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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22. 2019

24. 동거에 관하여

동거에 관하여

 이번에는 동거에 대해서 얘기해볼 텐데 사랑에 관한 책을 쓰면서 동거를 언급할 필요가 있는지 나로서도 의문은 있다. 미국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동거를 할 건지 말 건지가 왜 논란이 되지?”라고 의문을 품을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교문화가 강하고 여성의 성적 자주권이 약한 나라에서는 이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양도 과거에는 우리와 비슷했다. 개인주의가 짙어지고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빈번해지는 시대에 결혼은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운 제도였다. 자식 낳고 가업을 이어가는 게 행복이었던 시대는 끝나고 행복의 기준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삶의 양태도 그만큼 여러 가지 형태가 된 것이다. 본인만 행복하면 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란 맞지 않는 측면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속박되고 가족까지 연계되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동거를 선호하게 된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분명 동거에 대해 논란이 존재하므로 한국사람이 먼저 볼 이 책에 그 내용을 담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 책이 해외에 번역되어 나간다면 이 챕터는 부끄러워서 빼고 싶다.


 동거는 사랑하는 커플이 사는 형태일 뿐이며 사랑의 본질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동거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고 아니기 때문에 덜한 것은 아니다. 동거를 하든 따로 살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선택의 문제일 뿐 이것 때문에 사랑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본질이 아닌 것에도 영향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헤어지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동거의 경험이 있는 것을 경멸한다든지 동거하면서 단점을 발견했다든지 하는 것들이 사랑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동거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동거의 성질

 사실 선진국에서 이 문제는 논쟁거리도 아닌데 유교사상과 순결 숭배가 투철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안에 누구도 이것에 관해 논쟁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추세로 선진국에 진입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거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단지 방법론이며 수단이다. 따라서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뭐가 좋다고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럼 동거를 선택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일단 남자 입장에서는 동거를 선택할 때 부담이 거의 없다. 바래다주고 막차 시간에 쫓기고 하는 것들이 없어지니 편해지는 것이 많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규칙과 간섭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그런 점에서 불편함이 있다. 이것은 룸메이트보다는 더 강제성이 있다. 일반적인 동성의 룸메이트보다는 동거하는 이성이 요구사항이 많고 거절하기도 어렵다.

 여성과 남성의 생활방식이 많이 다른데 남자가 여자에게 요구하기보다는 여자가 남자에게 요구할 것들이 많다. 이것은 누가 더 복잡하게 사는 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 입으면 외출할 수 있는 남자와 화장만 6단계 이상을 하고 머리, 제모, 옷 코디네이션, 액세서리, 깔맞춤까지 해야 하는 여성과 어느 쪽이 더 요구할 게 많겠는가?


 여성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더라도 동거를 하면 이성관계에서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남성은 비교적 동거를 쉽게 받아들이다.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 본다면 남자를 검증한다는 이유 말고는 크게 좋은 점은 없다. 물론 남녀가 사랑하니까 늘 함께 있고 싶겠지만 서로가 동거를 통해 얻는 이점과 부담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동거에 대해 찬반 논쟁이 있고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동거를 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 결과(2018.11)를 보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는 의견이 56.4%로 이 정도면 많이 인식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말과 행동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


 여성들이 동거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결혼 전에 미리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서로 좋아해서 항상 같이 있고 싶어서 동거하는 것은 개인 취향이지만 상대방을 검증한다는 것은 동거가 결혼생활의 축소판이라는 환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과 동거는 같지 않다. 결혼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서 사는 문제가 아니다. 공동운명체이기도 하고 2세를 함께 키워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다. 가족도 연관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동거에서는 빠져있다.


 나는 당당하게 동거하지 못하고 이런 이유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이란 것은 법적 행위로 쉽게 취소할 수 없는 중요한 결정이다. 결혼 전에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대방이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지는 사귀는 과정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 판단할 일이지 그걸 위해서 동거하겠다는 것은 매우 편의주의적인 생각이다. 동거를 한다고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정도로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고 체험 후 결정해야겠다면 사랑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분명 동거는 개인의 선택이지 찬반의 문제는 아니라고 언급했다. 다만 동거를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수단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이다.

수단적 동거의 문제점

 1. 동거는 한 사람을 검증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인하는 것이 동거를 통해 결혼 전 상대방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특히 여성에게 강하다. 결혼 전에 가정을 꾸리기에 적합한 남성인지 미리 판단해보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것 같지만 단순히 같이 사는 것과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동거를 해서 주로 밝혀내고 싶은 것은 남자의 가정 기여, 생활습관, 인성 일 것이다. 일단 얼마만큼 가정적인지는 동거로 밝혀내기 어렵다.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부부는 상대방에게 얼마든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연애하는 기간인 상황에서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이고 둘 간의 연애에 많은 노력을 쏟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면 상황이 바뀐다. 오히려 자주 보기 힘든 친구에게 더 정성을 쏟는 사람도 있다. 동거는 아직 열린 결말의 상태이다. 떠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조심성이 남아 있다. 


 불행히도 인간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편하고 쉽게 대한다. 편하게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정말 예의 바른 사람이 가족에게 오히려 막대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은 다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고 의무감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거기간에는 그렇게 조심하던 상대방이 결혼 후 일절 노력을 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혼이란 계약을 통해 맺은 형식이자 하나의 구속인데 이 틀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예전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란 늘 최상의 노력만 하고 살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든 처음만큼 노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한다. 연애시절 잘해주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그 전만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것이 동거와 연결된다면 당연히 동거기간 잘해주던 상대방이 결혼 후에 관심과 노력이 덜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그럴 것이다. 심지어 동거기간이라도 따로 살 때보다는 관심이 더할 수 있다. 익숙해지면 자극이 덜해지고 관심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생활습관은 동거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하지만 이 역시 동거기간에 숨길 수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습관은 감출 수 없지만 대부분 큰 결점은 무의식적인 것보다 의식적인 것이다. 교우관계, 바람기, 금전관계 등은 다 의식적인 것으로 동거기간에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동거를 통해 육아 관련한 것을 검증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결혼 후 중요한 부분이 육아인데 아이를 낳지 않을 때까지가 동거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 동거라도 아이를 낳는 순간 내용상 결혼과 같다. 이때는 자동적으로 법적 의무도 발생하므로 동거는 이미 끝나고 결혼(사실혼) 상태로 보는 게 맞다.


 동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생활습관이란 것은 자기 앞에서 보이는 습관뿐이고 숨기거나 밖에서 하는 것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청결도, 잠버릇, 취미 정도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속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인성은 동거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까? 솔직히 동거를 한다고 해서 더 많은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성이란 오랜 시간을 보면 더 많이 알게 되지만 결국 어떤 상황이 닥쳐야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지 않는가? 평소에는 무난한 사람도 가난이 닥쳐봐야 근성을 알 수 있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다양한 상황을 겪어봐야 알 수 있다. 10년 사귄 커플도 결혼하고 1달 만에 헤어질 수 있다. 결혼은 그만큼 새로운 상황이다.


 2. 동거를 통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동거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고 사생활까지 같이 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이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다 있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에게 가급적 좋은 면만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동거를 통해 사생활 전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좋은 면보다는 안 좋은 면을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면은 이미 거의 보여줬고 그동안 보여주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안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좋은 면보다는 모자란 면이 많다. 동거를 통해 보이는 면은 그동안 보여주기 싫었던 부족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동거 전보다 동거 후 그 사람이 더 좋아지기는 힘들다.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고 해도 많은 시간을 보면 가슴 뛰는 흥분은 줄어들고 무덤덤해진다. 만약 가끔 보는 커플이 3년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의 에너지가 있다고 하면 그들을 매일 보게 만들면 그 에너지는 1년도 못 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랑의 속성이 그렇다. 60년을 신혼처럼 설레고 조심스럽게 사는 사람은 없다.


 동거도 서로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니 순간적으로 즐거움이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그 즐거움이 빨리 끝나고 하향곡선으로 접어든다. 동거가 끝날 시점에는 결혼을 추진할 강력한 에너지마저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동거를 통해 엄청나게 좋아지긴 힘들어도 엄청나게 싫어질 수는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3. 동거 후 헤어질 때 더 큰 상처가 남는다.

 동거가 끝나고 만약 서로 헤어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을 때 두 사람에 남는 상처는 단순히 사귀는 것보다는 클 것이다. 왜냐하면 단기간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서로의 깊은 사생활에 자리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금전적 피해도 있을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성도 있다.

동거에 대한 바람직한 개념

 그렇다면 동거를 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앞부분에서 말했듯이 동거를 무슨 수단처럼 이용해서 누굴 검증하겠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동거는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래야 내가 행복하니까 하는 것이 맞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동거가 그렇게 특이한 문화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본인만 행복하다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강요할 수 없고 이상한 눈으로 봐서도 안 된다. 동거는 우리가 사랑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생활모습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동거 형태가 늘어난 것은 집안의 만남, 사회적 만남, 조직 속의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혼이라는 것은 집안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가족과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성에게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사회명령인 부분도 있다. 이런 사회적 명령에서 자유로워진 젊은 세대가 결혼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결말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기 위해 동거를 택한다는 것이다.


 동거관계에서는 각자의 가족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2세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충분한 자유를 누리다가 안정이 찾고 싶어 질 때 결혼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동거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유용한 것이다. 동거를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나 하지 말아야 될 금기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동거를 검증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결혼을 인생의 유일한 결말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혼도 사랑의 과정일 뿐이다. 결혼하면서 우리 관계는 끝나는 게 아니다. 결혼하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인내도 해야 한다. 결혼하더라도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끝내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가 핵심이지 결혼이냐 동거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일 뿐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으로 단단히 묶여있다고 해서 안심할 것도 좋아할 것도 별로 없다. 또한 서로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데 동거라고 격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시선이나 고정관념과는 상관없이 두 사람의 진실된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을 그만 버렸으면 좋겠다. 한국과 동양에서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집단속의 안정을 강요하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복이 먼저이다. 결혼이 결말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는 '영원히 연애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질 때 비로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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