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5
얼마 전 한 신문 기사에서 신세대들이 회사에 들어옴에 따라 예전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이 문제가 되어 세대갈등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물타기 하는 이런 종류의 기사는 흥미를 끌기 위한 기사라고 해도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어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많은 직장인들의 퇴사 원인이 되기도 한 문제이므로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입사원들의 문화적 갈등 문제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신세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잘못된 것들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도 잘못된 것이었고 지금도 잘못된 것인데 그동안 기성세대가 힘으로 찍어 눌러서 넘어갔던 것뿐이다. 이것을 마치 그때는 옳았는데 지금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회사생활의 나쁜 예를 많이 들었는데 대부분이 관습이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관습이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을 그때는 옳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참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가 잘못된 것이다.
오래전에는 육아휴직이란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기업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낼 경우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상 커리어를 끝낼 각오도 해야 했다. 설마 그랬을까 싶지만 지금 관점에서 당연한 권리도 그때는 어려웠다. 그래서 육아로 인해 차별받는 여성이 많았다. 회사는 일할 사람이 줄 서 있어서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때 이것을 항의했다면 세대 차이일까? 물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세대가 눈높이도 높아서 불이익을 당했을 때 항의할 가능성도 높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그 불이익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이지 항의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야근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누구 못지않게 많이 해 본 것 같다. 거의 월급만큼 야근, 특근 수당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수당이라도 나오니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것조차 못 받는 사람도 많다. 나를 비롯한 직장인들이 그렇게 야근에 시달리는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어디에 있었나? 야근에는 임산부도 예외가 없다. 각자가 맡은 부분이 있고 빠듯한 일정 때문에 그냥 희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분노했지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있는데 출근 시간은 그렇게 지키라고 하면서 왜 퇴근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 걸까? 금융기관 같은 경우 공식적인 퇴근 시간과 실제 퇴근 시간은 몇 시간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직장 상사들은 아침에 팀원이 자기보다 늦게 출근하면 불쾌해한다. 모든 직원이 맞아주는 가운데 인사를 받으며 출근하는 것이 부서장의 특권이자 권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건 신세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다.
7/4제, 8/5제 라고 하는 것들이 있었다. 7시 출근/4시 퇴근, 8시 출근/5시 퇴근을 말하는 건데 한때 유행한 적이 있고 지금도 일부 회사에서는 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 제도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퇴근 후 헬스 기구에 앉아있는 직장인 사진을 크게 걸기도 했다. 퇴근 후에 스쿼시를 치거나 악기를 배우는 모습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직장인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르다. 출근 시간은 지켜지지만, 퇴근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다. 부서장부터 지키지 않는다. 정해진 퇴근 시간에 퇴근하려면 부사장에게 허락을 얻어야 했고 이것 역시 엄청난 부담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부서장과 멀고 구석진 자리, 출입구 옆자리였다. 왜냐하면 구석진 자리는 감시를 피할 수 있고 출입구 옆자리는 퇴근 시간에 조용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불합리한 것에 대해 말을 안 했다고 그것이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때도 수많은 사람이 그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문화를 받아들인 꼰대들만 남아 지금의 회사문화가 그때보다 별반 나아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금 세대들의 합리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를 별난 신세대의 튀는 행동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거르면서 학원에 다니던 동료가 있었다. ‘점심을 거르고 어떻게 오후 일을 할까?’, ’저녁에 회사 끝나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에게 평일 저녁은 매우 유동적인 시간이다. 정시 퇴근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간에 약속을 잡기는 어렵다. 거의 매일 가야 하는 학원도 당연히 저녁에 하기 힘들다. 정말 뭔가 배우고 싶다면 새벽 시간이나 점심시간밖에 없다. 나도 학원 등록만 하고 못 간 적이 많았다.
나 같은 경우 아예 야근을 기정사실화하고 저녁을 급하게 먹은 뒤 학원을 갔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일하는 방법을 택했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뭔가를 배우려고 했던 열정은 좋았지만, 학원에 갔다 와서 늦게까지 야근하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배우고 싶었던 것뿐이다.
원래 나는 회사에 좀 일찍 출근해서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올라와 책을 좀 보다가 업무를 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매일 지속하는 야근을 하다 보면 아침에 그렇게 일찍 출근할 수가 없었고 하물며 아침에 책을 보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다. 몇 년 동안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던 일은 내 인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막상 어떤 것도 공부할 수 없게 되자 독서에 대한 갈증이 더 크게 몰려왔다. 점점 머리가 깡통이 되어가는 느낌은 정말로 불쾌한 것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도리도 없었고 어떻게 출퇴근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잠들 때의 달콤함 그리고 아침에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불쾌한 알람 소리만이 나의 일상이었다.
도덕적인 문제로 가면 더 심했다. 상사들이 여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시키는 것은 예사였고 남자 직원들도 각종 잔업에 시달렸다. 커피 같은 것은 자기들이 타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업무상 고객이나 손님이 와서 대접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모르겠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시키는 커피 심부름은 짜증 유발제였다.
술자리에서도 그렇다. 요즘엔 그나마 덜해졌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예전에는 당연했다. 더 웃긴 건 ‘파도타기’ 끝에 나가떨어진 직원을 뒷수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먹일 때는 죽으라고 먹이다가 회식 끝나면 나 몰라라 가버린다. 이런 술 강요에 직원들은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술값이나 내라고 안 하면 다행이었다.
내 경험으로는 작은 회사일수록 도덕적 수준이 낮았다. 회사생활이 마치 친목 단체나 사조직 같은 느낌이라 공식적인 규정이나 법이 잘 적용되지 않았고 부서장이 대통령이자 판사였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향한 의도적인 괴롭힘은 눈을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 똑같은 보고를 올려도 몇 번씩 퇴짜를 맞고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 망신 주는 것도 일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직장에서 언어폭력이나 따돌림, 괴롭힘 등을 할 경우 큰 금액을 벌금으로 물어야 하는 법이 있는데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라고 해서 유사한 법이 도입되었다. 3년 이하 징역, 3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고 하니 꽤 높은 수준의 처벌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 적용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교묘한 괴롭힘을 어떻게 조사하고 신고자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이 법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지만 선진국처럼 운용되려면 현장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왜 이런 법이 생겼을까?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폭력, 눈에 보이지 않는 괴롭힘이 모두 폭력이기 때문에 법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사실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 괴롭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현행법에 걸리지 않게 사람 말려 죽이는 방법이 많다는 말이다. 매시간별(1시간 단위 혹은 몇십 분 단위)로 하는 일 정리해서 보고하기, 결제 안 해주기, 보고서 계속 다시 쓰게 하기, 과도한 업무 부여, 작은 꼬투리 잡아서 망신/처벌 주기 등 그 방법은 헤아릴 수 없다. 작은 부서 안에서 부서장은 신이고 부서원은 발아래 이끼에 불과하다. 밟으면 밟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과거에는 묵묵히 당하던 것들이었다. 이게 과연 세대 차이의 문제인가? 과거엔 옳았던 것인가? 나는 이런 문제를 세대 차이로 접근하면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철저히 법과 규정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가려야 한다. 우리는 근로계약을 하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것에 맞게 해야 한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일찍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판단의 잣대는 공평하고 일정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서로에 대해, 각 사안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직장생활에서 내가 제일 나쁜 케이스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 눈으로도 나보다 힘든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 우리들의 직장생활은 왜 필요 이상으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 답은 바로 회사와 리더들에게 있다. 지금도 게임회사들은 크런치 모드라고 해서 서비스 출시 직전 당연하듯이 비인간적 야근을 한다. 인간이 게임처럼 정지 모드, 업무 모드, 파워 모드 같은 게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신기하다.
창의적이라고 하는 게임회사들이 이 정도인데 다른 회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일이 바쁜데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른다. 정말 필요할 때는 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한번 흘러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내가 회사에 바친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은 인권과도 같다. 양보하고 버렸다 다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와이프가 아이를 낳을 때는 옆에 있어 줘야 하고 그 아이가 부모를 찾을 때는 답해줘야 한다. 개인의 사적인 시간은 회사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권리는 줬다가 뺏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본인이 100% 자발적으로 결정할 때만 양보할 수 있다. 나는 몇 개월 만에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KTX를 타려고 서울역에서 기다리다 출발 10분 전에 문자로 온 회사 임원의 부고를 보고 표를 취소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1년에 두세 번 부모님을 보는데 그 한 번이 날아가 버렸다. 우리나라 회사에서 이런 강압적인 경조사 문화도 바뀌어야 할 부분 중의 하나이다. 내가 표를 취소하는 바람에 우리 어머니는 열심히 만든 음식이 헛수고가 되었고 나 역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떡을 잔뜩 샀다가 일주일 내내 떡만 먹어야 했다(사실 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인원이 많지 않은 회사는 부고가 있으면 거의 강제로 참석해야 한다. 지방도 가리지 않는다. 어디든지 간다. 높은 사람의 부고라면 더욱 그렇다. 장례식장에 가면 일을 도와야 할 경우도 있다. 진짜 일손이 모자라서 그러면 모르겠지만 상조회사 직원들도 있는데 억지로 도우라고 한다. 그렇게 해야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갓집에서 짧게는 2, 3시간 길게는 반나절씩(어떤 사람은 장지까지 따라가기도 한다) 있다 보면 정말 우리나라 회사에서 업무는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업무가 중단되어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만약 내가 개인적인 일로 이 정도 시간을 비워두었다면 직장 상사는 뭐라고 했을까?
누군가의 부고로 인해 희생된 내 사생활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 단체생활이니까 참아야 한다? 내가 상을 당해도 똑같이 하니까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의무적으로 오는 사람은 필요 없다. 몇 명이 오더라도 내 가족의 빈소에서 진실로 위로의 마음을 갖고 오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내가 뿌린 부조금을 다시 회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장사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경조사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강제로 참석해야 하는 문화 때문에 내 사생활이 침해되고 있는 것을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각자 사정에 맞게 참석하고 나중에라도 뜻을 전하면 될 일을 무슨 행사 치르듯이 강제 참석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고 원래부터 잘못되어있던 것을 이제야 고치는 것이다. 벌써 해야 했을 일을 지금 하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세대 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잘못된 문화를 만든 범인임을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된다.
조금이라도 뒷세대들이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게 우리 세대가 할 일이다. 지금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최소한 잘못된 문화의 공범이 되지는 말자. 그렇게만 해도 우리 회사생활은 매일매일 더 나은 환경이 될 것이고 퇴사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