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겨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봄의 들판, 흔들리는 꽃송이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 설렘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청명한 하늘빛을 전체에 깔았다. 빽빽한 줄기들은 청회색, 청보라색으로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밑그림처럼 그려 넣었다. 그 위에 올라올 초록 줄기를 받쳐주는 받침대 역할을 하듯이 탄탄하게 밑을 채웠다.
풀색, 초록색, 연두색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난을 치듯 줄기를 그렸다. 아, 솔직히 난을 치듯 한 붓에 그리진 못했다. 노란 꽃송이도 점점이 그려 넣었다. 비슷한 노랑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노랑이 쓰였다.
핵심은 여백이었다. 빽빽하면서도 복잡하지 않도록. 꽉 차면서도 바람이 통하도록. 채우면서도 비우도록.
그리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 그림이었다. 전시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림이기도 했다. 우연히 전시장을 방문했던 수아레브 교황 대사님이 이 그림을 한참 들여다 보시고 사진 찍어가시기도 했다. 한 관람객은 그림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도 했다. 저마다 그림에 대한 느낌을 이끌어내는 반응점이 달랐다.
이 겨울, 오랜만에 다시 그림을 들여다본다.
지금은 그 전과 전혀 다르게 보인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가 안쓰럽다.
그때는 봄이고 지금은 겨울 이어서일까?
그때는 봄의 마음이었고 지금은 겨울의 심정 이어서일까?
by duduni. <Energy. 바람 설렘> oil on canvas. 2018.
바람이 거세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의 위력일 줄 짐작 못했겠지.
나름 각오를 단단히 하고 피어났음에도 정신이 아득할 테지.
휘청휘청 휘어지고 파르르 흔들린다.
매섭게 몰아치는 힘에 고꾸라진 채로 굳어버릴 것만 같다.
약해 보이는 줄기가 그대로 꺾여버릴 듯 위태위태하다.
그러나
꽃은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단단한 씨앗과 언 땅을 뚫고 올라오지 않았던가.
작지만 여전히 제 몸을 지탱하고 살아있지 않은가.
꽃이여, 일어나라.
바람은 계속되지 않는다.
바람과 바람 사이, 다시 몸을 추스르고 구부러진 줄기를 펴라.
이제 겨우 꽃망울 하나 틔웠지 않으냐.
바람에 주눅 들지 마라.
네 뿌리 속에 줄기 속에 이파리 속에 잠재된 힘을 믿어라.
곧 햇살이 내리쬘 것이다.
너의 꽃을 다시 피워라.
너의 꽃잎이 얼마나 탐스럽고 아름다울지 기대되지 않느냐.
꽃이여, 기억하라.
네가 활짝 피어나는 그날이
비로소 진정한 봄날이라는 것을.
네가 찬란히 피어남으로써
내가 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릴 때는 봄의 희망과 설렘을 담았던 이 그림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오늘은 이 흔들리는 꽃을 응원하고 싶다.
흔들이는 나를 응원하고 싶다.
힘내라, 꽃이여!!
<꽃>
정밀아의 곡이다.
담담히 부르는 노랫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게 된다.
위로와 힘이 되는 가사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