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2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퇴사 후 정확히 한 달이 지나갔다. 퇴사 후 첫날과의 감정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과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 질문에 차례로 답해보겠다.
나는 퇴사 직후 세운 계획에 따라 바쁘게 여러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몇 가지 강의도 들으러 갔고, 공부도 시작했다. 이 책을 비롯해 글도 쓰기 시작했고 내 작업실도 만들어 놓았다. 퇴사할지 말지 고민 중이거나 퇴사를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 하는 사람들은 퇴사 한 달이 지나간 지금 내 소감이 어떤지 궁금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100% 만족이라고는 못 하겠다. 수입이 0이 된 지금 불안감만은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들은 잘 될까?
퇴사 후 나는 많은 일을 벌여놓았다. 아직도 다 하지 못했다. 이렇게 벌여놓은 일들이 잘되면 나는 어느 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소심한 탓도 있고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 없는 탓도 있다. 퇴사 전에 최대한 준비를 하고 나왔음에도 자기 일을 하는 길은 어려움이 많았다.
‘물건 하나 살 때도 고민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내가 대뜸 퇴사를 했으니 그간 회사생활이 나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일까?’
그렇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 없이 리스크를 안고 뛰쳐나올 정도로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광야로 나온 지금, 나에게는 높은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삶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장된 삶이라는 건 없다. 대기업 후계자의 삶이라고 해서 다 보장된 것은 아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지금 우리가 한 선택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퇴사 후 계획해둔 일을 거의 하긴 했다. 계획표를 들여다보면서 하나씩 체크를 해보았더니 빠진 것 없이 용케도 해낸 것 같았다. 내 방에는 창문 앞에 하얀 테이블이 놓여있다. 책상을 겸해서 쓰려고 샀다. 이 책상을 사기 전에는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놓고 작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퇴사를 반드시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회사생활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에 생각은 점점 굳어졌다. 퇴사 전에 여러 가지 공부를 하기 위해 주말마다 커피숍에 갔다. 제일 비싼 커피숍이라 꽤 돈이 들어갔다. 어차피 술 담배를 안 하니까 공부하는데 아끼지 말자고 생각해서 했지만 그걸 다 모았으면 지금 이 테이블을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가 그만큼 퇴사할 생각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테이블 위에는 예쁜 안개꽃이 꽃병에 담아져 있다. 생화는 아니고 약품 처리된 것이다. 나는 원래 안개꽃을 좋아하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꽃을 파는 가게가 개업해서 바로 가서 샀다. 변하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아서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3년은 족히 갈 수 있는 꽃이라고 하는데 삭막한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원색을 뽐낸다.
책상에는 꽃 말고도 커다란 모니터와 스탠드, 지구본이 놓여있다. 지구본을 산 것은 이유가 있다. 나는 현실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생각만큼은 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방에서 혼자 일하더라도 상관없다. 번듯한 사무실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퇴사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완벽한 백수의 데뷔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계획한 것들을 해나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한 달 동안 한 번도 한숨을 쉬지 않았다. 나한테 한숨을 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강압적인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은 나를 한숨 쉬게 했고 어느 샌가 버릇이 되었다.
나는 주변 일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회사가 내리는 명령, 해야 할 일들.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한 뒤 최대한 완성도 있게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생활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본 적도, 일 처리 방식을 완벽히 이해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분명히 불합리하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인데 누구도 나에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고만 했다.
내심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맞는다고 해야 하고 안될 것을 알면서도 밤을 새우면서 해야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직장 상사는 나의 이의 제기에 내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맞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내 의견이 묵살되고 나서 얼마 뒤 예상대로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그 책임은 담당자인 나에게 돌아왔다.
일언지하에 내 의견을 묵살하는 상사도 있었다. 아래 직원이 뭔가 건의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도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다. 근본적인 개선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땜질만 허락되었다.
이 모든 게 회사생활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유독 나한테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우연치고는 고약했다. 그런 우연과 필연이 겹쳐 결국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나약했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납득도 가지 않는 일을 영혼 없이 하면서 밤을 새우고 내 천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오늘을 위해 희생한 시간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돈을 모아서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내 인생이다. 사회와 관습에 양보한 시간을 보상받을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누가 옳은지는 이제부터 증명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