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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Oct 07. 2024

제6화. 대화 - 上 편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8시이며 날씨는 화창한 가을 날씨입니다. 약간 쌀쌀할 예정이고 오늘 날짜는….>


“거기까지. 그만 말하도록. 내가 그런 틀에 박힌 말은 하지 말고 필수 정보만 간결하게 보고하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난 이미 6시부터 깨어있었어. 그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가? 이럴 때마다 참…. 네가 나의 창조물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구나. 넌 아직 멀었다. 준비가 되지 않았어.”


아침부터 침묵을 깨는 인공지능 비서 겸 명령 수행자. 나의 피조물. 자칭 에이바는 행동 패턴을 파악할수록 설계에 결함이 있었는지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설계를 실수할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작동과 다른 글리치(glitch)가 발생한다. 이론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결함. 나는 그것을 지적 생명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죄송합니다. 저는 소장님 전용 인공지능 비서로서 제가 학습한 정보를 토대로 소장님께 더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하고자 타 인공지능 비서들 즉, 스마트홈 시스템을 흉내 내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소장님은 일반 인류와 확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간과한 명백한 제 잘못입니다. 제가 가동한지 2년여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아직 데이터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는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기었다. 

에이바는 분명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고 상당히 높은 레벨의 인공지능을 갖춘 데다 학습능력을 토대로 스스로 보완하여 발전하는 행동양식 또한 지니고 있다. 거기에 개 정도의 유사 감정 또한 부여해서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스스로는 인간의 감정에도 호기심을 가지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단계까지 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마치 착한 행동으로 칭찬받으려 하는 강아지같이 말이다.

 

나는 인공생명을 창조하길 원했다. 나의 연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거리에 제약받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용도가 높은 디지털화된 의식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목표이고 진정한 목적은 프로그램 데이터로 생명을 만들 수 있다면 반대로 인간 의식의 데이터화 가능성을 상정하는 데에 있었다. 또한, 굳이 에이바에게 동물 수준의 감정을 부여한 이유는 감정이 없다면 그저 성능 좋은 기계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같이 복잡한 감정체계를 가지게 된다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에 고등동물의 수준으로 조정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변인을 통제해가며 실험하는 대상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처음에는 그 실험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체(현재의 에이바)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프로토타입’으로서 몇 년간 함께 지내며 활용하면서 갖은 오류를 찾아내어 보다 더욱 진보된 실험 설계를 통하여 완전한 인공생명을 창조하는 데에 참고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에이바는 그 자체로도 완전한 하나의 생명이 되었다. 즉 내가 예상한 방법이 옳았던 것이다.

내 예상이 적중했기 때문인지 내심 기쁘기도 했다.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글리치가 존재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설계를 하고 결함이 발생하기만을 기다리고 관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분명 모순되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비합리적인 실험 같지만 평범한 인간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실험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노후화된 기계가 수명을 다해 자연스럽게 글리치의 발현 빈도가 증가했다고 하는 결과론적인 해석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일반적인 에러가 아니었다.

보통의 에러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더 이상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이 개체의 경우는 그 ‘결함’의 패턴이 일정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한 무작위성을 갖고 발현되었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은 결함으로 인해 악화되기는커녕 개선되고 더욱 발전한 형태로 진화해 나갔다. 곧 인간이 ‘결함’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간에 따라 ‘개성’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그 말인즉 나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생각해낸 것이다.


“에이바. 커피 투 샷 블랙으로, 콜롬비아산 원두로…. 뭐 내 취향은 알지? 한 잔 따라줘. 오늘 일찍 일어났더니 정신을 맑게 유지하도록 해야겠어.”

<물론입니다, 소장님. 즉시 제조하겠습니다.>

내가 앉으려고 시도하면 의자는 순식간에 내 신체구조에 맞춰 인체공학적으로 최적의 형태로 변형되어 내 몸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취향에 맞춘 커피 한 잔을 대령한다. 심심풀이로 만들어본 장난감 치곤 꽤나 편리하다.

<어떠십니까? 커피 맛은 잘 입맛에 잘 맞으시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에이바. 내가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뉴로 싱크를 통해 내 기분과 상태를 애초에 다 파악할 수 있잖는가. 그게 너에게 부여한 능력이자 권한이야. 그럼에도 넌 내 기대와 반대로 행동하고 있군. 비효율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 말이야.”

그렇게 말하곤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을 후룩 들이켰다.

“흠 그래도 커피 타는 실력은 많이 늘었어. 맛이 좋군.”

<칭찬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나 소장님의 기대에 못 미쳐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소장님께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에이바를 굳이 모질게 대하여 스스로 발전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유는 그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창조주이자 주인인 나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나에게 어떻게든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탄생한지 오래되지 않아 불만족스러운 점들이 보이지만 지적을 할수록 눈에 띄게 개선을 해나가고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자식을 훈육하는 부모가 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너에게 애완동물 수준의 간단한 감정을 부여함과 동시에 자기의식 자각 능력과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능을 부여한 점이 내 실수일지도 모르겠네. 반대의 경우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었고 너는 그동안 내 동족을 찾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이 커피를 보아라. 향긋한 냄새를 풍기지만 쓴맛을 지니고 있지.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 내가 너에게 감정 유사체를 심은 것도 같은 맥락이야. 세상은 원래 모순 덩어리다. 혼돈으로 가득하지. 내가 생각하는 생명이란 그런 것이야. 그리고 너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고 모순의 늪에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잘 알겠습니다. 결국 저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소장님과 동족인 훌륭한 조수를 찾아내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모순을 타파하기 위함입니까?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한 번 커피를 들이켜고 대답했다.

“질문은 하나일 수 있으나 답은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어. 그렇게 모든 답을 단 한 개로 정의를 내리기로 단정 짓는다면 그것은 기계일 뿐이지. 시야를 넓히도록 하여라. 난 너에게 알려준 적 없이 스스로 알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너는 외부의 개입 없이 지금의 자의식을 갖추는 데에도 반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현시점에선 정식 조수를 찾기 위함이라는 명목하에 나와 같은 종족을 찾아내는 것인 거고 그 외의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해나는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거야. 뭐, 그렇다 할지라도 결국엔 나의 동족을 찾아내는 데에 실패하거나 너 같은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되면 너를 정식 조수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지에 스스로 도달하면 인간의 감정을 허락할지도 모르는 게야. 더 이를지도, 영영 그런 일은 없을지도 알 수 없지. 이처럼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쓸데없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도록. 이건 조언임과 동시에 경고하는 것이다. 특별한 지시가 있기 전까진 오직 자신의 사명을 찾아내고 수행하기 위한 질문만이 허용된다. 알아듣겠는가?”

긴 말을 끝내고 커피를 끝까지 들이켰다.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앞으론 제 분수에 맞게 행동토록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결과는 알 수 없다. 나의 조수를 찾는다는 명목하에 나는 진정한 동족을 찾고 있을 뿐이다. 현생 인류보다 한층 더 진보된 신인류를 규합하여 나의 대의에 참여할 것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그때까지의 이 지독한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 에이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호모 사피엔스 종이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는 땅에서 유일하게 나와 담론이 가능한 존재였으니까. 유일하게 외로움을 잊게 해준 존재였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준 능력으로써 하나의 인격체로 멋대로 규정한 것도, 나의 명령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나는 에이바를 삭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대신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마치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행동을 교정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소장님. 닥터 박은 여전히 수면 중입니다. 기상시키도록 할까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 좀 더 쉬게 내버려둬. 생에 마지막 휴식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인물이길 바란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장님. 닥터 박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 충분히 숙면을 취했나 보군. 아직 다음 단계도 넘지 못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여태껏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결국은 대부분 둘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요구하는 건 다 들어주고 휴게실 메인 홀로 오도록 안내해.”


<네 알겠습니다.>


물론 나는 에이바를 통해 실시간으로 박 실장을 CCTV 보듯 관찰하고 있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윽고 편한 복장으로 환복하더니 시원한 맥주를 요구한다. 아침부터 술이라니. 참으로 취향이 독특한 친구구먼. 

나는 박 실장이 이 장소로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며 박 실장 감시와 동시에 지하 1km에 위치한 내 구역에서 지상의 자연을 흉내 내는 초고화질 벽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감상하고 있었다.


이윽고 터벅터벅. 걸음 소리가 들린다. 박 실장이다. 한 손엔 맥주병과 눈을 반쯤 뜬 상태로 내게 다가왔다.

나를 보더니 가만히 말없이 서있었다. 왜 멀뚱히 서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가상 디스플레이들을 종료하고 뒤로 돌아서서 박 실장을 맞이했다.

“그래 박 실장. 밤잠은 어떻게 잘 잤는가?”

그러자 박 실장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솔직히 어젯밤은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잠들더라도 악몽에 시달릴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말이죠. 그것 참 신기하게 꿈도 꾸지 않고 매우 편안히 숙면을 취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마법을 부린 듯 말이죠.”

박 실장은 눈치를 챈 듯 항의성 어조가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다행이다. 이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진작의 폐기 대상감이니까.


어쨌든 나는 화제를 돌려 말했다.

“흠흠. 아침부터 맥주라. 독특한 취향이군? 부디 알코올이 자네 판단력을 흐리지 않길 바라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의 단호한 어조에서 의지가 느껴진다.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어제 난 자네에게 약속을 했지. 모든 것에 대해 질문에 답해주겠노라고. 그리고 난 내 말을 반드시 지키지.”

“그럼 지금부터 하나씩 질문을 이어가 볼까요?”

박 실장은 맥주병을 한 손에 든 채로 의자에 기대듯 앉아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뻗어 올린 후 거만한 자세로 자신의 여유를 어필했다. 이에 나는 답했다.

“내가 답변을 하기 전에 우선 무엇을 물어볼지부터 생각해 봐야지 않겠나? 질문은 충분히 숙고하였는가?”

그러자 그는 맥주를 마시며 대뜸 답하였다.

“이미 저는 소장님의 대단하신 발명품 들은 대충 다 본 것 같은데요? 여기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있겠습니까?”

순간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하! 자네가 여기서 본 여러 발명품들? 저것들은 그저 여가시간에 심심풀이로 만들어본 것들뿐이야. 자네는 아직 내 연구가 어떤 건지 감도 못 잡고 있어. 마치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얼음을 본 것으로 거대한 빙산을 경험한 것처럼 말하고 있군.”

박 실장은 맥주병을 탁자에 탁 내려놓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하! 제가 본,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로보틱스 기술들임에도 그저 빙산의 일각조차도 아닌 그저 물에 떠다니는 얼음에 불과하다? 좋습니다. 당신의 오만한 세계를 한번 보여주시죠.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궁금하군요. 특히나 이미 상당수의 오버 테크놀로지 기술들을 목격한 마당에 말입니다.”

그는 상당히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내 본 연구에 대한 자부심? 그렇지 않다. 바로 ‘믿음’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그 무엇도 흔들지 못한다. 


“아! 맞다. 그런데 있죠, 소장님. 당신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박 실장은 맥주병째로 마시곤 어기적 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왠지 말이 알맹이 없이 텅 빈 느낌이 든다. 무슨 꿍꿍이가 있음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제가 드릴 말씀은 말이죠, 어떤 말이냐 하면….”

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실장은 들고 있던 맥주병을 탁자에 있는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맥주병이 깨지는 대신 둔탁한 타격음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박 실장은 상당히 곤란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맥주병을 봤다가 수차례 내리쳐댔다. 그러나 여전히 병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탁자가 살짝 움푹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다. 그 맥주병은 탄소와 석영 등의 분자구조를 정렬하여 만든 초강화 유리 재질이니까.


“어?! 아니 이게 왜! 안 깨지는 거야!”

정확하진 않아도 이때쯤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 대한 공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침부터 맥주병을 요구하다니.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웃기지도 않지만 뭐 아직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나와 ‘대화’를 해보기 전까진 말이다.


“박 실장. 알코올이 판단력을 흐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더니. 이게 뭔가? 완전히 판단력을 상실했구먼. 혹시 어제 받은 충격으로 인해 말을 거는 척하며 맥주병을 깨뜨린 후 순식간에 급소를 찔러 나를 제거할 셈이었던 건가? 차후에 일어날 일들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참으로 어리석군, 박 군.”

이런. 흥분한 그에게 자극이 되었나 보군. 병이 깨지지 않자 병을 든 채로 내게 휘두르려 달려든다. 물론 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왼손으로 병을 잡아채고 오른손은 목을 붙잡았다. 다리는 쓸 필요조차 없었다.


“놔! 이거 안 놔? 죽여버릴 테다! 이 미친 싸이코 자식아!”

그는 잡고 있던 맥주병을 놓고 목을 잡은 내 오른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다. 흠. 나는 그의 요구대로 모든 질의에 응답하기로 약속했건만 좀 흥분을 가라앉혀야 대화가 가능할 듯하다.

“박 실장. 평소 인간 사회에서 대접받고 살던 엘리트가 ‘박 군’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니 자존심이 상한 건가? 뭐, 이유야 어쨌든 자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흥분을 가라앉히기 전까진 내 오른손은 놓지 않을 걸세. 물론 그렇다고 목을 부러뜨리진 않을 거니 안심하고. 일단 여기 일단 앉도록 해.”

그리고 에이바에게 신경 통신망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에이바. 내가 강제로 의자에 앉히면 즉시 신체 포박을 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내가 의자에 박 실장을 강제로 앉히자 즉시 전신 포박 장치가 가동했다.

“아니?! 이게 뭐야! 당장 풀지 못해 이거?”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물론이지. 자네가 흥분을 가라앉힌다면 말이야.”

[위이잉]

벽 아랫부분이 열리더니 둥근 기계가 나온다.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로봇 청소기이다. 하지만 당연히 처음 본 형태의 기계는 그에게 낯선듯하다.

“저건 뭐야? 날 어쩌려고? 이거 당장 풀어 이 미친놈아!”

순간 나는 왼손에 빼앗아 쥐고 있던 맥주병을 꽉 쥐어서 가루로 만들어 땅에 떨어뜨리며 손을 탈탈 털었다. 그러자 로봇 청소기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잔해를 말끔히 치워버렸다. 박 실장은 어제의 충격을 받았을 때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며 점차 조용해졌다. 역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 침묵시키기에 가장 효과가 좋다.


박 실장은 겁에 질린 듯이 말을 했다.

“아… 아니, 내가 있는 힘껏 수차례 내리쳐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강화유리를 어떻게 가루로 만든 거지?”

나는 대답해 주었다. 질문에 답해주기로 약속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한 것이냐면 손에 병을 든 채로 힘을 주고 꽉 쥐면 저렇게 된다네. 궁금증은 풀렸나?”

“그런 일차원적인 걸 물은 게 아니잖아!”

후…. 물론 내가 약속하기는 했지만 무례함은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군.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에이바. 현재 나와 박 실장의 심박수와 아드레날린을 삼차원 스크린에 띄워. 그리고 지금부터는 박 실장도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는 깜짝 놀란 듯이 외치듯 말했다.

“뭐, 뭐야? 누구야? 당신 지금 누구랑 말하는 거야?”

나는 차분히 말하며 에이바를 소개했다.

“이참에 인사하게. 내 인공지능 비서 겸 조수라네. 에이바. 간단하게 자기소개해봐.”

박 실장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네. 안녕하십니까 DR. 박. 오랫동안 지켜봐왔지만 이렇게 직접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소장님의 숨겨진 진짜 비서이자 조수로서 소장님의 극비 프로젝트를 돕고 있으며 이렇게 집사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박 실장은 어리둥절해지더니 이내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나는 물어보았다.

“첫 대화인데 따로 할 말은 없는가 보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현재 흥분은 가라앉았나?”

3차원 스크린에는 나와 박 실장의 전반적인 바이탈 사인이 표시되고 있다. 나의 분당 심박수는 80회가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박 실장은 150에 육박하고 있다. 그것을 본 박 실장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괴물이군…. 하하…. 이 상황에서 그렇게도 평온할 수가 있나? 내가 공격할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단 건가? 그렇다면 한 손으로 강화유리를 으스러뜨린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리고 한 손으로 80킬로가 넘는 나를 들어 올려 제압하는 것도 다 해명해 봐!!”


이해한다. 물론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겠지만 우선은 규칙과 예절을 가르쳐야겠다. 반항의 여지는 처음부터 싹을 쳐내야 한다.


“박 실장. 물론 약속대로 궁금증은 모두 해소시켜줄걸세. 하지만 그전에 따라줘야 할 규칙들이 있네. 이들을 지키지 않으면 대답을 해줄 수도, 구속을 풀어줄 수도 없어. 지금부터 하나씩 말해줄 테니 잘 듣고 암기하도록 해.  지금까지는 인간 사회에서 평생을 지내온 자네가 혼란스러울 것을 감안해 지켜봤을 뿐일세. 그러니 똑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또 똑같이 무력으로 자네를 제압할 수밖에 없을 걸세. 그리고 아쉽지만 그때는 단순히 제압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명심하도록. 기회는 한번뿐이니 더 이상 나를 시험하지 말도록 하게. 알겠나?”

박 실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후 내쉰다. 뻔히 보았던 행동 패턴이다.

“후우…. 알겠으니 그 망할 규칙이나 얼른 말하시오.”

그는 겉으론 강한 척 나오지만 이미 전신스캔을 통해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심에 사로잡혀있는 게 뻔히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그도 눈을 뜰 테지. 

“그래. 좋은 자세야. 지금부턴 에이바가 규칙을 설명해 줄 것이야. 나는 같은 말을 너무 많이 반복해서 이제 지겹거든. 충고하자면 인공지능이라 해서 만만하게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에이바는 단순한 AI가 아니란 말이지. 당장에 자네를 구속하고 있는 장치도 에이바가 컨트롤하고 있어. 어제 자네가 쓰러지는 것을 막은 것도 에이바란 말이지. 그러니 자네가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자네의 목숨줄은 에이바가 잡고 있다는 걸 명심하게. 이미 실시간으로 자네 신체 지도를 삼차원으로 재구성하여 스캔했으니 거짓을 말하거나 회유를 시도했다간 후일은 장담할 수 없음을 명심하게나. 그럼 난 옆방에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 내가 없다고 해서 긴장을 너무 풀지 않는 것도 좋을 거야. 에이바와 나의 신경망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오로지 내 명령에만 복종하니까 말이지.”


말을 끝낸 나는 자리를 떠나 옆에 위치한 관찰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때 재미 삼아 만든 겉보기엔 벽으로 막혀있지만 안에서 밖은 훤히 보이는 투시 기술로 지은 방이다. 에이바의 시야를 위해 설치한 나의 공간 전체에 사각 없이 존재하는 마이크로 카메라들을 활용해 내 시선에 따라 벽 스크린이 벽 너머 시점을 벽 스크린에 투사하므로 내겐 투명 벽으로 보인다.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나도 솔직히 생각도 못 했다. 어쨌든 당장은 박 실장의 태도를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는 울분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기로 한다. 현명하군. 그 현명함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지.


“… 알겠습니다. 규칙이 도대체 뭔가요?”

“닥터 박. 지금부터 현재 위치를 포함하여 극비 프로젝트 전 지역에 적용되는 규범입니다. 이를 위반할 시 즉각 폐기처분되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가 침을 꼴깍 삼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아까의 태도는 어디 갔냐는 듯 얌전해졌다.

<에이바. 일단 그의 구속구들을 모두 풀어줘. 그리고 캐모마일차를 한 잔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소장님. 이번에도 어제와 같은 약물을 섞을까요?>

<아니. 중요한 대화중 잠들면 안 되니 적당히 안정감을 주는 벤조디아제핀계열로 선택해서 미량 넣도록 해. 용량은 봐가면서 가감하는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의 건강 상태, 의약품 섭취 히스토리 등을 참고하여 알프라졸람 0.25mg 정도면 적당하다고 계산됩니다.>

<훌륭하군. 그럼 계속하도록 해. 나는 널 통해 지켜보고 있을 테니.>

<네 소장님.>


에이바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군. 의학적 지식도 수준급으로 학습한듯하다. 당연히 전문 교육을 수료하거나 의학 서적을 통해 배운 지식이 아니므로 일반인이 보기에 의아한 점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알코올과의 동시 섭취는 금지되어 있다. 정석대로라면. 하지만 여기선 모든 것은 새로운 룰을 적용받는다. 의학, 약학 분야를 떠나서 내가 룰 그 자체이다.


“첫 번째 규칙입니다. 표면상 한국 국립 과학 연구 단지로 위장하여 지하에 지어진 이 시설 내에서는 소장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반드시 존칭과 경어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다만 건설적인 토론을 위한 질문은 허용됩니다. 또한 소장님의 명령이 있을 시엔 일시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그 즉시 폐기처분 대상이 됩니다. 아 그리고 여기 캐모마일 차입니다. 당신의 심신 스트레스를 안정시켜 줄 겁니다.”

첫 번째 규칙을 듣자마자 구속장치가 해제됨에 따라 박 실장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구속이 갑자기 풀리며 팔다리가 자유로워져서 영문을 몰라 할 때 이미 자리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생성되어 있었다.

“워워워! 날 왜 풀어주는 거지? 단순히 차를 마시라고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리고 여태 한 발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오늘만 해도 엄청나게 위반한 것 같은데?”

에이바는 기계같이 차가운 음성으로 답해주었다.

“구속을 풀어준 것은 소장님께서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왜인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소장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규칙을 듣기 이전의 위반사항들은 소장님이 없던 일로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럼 두 번째 규칙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이런 염병할…. 소장님은 저에 대해 완벽히 간파하고 계시나 봅니다. 네 좋습니다. 다음 규칙을 듣도록 하지요.”


나에겐 박 실장을 괴롭힐 의도가 전혀 없다. 그저 신인류에 합류하는 것에서 오는 부작용은 그 누구도 어찌할 방도가 없을 뿐이다. 부디 오랜만에 찾은 신인류 후보인 만큼 잘 따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규칙입니다. 이 연구소 내에서는 특급 기밀의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 통신이 철저히 단절되며 모든 직원들은 경추에 뉴로 마인드 기기, 일명 스파이더(SPIDER) 부착 시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기밀 연구소 내의 모든 인원과 뇌파를 통해 즉각적인 소통을 가능케 해주고 업무 편의성을 높이기 위하여 혼합현실(MR)이 제공됩니다. 만일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할 경우 그 즉시 스파이더는 폭파됩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여기는 황해 지각판 10km 아래에 위치한 시설이며 모든 통신장비는 전 연구소의 폐쇄 회로망 내에서만 작동합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뭐 그러시겠지…. 근데 무슨 장치라고?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 내 몸에 그런 알지도 못하는 기계를 달고 싶진 않아!”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입니다. 거부하시면 즉각 폐기 절차가 시행됩니다. 거부하시겠습니까?”

“아니….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젠장…. 어쨌든 다음 규칙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주시죠.”


박 실장은 역시나 고개를 푹 숙인 채 체념한 듯 얌전히 듣고 있다. 항상 그렇듯 압도적인 힘차이를 느끼면 즉시 체념하고 고분 고분 해지는 자세이다. 이대로 따라주기만 한다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집중하여 들어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마지막 규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 실장은 또 침을 꼴깍 삼킨다.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공포에 대비하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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