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6
이 장에서는 요즘 청년들에게 유행하는 삶에 대한 냉소에 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서점 신간을 둘러보다가 열심히 살지 말자는 부류의 책들이 판매 중인 것을 봤는데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까지 올라간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저런 식의 냉소적 자조가 서점가를 통해 유행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이 암울한 현실에 있는 청년들의 심리에 편승해 그저 불만과 증오만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많은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단순 푸념보다는 그래도 이 사회는 살만한 가치가 있고 당신은 충분히 능력이 있으니 열심히 해서 이 난관을 헤쳐가자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퇴사 일기를 쓴 사람이니까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 퇴사 고민을 얘기하는 분들에게 무조건 퇴사하라고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이야기를 그저 분풀이로 말할 수는 없다. “그 회사 쓰레기네. 얼른 퇴사해버리세요”라는 시원한 한마디가 듣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직장인들이 당장 퇴사하라는 대답을 원하는 이유는 회사생활에 지쳐 퇴사하고 싶은데 그동안 용기가 없다가 그런 말을 들으면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퇴사하라는 답 자체로 우군이 생긴 것 같고 자신의 판단이 맞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내 한마디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누가 물어보면 내가 퇴사할 때보다 더 고민해서 답변해 줄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지금 당장 퇴사하는 것을 말린다. 퇴사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사전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준비가 부족해서 퇴사 후 여러 가지 손해를 보았고 이 책을 쓰는 이유도 퇴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나는 이 책을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단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모두 사회와 기성세대 탓이에요.”
“열심히 해서 뭐해요. 사회는 불공평한데.”
“금수저가 다 가져가는 세상이에요. 적당히 하고 즐기며 살아요.”
이런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책이란 읽고 나면 남는 게 있어야 한다. 독자의 인생에 한 가지라도 도움이 돼야 하고 긍정적 영향을 주어야 한다. 염세주의나 냉소를 강화해 독자를 패배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서점에만 가봐도 알겠지만 잘못된 위로와 힐링의 유행으로 온갖 자포자기, 냉소, 반사회적 책들이 넘쳐난다.
온통 “분노하세요. 사회는 불공정하니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당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책을 쓴 사람의 주머니는 두둑하게 불렸을지 몰라도 독자의 주머니는 채워주지 않는다. 마치 힐링시켜주는 것처럼 달콤한 말의 향연을 통해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정작 책을 읽고 나도 지식과 지혜가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불량식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책의 독자들은 오히려 저자에게 고마워하고 저자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반응까지 보인다. 자기 잘못이 아니고 모든 게 사회 탓이라고 해주니 반갑고 고마웠을 것이다. 구원을 받은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잘되기 전에 독자가 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책의 저자들은 이미 잘 되어있으니 남 걱정하지 말고 본인 걱정부터 해야 한다.
모든 걸 남 탓이라고 돌리고 나면 세상은 편해진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내 삶은 발전되지도, 개선되지도 않는다. 내 인생을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잘못한 게 없다고 하고서 뭘 혁신하겠나?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나는 듣기 좋은 얘기나 하려고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척하기도 싫다. 나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듣기 싫고 불편한 진실이라도, 차갑고 아픈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수저 계급론이 판을 치고 있고 좋은 수저 가진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유리한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걸 다시 인식시켜준다고 해서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래서 온통 사회 탓만 하면서 나는 금수저가 아니니까 성공 못 했다고 자위할 명분만 가지면 지금 현실이 나아지는가?
당신은 이 순간 패배자일 순 있지만 영원한 패배자여서는 안 된다. 남 탓을 하는 순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인생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처절한 비판의식은 좋다. 지식인은 그래야 하니까. 그러나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열악한 조건에도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가 멸망해도 진짜 멸망하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봐야 한다. 그게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늙어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비관해서 미리 자살하거나 막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3년간 고시 공부해서 합격한 다음 날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인간이다.
지구 멸망이 공식 발표되면 실제로 멸망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혼돈 속에서 자살, 범죄, 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D-Day 하루 전에 그 발표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은 이런 것이다.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후회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시스템에 마냥 순응하라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시스템의 폭력이나 불합리가 있다. 그게 없었다면 내가 멀쩡한 회사를 두고 맨몸으로 나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만 하고 있거나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고 끝내버리면 결국 나만 패배자가 된다.
나와 독자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소개하고 이것을 통해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기를 바란다.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돌쇠가 되어야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불합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 삶이 나아지는 길이다.
결과는 인생에서 참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이것은 흔한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인생의 실제이다. 우리는 살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그중 대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열정 페이하고는 다르다. 자발적이지 않은 열정은 광기와 맹종일 뿐이다. 열정이 없어도 좋다. 그것 없이도 노력할 수 있다. 나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으로 빚을 지고 이것을 몇 년 동안 갚았다. 그 외에 생활비로 빚진 것도 따로 갚았다. 그렇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이 좋은 친구들은 유학도 가고 빚 없이 좋은 자취방도 얻었지만 나는 철저한 국내파에다 빚을 얻어 월세를 마련했다. 그래도 억울한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빚은 나를 위해 낸 것이고 공부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란 걸 알게 된 것도 내가 직접 그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졸업 후 한참 만에 빚을 다 갚았을 때 그 기쁨은 회사에 취업한 것만큼이나 컸다. 취업 후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작은 월세를 얻어도 전부 내가 노력해서 이룬 것이라 당당하고 뿌듯했다. 받기만 한 사람이 나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인생을 내 손으로 만든 것만큼 뿌듯한 것이 있을까?
덕분에 나는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해외에 나가본 게 회사에서 출장 갈 때였는데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 가슴은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렸다. 요즘엔 초등학생도 유럽 여행을 가는 세상인데 나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도 촌놈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일궈왔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온전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승진과 좋은 기회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이들에게 먼저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부러워하면서 언제까지 징징거리기만 하며 내 인생을 허비할 순 없었다. 영원한 패배자로 남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내 인생을 혁신하기 위해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물려받은 게 없으면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많은 채용시험에 도전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사회생활에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도 있었다.
그러나 남과 비교를 통해 내가 개선해야 할 것을 발견한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패배자인 증거를 수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중한 젊은 날을 부딪쳐 깨져보지도 않고 불평만 늘어놓는 것은 노력하긴 싫고 변명은 있어야 하는 자들의 자기 위로일 뿐이다. 어차피 안될 일에 열정을 쏟지 않고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어있는 일은 거의 없다. 확률이 낮을지라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내가 발전한다.
하나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거기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고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내가 처음으로 번 돈을 탈탈 털어 들어간 월세방은 나의 궁전이었다. 부모님이 전세금을 대줘서 버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얻는 친구들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 훨씬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다.
그래도 난 행복했다. 내 월세방의 모든 것이 내가 일궈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서면서 손에 만져지는 것이 모두 내가 땀 흘려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랑스러웠고 모든 것에 애착이 있었다. 오히려 진짜 삶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적당히 살았다면 보일러 기름값이 얼만지 월세가 얼만지 몰랐을 것이다. 곰팡이가 슬어 시커먼 벽지, 추운 겨울에 방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써야 웃풍을 피할 수 있었던 시절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성공하자. 행복해지자. 이겨내자."
그렇게 해서 취업 준비를 일찍 시작했고 졸업과 동시에 큰 기업에 입사했다. 그 뒤 몇 년 동안 지긋지긋한 빚도 다 갚았다. 변명만 하고 남 탓만 해서는 끝이 없다. 뭐든 안되는 이유는 있게 마련이고 핑계만 대다가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첫 번째 퇴사 후 기약 없는 백수 생활도 있었지만 그 기간에 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분명 아픈 결과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한 후 겪는 실패 뒤에는 배우는 것이 있다. 이것이 쌓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강한 내공이 만들어진다. 이런 내공은 삶을 보는 안목을 넓고 깊게 해 준다.
성공한 후에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인생은 계단이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다음 계단이 있고 다음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끊임없이 넘어야 한다. 성공한 뒤에도 많은 도전이 있을 텐데 내공이 없다면 그 작은 성공마저 오래가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 중에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결과는 하늘에 맞기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그 뒤에 나온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내가 그만큼 성장했으면 된 것이다. 끝내 벽을 넘지 못해도 여기서 쌓인 내공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안될 거니까 공부도 하지 않겠다면 나는 영원한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
불공정한 것이 있어도 그냥 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은 정말로 비겁한 변명이다.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불공정으로 떠넘기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힐링이라는 가면을 쓰고 청년들을 위로하는 척 나서는 사람치고 기득권이 아닌 사람이 없다. 현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가 이런 싸구려 선동에 나서는 것은 이것이 가장 쉬운 돈벌이기도 하고 자기가 받은 혜택에 대한 위장막으로 쓰기 좋기 때문이다.
아프고 차가운 현실이지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뿐이란 생각으로 삶의 문제에 임해야 한다.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것을 고쳐나가는 것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고 인생을 혁신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사회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로지 불공정한 구조만 가지고 운영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게 운영될 수가 없다. 부모가 부자라고 해서 인생이 꽃길만 이어지지 않고 한 사람의 성공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성공이란 굶주림과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거저 얻은 것은 진짜 성공도 아닐뿐더러 오래가지도 못한다. 열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인생을 더 나은 상태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 의지만 있으면 삶은 대충 살아지지 않는다.
내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충격을 받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마구 살아버린다면 어느 날 그것이 오진인 것이 밝혀져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오더라도 내 삶은 이미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의사의 선고가 나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내 정신 상태가 나를 망가뜨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가벼운 말이 아닌 것 같다. 지구가 멸망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낸 자들에겐 멸망이 오지 않더라도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삶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가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반전 스토리가 준비되어있어도 주인공이 없으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두 명의 권투선수가 있다. 똑같은 권투 경력 10년인데 한명은 10전 10패의 선수이고 한명은 0전 0패의 선수이다. 물론 기대감이나 성적으로는 후자가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두 선수 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1패도 없는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기꺼이 10패의 선수가 되는 길을 택하고 싶다. 부딪히고 깨져서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소크라테스도 말했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것 자체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도전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똑같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어떤 사람은 성장해있고 어떤 사람은 멈춰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알고 어떤 사람은 모른다. 누가 승자일까? 누가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 달콤한 말에 취해 누군가의 현금 주머니가 되지 말고 인생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