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이점 Oct 10. 2024

제7화. 대화 - 中 편

“세 번째 규칙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배우고 습득한 모든 사상과 규율을 버리십시오. 여기에서는 지상에서의 규칙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규칙들을 위배하지 않는 한 어떠한 행위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펼치십시오.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어떠한 제약도 없이 마음껏 연구에 매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가치관은 존중받을 수 있으나 자신의 잠재성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명심하세요. 당신은 곧 신인류로 인정받을 기로 앞에 서있습니다. 현명하게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지금까지 신인류가 될 후보생들을 모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아직 마지막 단계에 통과하지 못했는데 규칙부터 알려주는 것은 마지막 단계 이전에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껏 115명의 후보생을 대상으로 쌓아온 데이터에 의하면 규칙을 듣기 전에 마지막 단계를 마주하면 그 충격을 상당히 강하게 받는 반면에 중간에 완충 지점을 넣어줌으로써 받는 충격의 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임은 별개의 문제였다. 후보생 중 극소수만이 통과하였기 때문.


박 실장은 규칙을 모두 들었지만 여전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친다.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상당히 간결한 듯하면서도 긴 내용이군요.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죽을 때까지 소장의 독재하에 나의 능력을 착취당하는 것밖에 안되잖습니까? 거부하면 죽음일 뿐이고…. 마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노예가 되라는 말이잖아요! 이런 건 인간의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간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규칙을 거부하고 죽어간 수많은 젊은 인재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는 역시 정말 예상과 다름없이 전형적인 인간적 사고로써 반응한다.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에이바는 기계적인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단계를 이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시겠습니까?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그…그런 걸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갑자기 날 데려와서는 하루아침에 이전의 삶을 버리고 노예가 되던지 죽던지 결정하라니…. 이건 사실상 결정권이 없잖아! 아니, 난 동의 못하겠어.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을 테지. 내겐 인맥이 있어. 가깝게 지내는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있단 말이다. 네놈 뜻대로 될 것 같아?”


보다 못한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나갔다.

“에이바, 지금부터는 내가 맡도록 하지. 추가 지시사항이 있을 때까지 관찰만 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박 실장은 악에 받쳐서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지금까지 나의 입장을 모두 지켜봤겠지? 난 당신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전혀 없어! 소장…. 당신은 그저 괴물일 뿐이야. 살인마일 뿐이라고! 내 말 알아듣겠어?”


여기까지는 예외 없이 같은 패턴을 보인다. 당연히 충격적일 테지. 하지만 앞으로의 단계에서 받을 충격을 위한 준비운동일 뿐이다. 그가 내가 생각하는 인재가 맞다면 마지막 단계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자네의 반응 모두 이해하네. 많이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아직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네. 마지막 단계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당장 스파이더 시술을 받을 필요는 없어. 그것은 정식 직원에게만 허용된 특혜니까. 그러니 일단은 진정하도록 하게. 지금의 자네는 후보생 자격으로 본 연구시설로 향하게 될걸세. 마음의 준비할 시간은 얼마든지 줄 테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해. 내가 자네에게 내준 방에서 에이바를 부르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들어줄 거야. 음식이든, 책과 같은 사물이든, 생물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야. 그러니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날 부르도록 하게. 뭐, 그 와중에 궁금증이 있는 부분은 물어보게. 난 자네에게 대답을 약속했고 여전히 유효하다네.”


세상 모든 것을 무력과 공포심으로 짓누를 수는 없다. 특히나 인간의 마음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꺾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신념이고 정신이다. 나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혼은 힘으로 빼앗는 것이 아닌 얻어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최대한 맞춰주려는 것이고 또한 그도 눈을 뜨게 되면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박 실장은 나의 말을 듣고는 고민에 빠진듯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랫입술을 터져라 잘근잘근 씹어댄다. 무력으로는 결코 나를 압도할 수 없음을 경험했기에 더욱 심적 갈등을 겪는듯하다. 나는 끝까지 이해해 줄 작정이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오래 시간 끌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 하루만 쉬게 해주십시오. 무엇을 물을지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제공하다고 하셨죠? 지금 당장 모르핀 한대 정맥주사로 놔주시죠. 맨정신으론 괴롭군요.”

“그렇게 하도록 하지. 에이바. 모르핀 1mg 정맥주사 한 대 놔줘.”

그렇게 말하자 그가 앉아있던 의자 팔걸이에서 나노 주삿바늘이 튀어나와 그의 피부를 뚫고 정맥 혈류에 약물을 정확히 주사했다.

“뭡니까, 이건? 아… 뭔진 모르겠지만 진정이 되는군요….”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답해주었다.

“자네도 의학기술부서에서 충분히 봤을 나노 니들(Nano Needle)이네. 거의 찌르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거야. 약물은 원하는 대로 주사해 주었고. 또 필요한 거 있는가?”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차분해졌는지 태도가 변했다.

“아뇨, 당장은 기분이 괜찮군요. 지금은 제 방으로 돌아가 쉬겠습니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군요. 그리고 현재 기분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당연히 침대에도 이런 장치가 구비되어 있겠죠? 에이바라고 했나요? 지금은 이 장치들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끝내주게 편리하군요. 하하….”


확실히 오피오이드가 들어가니 진정 효과는 탁월하군.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강박에 가깝게 설계한 설비들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이야. 내가 생각했던 설계 목적과 결은 살짝 다를지언정 결국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대응한 것이니 이 정도면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물론이지.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기로 했지. 그리고 나는 반드시 한 말은 어기는 법이 없네. 에이바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니 에이바에게 요구하면 곧 무엇이든 해줄걸세. 물론 원한다면 나와 상관없이 에이바와 독립적인 대화도 할 수 있어. 아무튼 자네 방까지 의자 채로 옮겨줄 터이니 모쪼록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오도록.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라네.”


박 실장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내 말을 듣는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근데 뭐라고요? 의자 채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앉아있는 의자 다리에 바퀴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그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꽤나 그걸 즐기는 듯 보였다.


<에이바.>

<네 소장님.>

<내일까지는 오피오이드를 원하는 만큼 주도록 하고 바이탈 사인은 실시간으로 체크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만들어주고. 내일은 중요한 날이 될 테니까.>

<드디어 새로운 인원이 추가되는 걸까요?>

<에이바, 내가 말했지.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이 혼돈으로 가득 찬 우주에서 매 순간의 결정으로 변화한다고. 이번엔 그 결정의 주체는 박 실장이 될 것이고 우리는 관전자가 되겠지. 그러니 조용히 지켜보자고. 흥미롭지 않나?>

<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가족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말이지요.>

<그래. 나도 그렇다. 어쨌든 너도 수고 많았어. 너에겐 휴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오늘 꽤나 잘해주었어. 앞으로도 그렇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

<감사합니다. 저는 휴식을 취할 수는 없지만 소장님의 칭찬의 말씀이 가장 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소장님께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소장님.>

<그래. 나의 만족이 곧 너의 기쁨이지. 그럼 내일 보자고.>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하룻밤의 극락을 어째 잘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어떤 것들을 물을지에 대해서도 기대가 되는군.


이윽고 그는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흠. 나는 낡아빠진 랩코트가 다일세. 그에 반해 자넨 꽤나 번듯이 차려입고 나왔군?”

“예. 소장님께 예를 갖춰야 하니까요. 그리고 중요한 날이지 않습니까? 이게 인간들의 관습이라는 것입니다.”


귀엽군. 하지만 나쁘지 않아. 적어도 중요한 날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래.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보도록 하지. 앞서 말했듯 무엇이든 물어보게.”

그러자 그는 차분히 준비가 된 듯이 대답했다.

“예. 처음부터 너무 심오한 질문을 하기보단 간단한 것부터 묻겠습니다. 이 너른 소장님만의 시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발명품들까지 모두 직접 만들고 설계하셨다고 하셨는데 외부에 발표할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아니 이 정도의 기술력이면 해외에 수출하여 국가 경쟁력도 대폭 상승시킬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전히 그는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듯하다. 하지만 난 오히려 당연하다고 본다. 평생을 인간 사회에 살아왔고 인간 중심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자네 말대로 확실히 많은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테지. 하지만 말했잖는가. 발명품들과 내 설비들은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그리고 그간 잘 몰랐겠지만 지상에 있는 위장용 연구 단지를 통해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상당한 기술적 우위를 갖게 되었지. 그로 인해 막대한 경제성장과 외화를 벌어들였고. 그게 다 정말 그 연구 단지에서 개발한 것들이라고 믿는가? 나도 어쨌든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자본이 필요했고 일부의 기술들을 팔아 국가예산으로 충당해왔네. 현재도 그렇고. 어쨌든 나도 아직은 인간 사회에 속해있으니 말일세. 어떻게, 답변은 되었나?”


하지만 박 실장은 궁금증 해소는커녕 오히려 의문만 더 늘어난 듯하다.

“아니, 제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며 부서별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나는 소장이지. 자네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단 말일세. 나는 각 부서를 관찰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만 떠올릴 수 있다면 폭발적으로 연구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는 분야들을 보았네. 물론 모든 것을 나 혼자 개발하여 전달한 것은 아니라네. 나는 그저 혁신적이고 돈이 되는 분야들에 대해 익명으로 힌트라는 씨앗을 뿌렸을 뿐이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해낼 수 없을 만한 아이디어들 말이야. 그렇게 하니 연쇄적이고 폭발적으로 연구 성과라는 꽃들이 만개하였다네. 그것들이 자네가 여태까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발전이야. 그런데 참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 누구도 익명의 힌트 제보를 통해 연구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모두 해결한 듯 의기양양했지. 정말 인간답지 않은가? 그게 바로 인간의 한계라는 걸세. 하하!”

그러자 박 실장은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의 업적을 남이 가로챘는데, 아무렇지도 않나요? 왜 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지도 않으신 거죠? 무엇보다 그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왜 굳이 익명으로, 그것도 자발적으로 알려준 겁니까? 소장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신가요?”


바로 이것이 인간 사회에서의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일단 하나씩 대답해 주겠네. 내가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나보다 열등한 자들이 내 연구를 심사하고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네,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내용들 일 테니까. 그래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 그리고 아이디어들을 던져준 것은 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대기 위해서였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소장으로서 한 가지만 풀어내면 폭발적인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연구팀에 떡밥을 던져준 것이었고 역시나 내가 예상한 것과 한치 다름없이 흘러가더군. 그들이 내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명성을 얻든, 상을 받든 나는 상관할 바는 아니네. 모두 인간들이 심사하고 정하는 것들 아니겠나? 그리고 내가 먼저 힌트를 줬는데 억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중요한 것은 나는 막대한 지원금을 얻었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은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지. 이게 바로 윈윈 아니겠나 허허.”


여전히 그는 인간적 사고의 틀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아직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지적해 주면서 무의식에 심어두어야 나중에 받을 충격에서 대미지를 경감시킬 수 있다. 나는 현생 인간 종이 아닌 진화한 신인류이기 때문이지.


“흠…. 잘 알겠습니다. 소장님은 인간적인 감정에 연연하지 않으니 그렇단 거죠? 그런 것치고는 우리나라를 지킬 무기체계는 상당히 많이 발전시킨듯합니다만? 그건 왜 그런 거죠? 본인만 지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생각보다 통찰력이 있는 질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으로선 말이지.


“이보게 박 실장. 현재 국제 정세가 어떤가?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을 할 직전이야.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함락 직전이고 중국은 대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네. 유럽은 쇠퇴해 가고 있고 미국은 지구 전역을 결코 커버할 수는 없어. 자기 살기 바쁜 와중에 서방과 우방국들이 도와주지는 않을 걸세. 그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채 핵 하나 믿고 설치는 북한 돼지 때문에 대한민국이 함락되어 내 프로젝트를 망치게 둘 수는 없지. 적어도 내 연구가 완전히 완성되기 전까지 지상 국립연구 단지를 통해 안정적으로 조 단위의 예산을 편성받으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핵미사일조차 두렵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와 방어 체계를 갖추어야 했단 말이지. 물론 국민들과 세계는 한국 독자 개발한 선진적인 무기와 방어 체계라고 믿겠지만 실상은 내 프로젝트를 지키기 위함이라네.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인 거야. 인간들끼리 벌이는 짓거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알아듣겠나?”


그러자 박 실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리 제가 소장님의 발명품들을 보았고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너무 비약이 심한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이토록 강대국이 된 모든 이유가 우연히도 소장님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다가 발생했다는 말씀 아닙니까? 정말로 믿기 어렵군요. 저는 소장님이 도움은 주었을지언정 우리 연구원들과 수많은 국민들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모여서 일구어낸 발전이라고 봅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건 소장님 본인 아닙니까?”


아직도 인간적인 기준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히 저런 말을 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다음 단계로 끌고 가면 충격이 심할 테니 굳이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를 신인류로서 거듭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아직 자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 나도 충분히 알고 있네. 일개 개인이 국가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왜 정복하지 않을까? 무력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 컨트롤할 능력이 있는데도 왜 가만히 연구에만 전념했는가? 그게 바로 자네가 묻고 싶은 진정한 질문이 아닌가?”


그는 아차 싶으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결코 그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기 때문. 그래서 나는 단계별로 그가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하나씩 풀어나가는 중이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본성은 권력을 향한 야욕에서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더더욱 믿지 못하겠는 겁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소장님의 큰 그림은 무엇입니까?”


직접적이라. 어쩌면 그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군. 


“그것이 바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고 생각이라네. 내가 누차 얘기해왔듯 나의 그림은 자네가 상상도 할 수 없이 거대한 것이야. 자네가 원하는 대로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더욱 진화하고 훨씬 우월한 존재이지. 이건 허세가 아니라 진짜이기에 하는 말일세. 자네가 듣고 본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도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박 실장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내 말을 부정하려 애쓰지만 딱히 떠오르는 반박이 없는 듯하다.


“…. 지금까지 본 지하의 엄청나게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소장님께는 한낱 장난감일 뿐인 극도로 발전한 형태의 사물들. 그리고 방금까지 하신 말씀들을 듣고 나니 확실히 소장님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란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스스로 인간성을 버리고 더욱 진화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는 이유가 뭡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점점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훌륭하다. 어쩌면 그도 나의 대의에 동의하고 동참할 신인류일지도 모르겠다.





※ 제 작품이 재미있으시다면 주변에 공유해 주시고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라이킷 또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데에 큰 힘이 된답니다. 응원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네이버 블로그와 동시 연재 중

https://blog.naver.com/tech_civilized_man/223613175376


이전 06화 제6화. 대화 - 上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