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일기 14화

퇴사는 대항해의 길이다

퇴사일기 #14

by 키르히아이스

나는 이미 몇 번의 이직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는 이직을 선택하지 않았다. 별로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야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들이 겹쳐 퇴사했지만 모든 사람이 힘들다고 무조건 회사를 떠나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가능하면 직장생활 속에서 답을 찾는 게 안정적이고 상식적인 선택이다.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큰 리스크가 따르므로 정말 마지막 선택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 마지막 선택을 통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광야로 나온 기분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천동설이 상식이던 중세시대에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어 하는 많은 모험가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아마도 대중들은 그들을 미친 사람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면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물론 모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낙오하고 죽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폴로 12호가 폭발했을 때 인간의 우주여행은 끝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허망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나섰다. 그 결과 인류에게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민간 우주 관광이 곧 선을 보일 것이라고 하는데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고 있다.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불안감도 덜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생활이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회사 일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다. 마치 명줄을 걸어놓은 것처럼 승진과 평가에 목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꿈. 이런 것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회사생활은 동료들과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남이 인사평가 1점이라도 더 받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옆 사람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한 영원한 감옥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서로 경쟁해봐야 결과는 모두 잡아먹힐 뿐이다. 오히려 통통한 놈이 더 빨리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너가 아니고 종업원인데 왜 함께 살려고 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할까? 회사에 다니며 일정 급료를 받고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과 가능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상식적인 생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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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받은 월급의 2배, 3배 일해야 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돈을 받아도 즐겁게 쓸 수 있어야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대기업 다닐 때 나는 월급을 받아도 쓸 시간이 없었다. 식비 말고는 지출하는 돈이 거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사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내 가족과 나의 개인적인 취미, 휴식을 위해 돈을 쓰고 싶고 그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다. 그래서 내 건강과 생활이 정상적인 수준을 유지할 때까지만 일하고 싶다.


내가 본 황당한 경우가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나와서 일을 하고 월요일에는 휴가를 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회사에 충성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당연히 휴일수당은 신청 안 한다. 2중으로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다. 휴일에 나오므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입증하고 평일 휴가를 냄으로써 연차 소진에 따른 연차수당 절감으로 회사에 또 한 번 충성한다. 충성도를 증명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어차피 일요일에 쉬어야 할 것을 평일에 휴가 내고 쉬는 것이므로 회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면이다. 이들은 주말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속도를 내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있다고 변명을 한다. 그 말이 맞는다면 가끔만 그래야 하는데 왜 그렇게 자주 주말에 나오는 것일까? 월요일에 낸 휴가도 서류상의 휴가일 뿐 회사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들이 회사에 하는 만큼의 노력을 가족에게 해봤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독서, 영화 보기, 친한 사람들과 조촐한 술자리, 가족들과 만남을 포기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지는 않다. 회사를 우선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포기하고 산다. 어머니는 내가 회사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많이 보셨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그랬다. 그때의 나는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웠다. 항상 화가 나 있었고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상태였다. 왜 그랬을까? 업무적 압박, 부족한 수면, 빈약한 사생활이 이유였던 것 같다. 잠을 못 자면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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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세미나, 콘퍼런스는 꿈도 못 꿨고 1년에 책 한 권을 읽기도 벅찼다. 하루 평균 4~5시간 자는 상황에서는 잠 이외의 모든 게 후순위로 밀렸다. 잠은 최고의 쾌락이었다. 공부, 취미생활은 사치였다. 그렇게 되니 마음속에 여유가 사라지고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변해갔다. 그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변화를 결심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 마젤란, 콜럼버스는 모두 모험가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항로에서는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월급 없이 몇 달을 살았다. 그래도 지출은 꾸준히 있었다. 회사 입사할 때만 해도 매달 통장정리를 했는데 그것조차 바빠서 안 한 지 오래되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했는데 그나마 내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내 자리에 간식거리를 사비로 사다 놓았다. 누군가 왔을 때 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내 자리에 자꾸 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들과의 소통을 좋아했다.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원래 사무실 입구에도 비치해놓은 다과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맛없는 것들이었다. 담당하는 직원에게 왜 그런 것만 사다 놓냐고 물었더니 맛있는 것을 사다 놓으면 사람들이 많이 먹게 되고 그러면 계속 사다 놓아야 하므로 일부러 맛없는 것을 골라 사놓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회사문화의 한 단면이다. 뼛속까지 스며든 상명하복, 관료주의, 무사안일과 같다. 그냥 내 돈 내고 먹고 싶은 걸 사다 놓는 게 속편했다. 내가 만든 사랑방에서 힘든 동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후배들과 터놓고 대화하고 싶었다. 내가 신입일 때는 그런 것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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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 간에 협력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좋은 팀이 되고 일도 잘하게 된다. 그런데 윗사람들은 대개 이런 걸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 팀원들의 사기, 심리상태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하는 관리자를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당면한 일만 강조해 버틸 사람은 버티고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팀이 운영되면 팀워크가 깨지는 것은 물론 업무효율도 낮아진다. 자기 일만 신경 써야 집에 일찍 갈 수 있고 협력이란 거추장스러운 것이 돼버린다. 결국 개인플레이만 난무하는 팀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런 환경이 싫어서 최대한 중간에서 나름대로 사람들의 소통창구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하위직급과 상위 직급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내가 튕겨 나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내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나라 회사문화에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해야 할 일이었다.


퇴사 후 몇 달이 지나니까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새로 하려는 일도 이제 막 닻을 올리기 시작했고 약간의 가능성도 보인다. 지금도 가끔 옛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잊지 않고 연락해 주는 건 고마운데 성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모든 일을 오로지 내가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니까 생활 자체는 매우 단조로워졌다. 그래서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안 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뜨거운 여름에도 매일 할 일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어떻게 결재를 맡을까?’, ‘욕하고 소리 지르면 어떻게 대답할까?’, ‘잡아먹을 듯한 눈을 뜨고 씩씩거리며 나를 부르면 어떻게 할까?’ 이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문제 있는 줄 알면서 입 다물고 일해야 하는 상황은 이제 없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숨통 트이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답답했다. 숨이 막혀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나를 설득도 못 하면서 오로지 힘으로 찍어 누르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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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가는 길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신대륙이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모르겠다. 신대륙의 형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요즘엔 삼시 세끼를 먹는데 내 삶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런 적이 없었다. 온종일 밖에 한 번도 안 나갈 때도 있다. 히끼꼬모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느냐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큰 대가를 치르고 그것을 얻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노력은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치른 비용만큼의 행복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제부터 인생의 가장 큰 선택에 대한 결과가 조금씩 나올 것이다. 대항해의 길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즐겁게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 나는 회사 안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할 말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이것은 과욕이 아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10년 후에 우리 사회 일반적인 생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앞서가는 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이 너무 느린 것이다. 옳은 일에는 빠르고 느리고가 없다. 단지 주장하는 사람이 소수라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소수에 속했다. 직장을 나와서 자랑할 것은 아직 없지만 적어도 나는 팔팔 뛰는 고등어처럼 살아있다! 밤샘 야근 후 오후 3시가 돼야 비로소 제정신으로 일과를 시작하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생각은 지금이 더 싱싱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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