 결국 점심시간도 업무의 연장이 된다. 밥만 먹고 들어가면 그나마 나은데 사적인 대화는 하고 싶은지 커피숍까지 팀원들을 데리고 가면 정말 도망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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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지 않아도 부서장이 팀원들과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권위를 내려놓고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팀원들에게 메뉴 선택권을 주고 부서장은 계산만 하면 된다.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은 그런 일도 하라는 뜻이다. 듣는 것을 주로 하고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풀어놓으면 부서장이라고 누가 외면하겠는가?


나는 점심시간에는 내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공원에서 봄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냥 하루 한 번은 Break time을 가지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밖에 나와 업무에서 잠시 손을 떼고 머리를 비웠다가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업무를 시작하고 싶었다. 온종일 같은 업무만 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오늘 날씨는 어떤지, 거리에 차는 많은지, 계절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여론 조사하면 직장인들의 책 읽는 양이 보통 한 달에 한 권 정도라고 나오는데 이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회사에 다녔지만 그 정도로 책을 읽는 직장동료, 상사, 후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직장인, 비직장인을 막론하고 우리나라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일 년에 한 권도 안 보는 사람이 태반이다.


여론조사에서 한 달에 한 권이라고 나오는 것은 아마도 잡지, 업무 관련 책까지 다 포함해서 그렇게 잡았을 것이다. 회사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부서장이다. 부서장의 책상 위에는 항상 사서삼경이 놓여있다. 특히 논어, 맹자를 즐겨 읽는다.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직장인이 책을 안 보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인데 점심시간마저 빼앗아 가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하기 싫은 것이 긴 회식이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으로 회식이 많이 줄었다지만 나는 회식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만 이런 부담스러운 문화가 있다. 간단하게 식사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은 딱 질색이다.


"업무 끝나면 제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본연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것이 내 소원이었다. 회식의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상사와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걸 꼭 술을 먹고 해야 하는 것부터가 이미 직장 분위기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일과시간에는 왜 말을 못 하나? 술 한잔 먹여놓고 알딸딸한 분위기가 되어야 말할 수 있는 관계라면 군신의 관계와 무엇이 다른가? 좋은 회사는 회식을 안 해도 알아서 친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진다. 단체로 뭘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회사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하지 않아도 직원들끼리 알아서 생일 축하하고 선물도 주고 한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3. 행군

요즘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회사에는 군대식 문화가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땅한 직원 교육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을 때 보여주기 효과가 뛰어난 행군을 교육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조직일수록 행군을 많이 하는데 금융권, 대기업, 공기업이 대표적이다. 보통은 신입사원 연수 때 하지만 전사 교육을 통해 산행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회사에 다녀봤지만 대부분 행군을 했다. 행군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벤트 업체도 있어서 많은 기업들이 쉽게 자사 교육 프로그램에 행군을 포함하고 있다. 전 세계 회사 중에 행군하는 회사가 있을까? 행군 때문에 사고 소식도 가끔 뉴스에 나오기도 하는데 기업의 행군은 그냥 걷는 게 아니다. 걷는 코스마다 미션을 부여하고 통과해야 다음 코스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조별로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심지어 뛰어가는 조도 있다. 보통 20~40㎞ 행군이 기본이다. 군에서도 사실 이 정도 행군을 안 할 수 있는데 기업에서는 거침이 없다. 사원들의 정신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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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은 신입, 선배, 남녀 구분도 없다. 전 직원이 동참한다. 40대 후반의 배 나온 부서장과 환자도 참여한다. 열외를 받고 싶으면 미리 얘기할 수 있지만 인사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웬만하면 참는다. 어차피 행군을 완료해야 교육 수료로 인정받기 때문에 빠져도 부담이다. 직원들이 목적도 없이 이를 악물고 산을 넘는 것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까웠다.


회사는 인정사정이 없다. 행군에서 열외를 받더라도 그것이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만큼 뒤처질 뿐이다. 그래서 나이 든 부서장과 여성 할 것 없이 억지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이다. 구글 직원들이 행군한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나는 이것이 조직에 한 가지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세대가 달라서 더 좋은 환경에서 마인드 자체가 다른 상태로 회사에 들어온다. 경험은 부족할 수 있지만 누구보다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할 친구들이다. 그런데 선배 직원들이 때 묻은 악습을 그대로 물려주고 강요하면서 조직문화가 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같이 스마트하고 좋은 세상에 왜 이런 무식한 일을 할까? 그건 바로 조직의 보수성 때문이다. 그들의 뇌에 박혀있는 정신력, 충성심이 결과물을 좌우한다는 쌍팔년도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몇 시간 산행하는데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못 한다. 회사는 그런 곳이다. 보통 부서장들이 등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계획을 주도하고 실제로도 산에서 앞장선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 산행하는 회사도 있으니 그런 회사 상사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산행이 좋으면 당신들이나 하세요. 내 토요일은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난 군인이 아니니 행군하라고 하지 마시고 거기서 얻는 정신력은 당신들이나 가지세요.“


회사에서 아무리 창의력, 자율성을 강조해도 대한민국 회사들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의 상층부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창의, 혁신이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충성, 정신력을 강조한다.

나열해놓고 보니 지금 생각해도 치를 떨 만큼 하기 싫은 일들이다. 이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지금도 이런 일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나는 이미 퇴사했기 때문에 홀가분한 입장에서 글을 쓰지만 그때는 정말 목숨이 달린 것 같아 고민이 많이 되었다.


더 회사에서 오래 버텨 나쁜 문화를 없애지 못한 것은 내가 부족한 탓이다. 나는 타협하는데 재능이 없었다. 내가 후배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좀 더 좋은 세상이 열리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회사생활이 만만치는 않지만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그것은 꾸준히 잘못을 지적하고 우리 세대부터라도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그때 했던 고민을 이후 세대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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