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3
회사를 나오고 나서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요즘처럼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밖에 나가 새로 핀 꽃을 보고 흘러가는 냇물을 보면 이 평화가 진짜 나한테 주어진 것이 맞는지 볼을 꼬집어보곤 한다. 머리 깎을 돈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건 왜일까?
몇 년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하나는 MBN 채널의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자연인)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프로가 “동물의 왕국”이었는데 요즘 내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그렇게 즐겨본다. 이제야 아버지가 동물의 왕국을 좋아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버지가 그 프로를 보는 것은 동물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인간들과 부대낌에서 벗어나 순수한 동물의 눈빛을 보려는 이유였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동물을 보면서 자신만의 힐링을 즐기셨을 것이다.
자연인 프로는 시청률 5%를 넘기며 장수 인기 프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방영 7년이 지났는데도 인기는 꾸준하다. 아이돌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강호동, 유재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이 프로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 프로에서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대자연이 나온다. 어떤 이유로 들어왔든 자연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번뇌를 떨치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시키지 않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회에서 겪은 일들은 번뇌의 연속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자리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했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 자신은 있었지만 시키는 대로만 살 자신은 없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 내 가치관에 맞게 살고 싶었다.
하루 한 번 햇빛도 보지 못하고 일할 때도 있었고 아침 첫차를 타고 퇴근할 때도 있었다. 이유라도 알고 했다면 좋았을 그 시절 회사생활 속에서 나는 그저 눈만 뜨면 일하는 기계였다. 택시가 끊어진 깊은 밤에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텅 빈 거리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기분은 전혀 다르다.
자연인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들보다 내가 행복한지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스스로 할 일을 정하고 열심히 일한다. 자신만 속이지 않으면 된다. 일한 만큼 인정받고 결과물을 얻는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의 법칙이 상식이라면 나는 그 상식을 내 삶 속에서 바랐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삶이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놀고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삶이 온다고 해도 하루 이틀 즐겁고 말 일이다. 우리는 평화로운 삶을 꿈꾼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도 가끔 다른 회사 사무실을 지나치면 회사생활에 대한 추억이 생각난다.
평화롭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해진 시간에 나와 자기 일 열심히 하고 문제 있으면 동료들과 상의해서 해결하고 시간 되면 퇴근하고. 그것이 내가 바란 회사생활의 전부였다.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그저 평화롭게 일하고 일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게 내 신조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정해진 퇴근 시간이 있지만 그보다 늦게 가야 했고 정해진 일이 있지만 그보다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직장 상사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은 나 혼자 하는 것이고 잘못됐을 때 지적하는 게 상사가 하는 일이었다. 일할 때는 어딘가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뭔가 잘못되면 하나둘 나타났다.
퇴근 시간은 갈등의 시간이었다. 직장 상사가 퇴근하려는 나에게 일이 있으니까 하고 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있다. 그것도 1년 내내 있다. 할 일이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항상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이 있으니까 퇴근하지 말라면 1년 내내 회사에서 살아야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내가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일이 많다면 업무분장에 문제가 있는지 먼저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을 생각하는 상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러다 보니 팀원들이 어려운 일, 큰일을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거절한 일이 결국 나한테 떨어지고 나는 마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일은 ‘하는 사람’에게 계속 붙게 되어있다. 우리나라 직장문화가 그렇다.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몰린다. 월급은 똑같은데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일은 더 많이 주어진다. 그동안 많이 참고 내 몫을 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낮에 집 앞 공원에 나가서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따뜻한 햇볕이 손등에 와 닿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김밥이라도 있으면 앉아서 먹고 싶은 날씨이다. 이곳은 평화롭지만 그곳은 전쟁터였다. 욕설이 난무하고 소리치고 집어던지는 그런 곳에서 내가 꿈꾸던 회사생활의 모습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원래 에반젤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같이 기술기반 기업들은 대중에게 기술을 쉽게 설명하고 기업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발표, 강연을 주 업무로 하는 에반젤리스트를 사내에 둔다. 평소에는 현업에 있다가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시간이 생기면 전국을 돌며 강연하는 게 업무이다. 대학생 때 처음 마이크로소프트 콘퍼런스에 갔는데 거기서 에반젤리스트로 나왔던 분의 화려하고 재미있는 발표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국내 회사 중에 에반젤리스트를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한국 회사들은 사용자의 참여보다는 회사가 주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서 자체적으로 사용하지 대중에게 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술 중심의 회사도 없거니와 천문학적 광고비는 들여도 원천기술 개발에는 인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회사들은 다 개발자 네트워크가 있고 이것은 개발자들이 주도하지 회사가 주도하지 않는다. 회사가 주도해서 개발된 기술은 사용자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고 광고만 잘하면 된다. 에반젤리스트가 필요한 이유는 자율적이고 자생적인 개발자, 엔지니어, 사용자층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회사 주도형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말이다. 그것이 결국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당장 돈이 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세미나에 왔던 대학생들이 소비자가 되고 우군이 된다.
회사 주도적이며 폐쇄적인 우리나라 기업들에 그런 것은 애당초 없었다. 그래서 에반젤리스트를 포기하고 취직했지만 인간의 삶이 무시되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나의 평화적 마인드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다니는 회사마다 항상 내 자리에 의자를 하나 더 두고 팀원들의 고민이나 업무의 발전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야근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나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을 막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사는 이런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되었다. 실무자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과물이 완성될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것이 실패하면 책임은 결국 실무자가 져야 했다. 자신이 선택하거나 주장한 프로젝트도 아닌데 책임은 모두 실무자의 것이 되었다. 의견을 개진할 곳은 없었다.
그 전쟁터 같은 회사를 떠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은 굳이 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평화롭다. 볼펜 집어 던지는 사람도 없고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처럼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소리치는 전화통을 붙잡고 쩔쩔맬 일도 없다.
그 사람 앞에만 가면 마치 군대에서 괴롭힌 선임을 만난 것처럼 주눅 들던 나도 이제 그 시간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하루에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지만 아침에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빛에 눈을 뜰 때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면서 그 결과가 예상과 같을 때는 무척 힘이 난다. 가시적 성과는 아직 없지만 조여 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뜯던 그 시절과 비교해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내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다.
마치 회사에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상사에게 돈을 받는 것처럼 굽실거리지 않아도 된다. 훨씬 불안한 미래가 앞에 놓였지만 이렇게 하면 최소한 숨은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살기 위해 직장을 나왔다. 많은 직장인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전 직장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 비하면 나는 나약한 편이다. 불합리한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속마음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자신은 없었다. 회사생활을 꽤 오래 했음에도 그 부분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잘 참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회사에는 그런 인재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많은 회사가 그렇다. 시키는 대로 하는 돌쇠 같은 인재, 가능하면 돈도 적게 받는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게 현실이다. 모든 기획과 전략은 윗사람들이 다 하니 아래 직원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 이런 생각도 했었다. 이 문화를 견디고 내가 문화를 바꿀 수는 없을까? 내가 10년, 20년을 견딘다면 그런 힘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을 얻을망정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 속에서 문화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 신입직원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고 전해 내려오는 폐습은 차단했다. 그렇게 회사생활 속에서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나 자신이 온몸으로 그걸 견디기에는 무리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높은 연봉, 안정된 일자리를 포기하더라도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그것을 할 재능이 있는지,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항상 후회와 의문만 품으며 나이를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런 생활에 한걸음 가까이 와 있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결정하는 순간이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일단 첫발은 떼었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꽃 한 다발이 꽃병에 담겨있고 내가 직접 내린 따뜻한 커피 한잔이 놓여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거침없이 진심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 하루만 살아도 좋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평화로운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내가 나인 것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