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2
10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샐러리맨으로 지내려고 했다. 배짱도 용기도 없는 내가 바깥에 나가서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겪은 그동안의 경험들은 나에게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번의 이직을 했던 나는 이번에 이직과 자기 일 중에 고민하다가 자기 일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러 회사를 다녀본 경험상 다른 회사를 가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인 것은 알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생각과 의지가 무시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비로소 내 의지대로 일해볼 차례이다.
오늘은 퇴사 후 하루 생활을 어떻게 할지 계획표를 작성했는데 초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찬찬히 고민해서 계획을 짜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순간부터 뭔가를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며 계획할 시간이 없었다. 헐레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전력 질주로 지하철을 잡아타고 아슬아슬하게 출근 도장을 찍는 게 일상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출근 시간만 지켜질 뿐 퇴근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윗사람들은 퇴근시간이 돼도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서장보다 일찍 퇴근하려면 가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부서장은 의례 "응?" 하고 얼굴을 빤히 본다. 퇴근하려면 이 부담감을 이겨야 한다. 얼굴에 철판 깔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쉽지 않았다.
여러 회사에 다녔지만 바쁠 때는 퇴근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주말개념도 없었다. 쉬면 주말이고 일하면 평일이었다. 집에 보내주는 시간이 퇴근 시간이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심지어 출근한 날 퇴근하기도 어려웠다. 일이 끝나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퇴근이 가능했다. 6시가 되어 자리에서만 일어나도 “퇴근하려고?”라는 말이 떨어지는데 퇴근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퇴근할 때 얼굴도장을 안 찍으면 다시 오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집에 가도 언제 불러낼지 몰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부를 테면 부르라고 생각하고 퇴근 시간 되면 회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습관적으로 야근하는 사람들에게 맞추다가는 내 시간을 다 뺏길 것 같았다. 가방과 겉옷을 그대로 두고 퇴근한 적도 많았다. 고등학교 야자(야간 자율학습) 땡땡이치는 것도 아니고 서른 넘어서 이게 무슨 일인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휴가라도 낼 요량이면 상사는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퇴근이든 휴가든 정말 갈 건지 왜 다시 확인하는 걸까? 신입사원 때는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가져갔다. 나중엔 그냥 쉬려고 한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많은 부담이 느껴졌다. 법정 휴가인데도 쓰는 데 눈치가 보였다. 나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이 이런 모습일 텐데 나는 왜 더 힘들다고 느꼈을까?
나는 이런 식으로 좋은 시절 다 보내기는 싫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꿈과 에너지를 야근과 함께 날려 보내기 싫었다. 그 야근이 의미 있는 야근이었다면 그나마 보람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눈치만 보고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한 야근이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어떤 부서장은 저녁이 되면 으레 "저녁 먹으러 가자."라고 외친다. 그러면 나는 머릿속으로 이 말을 하고 싶어진다.
“6시는 저녁 시간이 아니고 퇴근 시간인데요?”
억지로 저녁을 먹으러 가면 '일 이야기'가 이어진다. 밥 먹는 내내 일 이야기만 한다. 온종일 일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 이야기가 남아있나 보다. 이렇게 저녁 먹고 오면 시간은 한참 지나있다. 차라리 저녁을 굶고 일하다가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이게 현실의 직장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꿈꾸던 멋진 샐러리맨이 아니라 마치 기계 부품이나 머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기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마치 돈을 빌려 쓰고 노동력으로 갚는 노비 같은 느낌이었다.
그 생활을 다 청산하고 퇴사를 했다. 그 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이제부터 내가 결정하고 내가 계획한 일을 해야 하니까 새로운 작업환경이 필요했다. 책상이나 컴퓨터를 새로 사고 필요한 교육 과정을 신청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맬 시간이 없었고 무조건 계속 뛰어야 했다. 채찍을 맞을까 봐 운동화 끈이 풀어져도 묶지 못하고 계속 뛰어야 했다. 그게 10년간의 회사생활이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거나 경험하고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은 없었다. 회사는 직원을 죽지 않을 만큼 짜내지만 새로 채우는 것에는 인색했다. 직장 상사는 해외 출장을 가거나 외부교육을 듣는 것을 다 노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자기들이 그렇게 생활해왔으니 후배들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어젯밤까지 죽도록 야근하다가 해외 출장이나 외부교육을 하러 가면 교육에 제대로 참여하기가 어렵다. 썩은 문화가 썩은 결과를 낳는 것이다.
퇴사 후 집에서 쉬면서 그동안 듣고 싶었던 교육/세미나를 골라 신청했다. 그런 교육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동안엔 시도해보지 못했다. 퇴근이 보장되지 않으니 어떤 시간 약속도 평일에는 할 수 없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내가 자주 듣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일이 많으면 주말에 나와서 해야지.”
2. "어제 칼퇴근했잖아. 푹 쉬었으니까 일 좀 해야지. 야근한 지도 오래되었고.”
3. "그냥 버텨. 그게 최고야.”
여기에 대해 내가 하지 못한 말은 다음과 같다.
1. "일이 많으면 좀 줄여주시면 안 되나요? 업무분장이 잘못된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2. "칼퇴가 아니고 퇴근 시간에 퇴근했고요. 푹 쉰 게 아니고 온종일 일하고 퇴근했어요. 푹 쉬었다는 것은 출근을 안 해야 하는 말 아닌가요? 야근이 무슨 시간 되면 먹는 끼니 같은 건가요? 한 지 오래되면 꼭 해야 하나요?"
3. "회사생활을 왜 버티면서 해야 하나요? 나는 극기훈련 온 게 아니고 평생 할 일을 찾아온 건데요. 평생 버텨야 하는 거예요? 당신은 사랑도 버티면서 하나요? 밥도 버티면서 먹나요?”
이런 말도 못 하고 나온 나는 제대로 소심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나가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1. “시킨 거 많은데 안 하고 가나?”
2. “나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하고 나가야 하는데.”
3. “인수인계는 확실히 하고 가겠지?”
여기에도 내가 못한 대답이 있다.
1. "저 지금 나간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여기서 몇 년 동안 일했던 부하 직원이자 동료가 나간다고요. 왜 나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금 조직에 뭐가 문제인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2. "일 얘기 그만하고 저 나간다고요. 저 ○○○ 나간다고요. 안 보이세요?"
3. "내가 왜 인수인계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뭔가 켕기는 게 있으세요? 그렇게 걱정되면 인수인계할 상황(퇴사)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건 어떠세요?"
직원이 나간다고 하면 뭐가 문제인지, 개인 문제인지 조직의 문제인지 살펴보는 게 기본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들어올 사람은 줄 서 있다는 생각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둔감하다. 중간층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나가는 게 얼마나 큰 손실인지, 팀 분위기에는 또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회사들의 현실이다.
퇴사 시 인수인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간혹 회사에 감정이 있어서 인수인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인수인계 때문에 부서장은 답답할 게 없다. 후임자만 힘든 것이다. 내가 후임자를 힘들게 하려고 퇴사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손해 보면서 해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인수인계는 후임자를 위해서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빠지면 일의 연속성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업무의 개선이라는 것은 그 업무를 몇 년 동안 해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업무와 개선업무 중에서 개선업무는 담당자가 바뀌면 중단되는 것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의 손해이다. 회사에서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회사는 나이만 먹고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미성숙아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경우로 또 한 가지 흔한 경우가 몸이 아플 경우이다. 두통, 몸살, 디스크, 독감 등 팀원들이 다 쓰러져가도 상사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1. "긴장이 풀어져서 그래.”
2. "네가 왜?"
3. "그 정도는 괜찮아.”
여기에도 말하지 못한 대답이 있었다.
1. "회사에 다니는데 왜 긴장을 해야 하죠? 여기가 군대인가요? 제가 경계 근무라도 서나요? 여기 누구 생명이 걸려있나요? 누군가 저 때문에 다치나요? 긴장이 풀리면 몸이 아프다는 건 어디서 나온 의학지식입니까? 학계에 보고하려고요."
2.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당신이 일을 무리하게 시켰기 때문이겠죠. 설마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죠?"
3.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요? 내가 어느 정도 아픈지 당신이 아세요?"
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사를 몇 번 옮겼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퇴사한 적은 없었다. 퇴사를 결정하고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싸우기 싫었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싫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도 이런 심정일 거라 생각한다. 퇴사한다는 것 자체가 백기를 드는 것과 같다. 우리가 퇴사한다고 해서 회사나 직장 상사가 아쉬울 것은 거의 없다. 반면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위험에 놓인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정도의 배짱이 있다면 애초에 퇴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약하다고 평가받는 상사들이 의외로 대드는 부하직원들에게 약한데 고발도 잘하고 소원 수리 같은 것도 잘 쓰는 사람에겐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다. 당신에게 막말하는 상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맞대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할 말 다 하고 사는 성격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변 사람이 가까이하기 껄끄러운 사람이 된다. 인간들은 대부분 예측 가능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이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말이다. 들이받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시원할 수는 있지만 가까이하면 서로 피곤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해서 당신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다. 당신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 자기 성격과 잘 맞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직장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선택지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이다. 퇴사는 그런 관점에서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