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퇴사일기 11화

경험자가 알려주는 좋은 회사의 조건

퇴사일기 #11

by 키르히아이스

회사라는 틀을 벗어나서 보면 회사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 안에서 내가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평범한 것이었나.’, ‘내가 하늘처럼 떠받들던 직장 상사는 그저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깨어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것은 회사라는 하나의 세계(World) 안에서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도록 길들었는가를 말해준다. 회사를 나와서 느끼는 후회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안에서는 괜한 고집과 스트레스에 눌려 동료들을 도와주지 못하고 나를 보호하는 데만 열중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가장 많이 후회된다.


회사라는 것은 고립된 사회이다. 어떤 면에서는 퇴사하는 순간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 안에서 전쟁을 벌인다. 내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야근에 휴일 근무까지 하고, 마음에 큰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눈물을 꾹 참으며 넥타이를 고쳐 맨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회사가 이 세계의 전부도 아니고 회사를 나간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벌벌 떨면서 살 것인지 용감하게 대양으로 나가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회사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당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말이다.


IT 하는 사람은 IT 기술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법조계에 있는 사람은 법으로만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최소한 당신이 있었던 분야보다 더 넓은 세계가 또 다른 세상으로 존재한다. 그 넓은 세계에서 어느 회사를 고르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봐서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사람, 연봉,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얼마나 평균 이상을 해주느냐에 따라 회사생활의 질이 달라진다. 나는 여기서 가장 높은 가중치를 두는 부분이 사람이다. 사람이란 직장 동료를 말하는데 주로 윗사람이 해당할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수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사람대접을 받고 나아가 우수 인재 대접을 받는다면 거기서 얻는 만족감은 다른 것과 비교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기본 생활도 어려울 정도로 적은 월급을 받지 않는 전제하에 말이다. 상사의 말 한마디는 당신에게 연봉으로 채워줄 수 없는 자신감과 동기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 회사들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부서장이 내 연봉을 원하는 만큼 올려주기는 어렵다. 그런데 말 한마디로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아래 직원에게 지방대학을 나왔다고 무시하거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방적으로 터무니없는 성과를 요구하는 상사를 본 적이 있다. 연봉은 못 올려줄망정 입으로 팀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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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기본적으로 상위 직급에 있는 사람들의 조바심과 열등감이 만든 현상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에 대한 불안감, 시기심은 가득한데 논리와 실력으로는 도저히 깎아내릴 방도가 없으니 그저 직급의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여기에 실망하고 3년 이내에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부지기수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같은 회사에 들어온 이상 동료직원이 어떤 대학을 나오든 무슨 상관인가. 경영자나 인사팀은 상관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직원끼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들끼리도 편견으로 사람을 가르고 차별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학벌 차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학벌이 부모의 재력과 연관성이 깊다는 얘기는 언론 기사로 많이 보도된 적이 있다. 게다가 대학교 학벌이란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공부 결과이다. 그 후 그 사람이 어떤 공부를 했고 공부 이외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전혀 반영되어있지 않다. 명문대 나온 것을 칭찬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뿐이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팀원인데 마치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넘볼 수 없게 차별한다면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는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한국적 악습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어디서나 줄 세워서 구분하고 끼리끼리 모여 지연, 학연으로 뭉치는 습성. 그래서 같은 회사지만 도저히 팀워크가 생기지 못하게 만든다.


같은 회사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든 산골에서 공부해서 들어왔든 상관없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정해진 직급과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기업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을 핵심 인재를 암암리에 정해두고 우대해주는 경우가 많다. 입사도 같이했고 한 팀에서 일하며 비슷한 업무 실적을 냈는데 어떤 사람은 근무평정이 1등급이고 어떤 사람은 3등급이다. 알고 봤더니 그 친구가 국내외 명문대 출신이라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지만 한 번 잘했다고 엘리트 코스로 찍어두고 나머지 사람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학벌과 실력이 정비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엘리트 코스를 걷는 사람들이 더 좋은 실적을 낸다는 증거도 없다. 입사할 때 엘리트 코스에 오르지 못한 직원들은 영원히 소수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해야 하는가? 이런 사람들에게 회사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연봉이 높고 큰 회사 다닌다는 게 아무리 좋아도 내가 열등생 취급을 받는다면 일에 대한 의욕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진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이런 일을 자주 저지른다. 어차피 매년 신입사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나갈 사람 나가더라도 엘리트 인재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대학 나온 인재는 널렸으니 엘리트만 꽉 붙잡아두자는 계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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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기업에 들어가면 마주치는 차가운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 못 하는 어리석은 인사방침이다. 오히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은 많다. 언제든지 뽑을 수 있다. 그러나 스펙 좋은 사람보다 더 찾기 힘든 인재가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화합력을 가진 인재이다. 이것은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다면평가, 단체 활동 등을 통해 드러나게 되어있다.


예전에 내가 아는 사람은 팀 과제는 신경도 안 쓰고 개인 과제만 열심히 해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나머지 팀원들은 그 사람 몫까지 팀 과제를 하고 개인 과제를 같이 하느라 전체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못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인재인가? 근무평정에서 화합력과 협동능력을 체크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득세하게 된다.


소개팅을 할 때 잘생긴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보다 더 찾기 힘든 사람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스펙 좋은 사람이 10명 중 1명이라면 인성 좋은 사람은 20명 중 1명이다. 회사에 들어온 이상, 회사 밖 스펙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근무성적과 회사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좋은 인재일수록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일한다. 물론 돈으로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어느 정도 채워지긴 한다. 그러나 직장 상사의 말 한마디는 그렇게 쌓아 올린 자존심을 산산이 부숴버릴 수도 있고, 없는 자부심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은 신나서 하는 일에는 돈, 시간을 따지지 않게 되어있다. 그리고 능률도 더 올라서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을 발휘하기도 한다. 1+1=2가 아니라 3이 되고 4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원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직장문화이다. 어쩌면 군대식 문화, 제조업 공장 문화에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회사인데도 벽에 빨간색으로 구호를 걸어놓고 생산을 독려하는 회사도 있다. 21세기는 '구호'로 뭔가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연결된 시대에 정신력을 강화하자는 구호는 문제 해결은커녕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진짜 봐야 할 것을 못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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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능력 이외의 문제로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회사에 대해 충성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학교에서 늘 배웠고 신입사원 연수에서 또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것이 실제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특히 위로 갈수록 더하다.


나는 배운 대로 하면 되는 사회가 선진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생활은 배운 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분명히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고 근로 계약까지 했는데 퇴근 시간에 집에 가면 욕을 먹는다. 갑질은 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갑질 당하고 있고 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를 동양적 관습에 따른 문화로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직장 상사와 팀원의 관계가 위아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팀장은 팀을 관리(Manage)하는 사람이다. 프로젝트를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인력이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조정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능력만 되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팀원이 될 수 있고 팀장이 될 수 있다. 팀장이 되었다가 팀원이 될 수도 있고 계속 팀원만 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생각인데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전통이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인 상하 관계로 개인을 구속하는 것이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왜 문제냐 하면 상하 관계에 기반한 팀 관리는 결국 관리자가 권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사용할수록 쾌감을 주고 자기 자신을 위대해 보이게 한다.


아랫사람들은 당연히 쪼그라들고 자발적인 일 처리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는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업종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허 출원 건수를 개인별로 할당한다든가 아이디어 회의도 방에 가둬놓고 밤을 새운다. 이래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나라 회사들이다. 몇몇 젊은 벤처회사들을 빼고 많은 회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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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수직관계에서 관리자는 공적 영역을 넘어 사적 영역까지 통제하고 심지어 정신마저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리고 업무가 최우선이라는 명제 아래 직원들을 로봇처럼 통제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자신의 규율은 지키지 않으면서 오로지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 이는 충성맨을 양성하는 우리나라 회사 시스템상 더 심화된다.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충성심을 기준으로 발탁되므로 중간관리자 이상은 거의 종교 신도 수준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우리 회사’보다 나은 회사는 없고 모든 경쟁회사는 적이자 악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팀원들을 보는 눈이 어떻겠나?


"이렇게 좋은 회사에서 너는 뭐가 불만이냐?"

“나 때는 너보다 더 힘들었다. 지금처럼 잘해주는데 뭐가 문제야?"

"우리 회사만큼 좋은 데 없다. 다른 데 가면 더 힘들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를 현재보다 더 좋게 가꾸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팀원들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관리자는 업무에 충실하고 회사 에티켓만 잘 지키면 중간은 간다. 팀원들의 개인사를 챙기고 아픔을 나누며 리더십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까지 하는 것은 현재 한국에서 과한 바람인 것 같다.


나는 리더쉽과 관련하여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회사 충성맨인 관리자 A가 지휘하는 팀에서 일을 하던 때였다. 매일 수 없이 날아오는 업무지시 이메일과 반복되는 야근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B로 관리자가 바뀌었는데 그 후부터 이메일 지시는 거의 없었고 저녁에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분명 똑같은 일을 하고 있고 결과물의 양과 질도 같았다. 그런데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A에겐 회사가 전부였다. 그래서 24시간 눈만 뜨면 회사 생각이라 뭔가 생각날 때마다 팀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뭘 해라. 뭐가 빠졌다. 뭐를 준비해라. 그런데 이게 준비성이 좋은 것 같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다 보니 나중에는 대충 보게 되고 시켜도 안 하게 되었다. 같은 일도 수차례 반복 작업을 하니 일에 대한 집중도는 더 떨어져 품질은 곤두박질쳤다.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짜증부터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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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회사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웬만한 일은 자기 선에서 다 확인하고 끝냈다. 그리고 팀원들이 자기 일을 각자 책임지고 할 것으로 믿었다. 문제가 생기면 같이 고민해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문제가 생겼을 때 솔루션을 제시하거나 해결될 때까지 같이 고민해주었다. 담당자의 일을 관리자가 같이 고민해주니 신뢰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다 보니 팀원 전체가 프로젝트를 함께 고민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메일만 보다가 녹다운되는 게 아니었다.


B는 평상시 팀원들과 사이가 좋아서 팀원들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가서 말하고 같이 고민했다. 경험 많은 B가 웃음과 함께 큰 방향을 제시하면 나머지는 팀원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반면 A는 팀원들과 평소 대화가 없었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스타일에다 버럭 하는 성질도 있어서 팀원들이 대화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오히려 프로젝트 후반부에 터지는 문제가 많았고 항상 뒤늦게 문제를 발견했다. 야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팀원들은 B를 신처럼 모시지 않았지만 믿었고 그 사람을 위해서 다소 희생하는 것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A에 대해서는 바로 앞에서는 깍듯하지만 뒤에서는 욕을 했다. 업무에 대해 워낙 압박을 주니까 나중에는 어차피 욕먹는 거 대충하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A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실전에서 리더의 차이에 따라 팀 분위기와 실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이처럼 사람이라는 것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상하 관계로만 대하려고 하면 반쪽짜리 결과밖에 못 얻는다. 좋은 회사란 개개인을 그만큼 대우하고 아껴주는 회사이다. 이것이 좋은 회사의 첫 번째 조건이다. 무조건 잘해달라는 게 아니다. 차별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법대로, 규정대로 그리고 배운 대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다른 사례도 소개하자면 군에 있을 때 내 상관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도 그분을 존경한다. 그때 나는 이등병이었는데 그분 계급이 소령이었으니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일과시간에는 그분 밑에서 7명 정도가 같이 일했다. 군무원도 있었고 부사관, 장교도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군인답지 않게 아랫사람에게 온화하고 아랫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주었다.


일단 말투가 예의 바랐고 비속어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의 지론이 "모르면 이등병에게도 배워야 한다."인데 정말 말처럼 행동했다. 이등병인 나에게도 모르는 것은 물어보았고 심지어 나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다른 부대 간부와 전화로 싸워주기까지 했다. 아무 이익도 줄 수 없는 나 따위에게 그분이 그렇게 해줄 이유가 있었을까? 그분은 다른 부하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그래서 다들 그분을 존경했다. 그분이 시키는 것이라면 손해가 되어도 할 정도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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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안 계신 곳에서도 험담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팀원이 그분에게 보답하기 위해 잘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그분이 뭘 시키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군대에 그런 합리적인 사람이 있었다는 게 놀랍고 그런 분 밑에서 일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그분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능력 부족으로 그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생활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사람은 억지로 시키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다 알아서 한다. 그중에 일부 요령 피우는 사람도 있고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사람마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다. 자기 스타일에 안 맞으면 버리거나 괴롭히는 게 관리자가 아니다. 팀장은 팀원을 믿어야 하고 팀원들이 팀장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좋은 회사는 이런 리더들이 있는 회사이다.


자신의 회사를 한번 훑어보라. 회사의 상층부를 이루는 리더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욕하고 물건 집어 던지는 성격파탄자들인가? 아니면 배우고 싶은 리더들인가? 회사 자체는 마음에 안 들지만 좋은 리더가 있을 때는 웬만하면 떠나지 말고 다른 조건이 안 좋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그런 리더를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좋은 리더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다소의 손해는 감수해도 된다.


좋은 회사인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회사가 얼마나 도덕적인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리더의 평가와도 맞아 떨어진다. 조직의 도덕성은 리더의 도덕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조직의 도덕성도 그 조직의 리더보다 높을 수는 없다. 또한, 도덕적인 리더가 있는 곳에 썩은 팀원이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리더가 도덕적이어야 하고 도덕적인 회사일수록 일하기 좋은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일하기 좋다는 것은 놀고먹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상식적이란 얘기이다.


도덕적 수준이 낮은 회사는 가급적 빨리 떠나는 것이 좋다. 장기적으로 비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이나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도덕의식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크다. 한쪽 면에서 비도덕적인 회사가 다른 면에서 도덕적일 확률은 낮다. 즉 도덕에 대한 전반적인 불감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같은 것도 그 직장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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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사라면 마음 편하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래야 나와 회사가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오로지 회사만 이기는 환경에서는 나의 존재가치가 낮아지고 내 만족도도 따라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회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당신에게 준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의 원인인데 우리가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연봉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스트레스 때문에 암 걸리면 소용없다.


동료들과 리더가 괜찮은 회사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계속 다녀도 좋다고 생각한다. 절대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좋은 리더를 만나면 좋은 리더십을 배우게 되고 좋은 동료를 만나면 좋은 인성을 배우게 된다. 모든 것이 이익이다.


영세한 업체에서 돈도 얼마 못 받고 일은 많은데 사람들은 좋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지간히 생활이 영위되고 회사의 비전이 있다면 계속 다니라고 말하고 싶다. 업무량이 건강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고 생활을 못 할 정도의 연봉만 아니라면 다닐 가치는 있는 회사이다.


어느 회사에 다녀봐도 사람 좋은 회사만큼 좋은 회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억대 연봉 회사라도 매일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들으면서 다니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좀 많아도 좋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일할 수 있으면 작은 일도 서로 하기 싫어 떠넘기는 회사보다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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