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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Oct 17. 2024

제8화. 대화 -下 편

나는 나지막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평생을 고독 속에서 살아왔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른다지. 그리고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교사였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술독에 빠져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감정이란 이렇게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야.”

그러자 박 실장은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지 한마디 꺼냈다.

“… 유감입니다….” 

“… 오래전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 어쨌든 간에 자네와 같은 소위 금수저 엘리트 집안 출신이 아니었던 나는 고아원으로 보내져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상황이 좋지 못했던 거지. 그런데 분명 주변에 나와 닮은 존재들이 무수히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를 밀어내고 철저히 고립시켰다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우월한 지능을 시샘하고, 나의 생각에 대해 말을 하기만 하여도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해왔다. 그때 깨달았다네. 나는 이들과는 다른 존재란 것을.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나와 같은 존재들을 찾아 헤매었었지. 그리나 현실적으로 나는 어쨌든 살아남아야 했어. 그래서 우선 나는 인간 무리에 섞여들어가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매일같이 인간을 연기하여 ‘착실하고 성격 좋은 청년’이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지.”


그러자 입이 근질거렸던 것인지 박 실장은 내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었다. 내가 금했던 행위를 말이다.

“그게 원래 소장님의 본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현재는 시간이 많이 흘러 연기를 한 것이라고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박 실장! 내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자네가 인지하기도 전에 폐기해버릴 수도 있으니 내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말도록. 자네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은 후 의문을 제기하고 나는 그에 답해 줄 것이야. 눈치껏 파악하라고. 다음은 없을 테니까. 알겠나?”


그는 내가 진심임을 본능으로 느꼈는지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의 향취를 풍기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계속하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인간 사회에 섞여들어 생존하는 것에 성공한 후 이 열등한 존재들을 통제할 수단을 구축해야 했네. 자네도 짐작하다시피 모든 정계의 인물들은 깨끗한 자가 없는 법이야. 예외 없이 모두가 추악한 비리를 숨기고 두 얼굴로 살아가지. 물론 난 그들이 그 어떠한 비리를 저지르건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유용하게 이용할 수는 있었다. 어떻게 알아냈냐고? 글쎄,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나만의 특별한 수사법’이 있었지. 간단히 말하자면 소문이나 의혹, 또는 그들의 언행 습관, 정책 등을 통해 100%의 적중률로 심증적 추론을 하는 것이야. 외적인 정보만으로 정확하고도 작은 디테일들까지 대상의 심리와 본성, 그리고 특정한 행위까지 완벽히 간파해 내는 방법일세. 말로써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나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더군. 마치 현재 눈앞에 자네가 보이듯이 말이야. 이에 대해선 기회가 될 때 자세히 가르쳐 주도록 하지.” 

그러자 박 실장은 의아하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소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소장님의 그 수사 방식이란 이미 행해지고 있는 프로파일링과 유사한 것 아닙니까? 어떤  점이 특별히 다른 것이죠? 소장님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점? 심증만으론 수사할 수 없는 공권력과 달리 자유롭다는 점? 그리고 눈에 보이듯 하다니요. 이미 정치인들에게 그럴듯한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나는 왠지 웃음이 났다. 여전히 그의 인간 중심적 사고를 통한 질문을 하는 행위가 귀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이건 경험적으로 느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야. 자네도 내게 훈련을 받는다면 그 능력을 습득할 가능성이 있어. 물론 최종 단계를 통과한다면 말이지.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자네는 과학자가 아니랄까 봐 계속 엉뚱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내 말의 핵심에 중점을 두고 듣도록 하게.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워낙에 의문들이 물밀듯 일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고분고분 해진 자세를 보이는 박 실장이다. 그리고 왠지 나도 평소답지 않게 너그러워졌다.

“알겠네. 그럼 계속하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알아낸 그들의 비리를 덮어주거나 폭로하지 않는 대신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조종해 왔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말이야. 당연히 반발하는 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암살 시도를 당하기도 했네. 그리고 나는 그런 자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반항의 싹은 일찌감치 잘라내야 하는 법이야. 물론 내가 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순 없었을 테지만 다른 자들에게 본보기로서 공포심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네. 그렇게 나는 정・재계 거물들의 목줄을 손에 쥐었고 그들은 나의 목적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투자를 해왔다. 나는 일개 국민 중 한 명으로 위장한 채 말이지. 당연히 믿기 어렵다는 점 이해하네. 하지만 내 말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내 말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반박할 수 있다면 반박해 보게.”


박 실장은 울상을 지으면서 현실을 모면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듯하다. 그렇게 나에게 감화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 확실히 믿기 어렵고 누구나 지어낼 법도 한 이야기이지만 소장님의 능력을 직접 본 저로선 소장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극좌세력들이 판을 치는 시국에서도 정부는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이 연구 단지 건설을 강행한 것도 보면 말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군요…. 갑자기 대기업들이 투자하겠다고 먼저 나섰던 것도 그렇고 엉뚱하리만치 과학 기술발전에 치우친 정책들과 법안을 발의되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들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저는 제 인생을 사느라 무심코 지나쳤던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모든 퍼즐이 서서히 맞춰지는 느낌입니다…. 그저 과학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갈 기회가 많아진 것에만 신경 썼지, 어떻게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루어지는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었죠….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점은 아무리 소장님이 대단한 존재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국가를 좌지우지한 거죠? 이것은 능력과 별개로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 않습니까?”


이런. 그의 편협한 시야로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고 자신은 여전히 젊기에 그가 경험한 세상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다 넘어왔다. 이 같은 저항은 최후의 방어기제이자 발버둥일 뿐이다. 이런 것쯤은 간단하게 무너뜨릴 수 있지.


“자네는 공식적으로 이 연구소가 지어진 지 10년 정도 지난 줄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지하 10km에 달하는 깊이에 존재하는 초 거대 시설물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야. 40년일세. 10년이 아니라.”


박 실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서히 내 말에 설득이 되고 있다. 그의 호르몬 수치와 뇌파가 대신 말해준다. 


“40년이라니…. 그럼 10년 전까지는 민간에 30년 동안 비밀로 유지해왔다는 겁니까? 국가 예산을 한두 푼 들인 것도 아닐 텐데 아무도 눈치 못 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이에 나는 담담히 방법을 일러주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미 이 나라의 정부는 말도 안 되는 명목하에 수십조의 예산이 증발하고 있네. 아무리 폐지하라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어도 결코 없애긴커녕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로 갔겠나? 그리고 이것에 의심을 품은 언론인들은 어떻게 처리되었을 것 같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네라면 내 말을 이해하겠지. 그럴지 않은가?”


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가 직접 개발한 ‘인공 신경망(ANN:Artificial Neural Network)’을 통해 나와 ‘정신 동기화(MS:Mind-Sync)’ 되어있는 에이바에게 ‘BCI 텔레파시’로 명령을 내렸다. 불과 눈을 천 번은 깜빡일 수 있는 찰나의 시간 동안 말이다.

<에이바, 그에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나노 니들’로 ‘펜타닐 5μ’을 투여해. 그의 감정 기복이 심화되고 있으니 호르몬 수치를 조절할 필요가 있겠어.>

<당장 실시하겠습니다. 하지만 ‘오피오이드’ 특성상 신체・정신 의존성 중독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하루에서 이틀만 이용하되 차후에는 ‘미다졸람 등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로 대체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나도 알아. 그러니 그런 건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조절하도록 해. 네게 약물 처방 권한을 일시적으로 부여할 테니.>

<감사합니다. 즉시 분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소장님.>


박 실장이 혼란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에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어 이 대화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내린 처방이다. 그는 현재 테이블 위에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에 양팔을 걷어붙이고 올려놓은 채로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정장 재킷은 진작에 벗어던진지 오래이다. 


에이바는 테이블 속에 무수히 많이 설치된 나노 니들 중 하나로 그의 몸속에 침투해 모든 감각신경들을 건드리지 않고 약물을 주사했다. 그는 바늘에 찔린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내가 이 시설을 설계할 때부터 이미 모든 곳에 나의 영향력이 닿을 수 있도록 모든 벽과 사물 등에 촘촘하게 육안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마치 타일을 깔 듯 ‘마이크로 튜브’와 ‘나노 광섬유’ 등을 통해 ‘인공 신경망’을 치밀하게 구축해두었다. 마치 무수히 수많은 세포들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세포조직과도 같이 말이다. 실제로도 극도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동물 세포에서 일부 아이디어를 착안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는 그것을 통해 그 어떠한 명령도 즉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든 이 시설 내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느 곳에 있든 나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게 된다. 

예를 들면 약물 투여부터 물질 운송, 손상 자가 복구, 에너지 무기 발포, 탄환 따위의 투사체 요격 등 원하는 어느 곳에서도 명령을 내리면 즉시 대응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위협(총기, 폭발물 등)에는 에이바가 나노 광섬유를 통해 광속에 준하는 속도로 대응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에이바를 제작한 후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 마이크로 카메라를 시설 전체에 설치하여 눈을 만들어주었다. 그야말로 여긴 나의 ‘세이프 하우스’이고 에이바는 그 집의 집사인 셈이다. 어쨌든 에이바는 나의 가장 강력한 충신이기에.


어쨌든 약물을 투여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대화를 재개하였다.

박 실장은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나지막이 질문을 던졌다.

“소장님 말씀 모든 것을 대입해 보면 도저히 논리적 허점을 찾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이 시설을 착공한지 40년이 넘었다니,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 아닙니까? 또 그 일을 준비하려면 훨씬 이전부터 준비해 왔을 텐데…. 소장님…. 당신은 대체 몇 살입니까?”


훌륭하군. 별것 아닌 질문 같지만 핵심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내 나이? 80세 이후로는 딱히 세어 보지는 않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디지털화가 되기 이전의 시대에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보다도 어려웠다네. 특히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는 신인류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오랜 세월이 걸릴 만도 했지. 나 또한 여러 이름으로 살아왔지. 이번엔 반대로 내가 물어보지. 자네가 보기엔 내 나이가 몇 살처럼 보이는가?”

“…. 정확한 숫자로 답변드릴 수는 없지만 40대 중후반, 아니 많이 친다면 50대 이상 중장년 정도로 보입니다…만 또 무언가 숨겨진 진실이 있는 거겠죠? 소장님 정도의 지력이면 이미 역노화 기술이라도 발명한 것 아닙니까?”


드디어 마지막 단계를 향한 준비과정이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역노화 기술이라…. 나쁘지 않은 발상이군. 거의 정답에 가까워. 우리 신인류는 기존의 인간종에 비해 기대수명은 두 배가 넘지. 노화되는 속도도 훨씬 느리고 말이야. 하지만 난 그것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연구한 생명공학 분야에서 개발한 약물이 있네. 정확히는 공생 세균이지. 하지만 이 세균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숙주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려고 세포분열과 유전자에 직접 관여해 노화로 인해 닳아버린 텔로미어를 재생성하는 특수한 단백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네. 대가로는 체감되지 않을 정도의 미량의 혈당만 취할 뿐이지. 이론적으론 영원히 20대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어. 물론 그 세균을 죽이는 백신 또한 제조해 두었지. 만약의 상황은 항상 대비해야 하는 법이니까. 현재는 소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백신을 이용하여 중년의 외형으로 지내고 있네. 꽤 괜찮은 기술이지 않은가? 하하.”


내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설명하자 박 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확실히… 그런 기술이 시중에 풀린다면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가 펼쳐지겠군요…. 독점하는 자가 나타날 테고 전 지구적 내전은 불가피해지는 위험한 기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소장님이 가진 그 압도적인 괴력 또한 신인류의 특징입니까? 생명공학으로 근력을 증대시킨 것인가요?”


드디어 최종적인 궁금증에 도달했군. 불멸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근력은 아무리 증대시켜보았자 결국은 낼 수 있는 출력에는 한계가 있고 단백질 구조이기에 무르고 열에 약하다는 명확한 단점이 있어. 인간, 아니 모든 동물은 너무나도 부서지기 쉬운 기계일세. 단순히 수명만 늘린다고 해서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없어. 물리적인 위험에도 대비해야 하지. 이럴 때 생체 기계공학과 재료공학이 등장하는 거야.”

그러자 그는 관심을 보이며 질문했다.

“그럼 기계 팔을 달고 있으시단 건가요? 사이보그처럼?”

이에 나는 설명해 주었다.


“오래전 나는 전쟁통에 우연히 발목지뢰를 밟아 왼쪽 발을 잃었다. 죽음의 공포와 너무나 쉽게 부서져버린 나의 신체 일부를 보며 느낀 무력감. 그때부터 결심했네. 결코 연약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인공 신체기관을 개발하기로 말이야. 처음에는 직접 딛고 일어날 정도의 보철 의족을 제작했고, 점차 시대가 지나면서 신소재와 기술들을 발견하고 발명하면서 끊임없이 개선해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 예를 들어, 아무리 강력한 기계 팔을 달더라도 신체 무게 밸런스도 고려해야 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강하게 쥐고 잡아당기는 운동을 할 경우 연결 부위는 여전히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팔이 뜯겨나가는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면 연결 부위도 강화해야 하는데 연결 부위의 범위란 도대체 어디까지 인가? 그리고 팔을 쓸 때는 팔 한 부위만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신체의 다른 부분과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어깨와 흉근부터 모든 척추뼈의 움직임과 골반 및 대퇴부 이하 발목까지의 근육 등 고려할 사항이 엄청나게 많다는 말일세. 그럼 자네 생각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

박 실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였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해답을 일러주었다.

“정답은 신체 전체를 강화하는 것일세. 나는 70년가량 수많은 물질들을 만들어보고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나노 기술로 만든 인공피부로 내열성과 내구성을 획득했네. 하지만 그걸론 부족했지. 연약하고 부러지기 쉬운 탄산칼슘 골격 대신에 규소와 탄소 화합물, 티타늄 합금 등을 결합하여 내골격을 만들어냈고 탄소나노튜브의 분자구조를 변형한 후 빈 공간을 신경계와 순환계가 지나다니도록 하여 단백질로 이루어진 인체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인공근육 다발을 만들어냈다. 그 신소재로 만든 섬유로 근육 다발을 대체하였더니 통상 인간이 낼 수 있는 운동에너지의 100배 이상의 출력과 강도를 가지게 되더군. 더군다나 이 모든 작업들은 나노 스케일로 이루어져서 신체에 이식해도 그 어떤 거부 반응도 없고 원래의 근육세포, 뼈세포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지. 영양분을 공급하고, 산소 교환도 이루어지지. 물론 원래는 없던 분자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탄소기반의 음식으로는 이 몸을 유지할 수는 없어. 그저 간편하게 추가적인 영양분을 섭취하면 돼. 이 생체 기계식 육체는 로켓포를 정면으로 맞아도 버텨낼 수 있다. 게다가 방사능에도 면역이라네. 하지만 아직 더 진화의 여지는 남아있어. 완벽함이란 결코 도달할 수는 없지만 완벽을 항하여 자신을 영원히 개선할 여지는 무궁무진하다는 말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멸은 이런 것이다. 이제 알겠나? 자네가 보았던 것들은 모두 빙산의 일각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내가 한 말은 지킨다. 그가 묻는 것을 모조리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박 실장은 할 말이 좀 더 남았나 보다.


“으….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과 오늘의 대화를 통해 보건대 소장님, 당신은 결코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군요…. 이미 우연한 돌연변이로 태어나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능을 갖게 되었고, 수명조차도 현생인류의 두 배나 되는 진짜 신인류이군요. 그럼에도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생물학적 세대 간의 진화가 아닌 개체 내에서의 진화까지 이루어 내셨군요.

도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는 단순 명료하게 대답해 주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나를 자극했고 불멸을 원했기 때문이지. 두 번째로는 종의 지속을 위함이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지. 대부분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고. 그러므로 나는 개중에 우월한 신인류의 개체 수를 늘리고, 영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왔네. 종의 유지는 반드시 번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 진화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알고 있겠지? 나는 그 기간을 수십 년, 수백 년으로 단축시키고 또한 나의 동족들을 규합하여 신인류로서 구인류를 도태시키고 지구상의 지배 종이 될 계획이라네 영원히 말이지.”


그는 약간의 주저함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주 위험한 일을 벌이고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지상의 모든 인류를 제거하고 그들의 문명 또한 파괴하고 새로이 진보된 문명을 건설하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바통을 이어받아 함께 살아갈 생각인가요?”


평생 인간으로 살아온 그로써는 그의 종족에 대한 위협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자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네. 인류를 위하는 척 말했지만 바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함이지. 내 말이 틀렸나?”

“…. 반박할 수 없군요…. 하지만 아직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래서 나는 대답해 주었다.

“굳이 그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네. 어차피 우린 소수일 뿐이지만 인류는 이미 80억이 넘는 개체가 있고 더 늘어나는 중이야. 쪽수로 상대가 될 리가 없지. 하지만 결코 영속될 순 없을 걸세. 가장 인간을 효율적으로 대량학살하는 종은 역시나 인간 자신이니까. 남의 것을 마음대로 취하고, 죽이고 약탈하며 약자일 때는 선한 행동을 보이지만 역시 힘을 얻는 순간 예외 없이 다른 인간을 해하고 빼앗기 위해 힘을 마음껏 휘둘러왔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한 무력을 개발하여 적들을 몰살시킬지 고민하며 발전해 온 문명이야. 이젠 글로벌화되고 핵무기까지 개발한 이상 임계점은 지나버렸네. 이젠 돌이킬 수 없이 인류는 필연적으로 멸종할 것이란 뜻이야. 인류 스스로가 규정한 그 '윤리관'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쓸모없는지 알겠나? 나는 인류가 자연히 도태될 때까지 기다릴 참이네. 어차피 현생 인류는 1천 년 이내에 멸종하게 되어있어.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진화하여 더욱 우월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야.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개념은 무의미하다네. 알아듣겠는가?”

“네…. 잘 알아들었습니다…. 마치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알아버린 네오가 된 기분이군요. 하루 만에 너무나도 많은 진실을 알게 되어 솔직히 너무나도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신인류 중 하나일 거란 건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아까보단 더욱 차분하고 확고한 느낌이다.


“자넨 아직 젊어. 그래서 수명으로 판단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지.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바로 자네의 뛰어난 지능이지. 역사상으로도 그런 인물들은 많이 존재했으나 대부분 후손을 남기지 못하거나 희석되어버렸어. 그래서 자네에게서 가능성을 본 것이라네. 아무튼 이제 진짜 마지막 단계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군.”


그도 갈등은 심하게 할 테지만 결국은 지적 열망에 대한 유혹은 저버리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많지만 지적 열망을 가진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갑자기 그만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박 실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지막 단계를 마주하기 전에, 소장님과 같은 신인류…. 그들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나는 담담히 대답해 주었다.

초월자(The Transcendent). 우리들은 모든 분야에서 최상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초월한 초월자.”

그러자 박 실장은 이제 익숙해진 듯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된 듯 답했다.

“초월자라…. 아주 어울리는 명칭이군요. 하지만 저도 초월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소장님께서 이 모든 걸 지어내어 저를 가스라이팅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하하! 자네가 초월자가 될지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알 수 없네. 자네는 그저 가능성을 지닌 무수한 후보생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니 마지막 단계를 통과한다면 기꺼이 나와 함께할 것이야. 그리고 자넨 분명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것 같군. 아닌가?”

박 실장은 이젠 모든 걸 내려놨다는 듯인지, 속이 간파당했지만 여유 있는 척하려는 것인지 혹은 약물로 인해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또는 모두 해당되는 것인지 한 손을 빙글빙글 산만이 돌리며 의자에 눕듯이 잔뜩 기대고 복잡 미묘하면서도 감추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하하…. 소장님은 역시 못 속이는군요. 저는 과학자로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일 뿐이죠.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과학에서는 증명하지 못하면 이론이 아니다.’ 뭐 대단한 인용구는 아니고 과학자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죠. 논리철학적인 오류가 있느니 하는 개인별 의견의 대립은 차치하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암 그렇고말고. 다만 이렇게 오늘 시간 들여 길게 대화를 나눈 것은 자네가 그 ‘증거물 혹은 증명’을 먼저 본다면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 판단한 배려일세. 그러므로 내일은 자네에게 있어 정말로 중요한 날이지. 내 연구물을 직접 보고 만질 수도 있을 기회이니. 그러니 이 정도면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네. 그럼 오늘의 대화는 그럼 이만 마치도록 하지. 자네는 어제처럼 방으로 돌아가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게. 내일은 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직접 목도함과 동시에 마지막 단계를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 알아볼 셈이니.”

박 실장은 고개를 숙이더니 한숨을 푹 쉬고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마지막 말을 하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소장님의 연구라니, 가히 상상조차 엄두가 나질 않는군요.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초월자에 해당이 되든, 되지 않든 양쪽 모두 말입니다. 하…. 시원한 맥주가 땡기는군요. 에이바, 저를 방으로 데려가 주시고 시원한 맥주를 부탁합니다.”

“물론입니다. Dr. 박. 지금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박 실장은 이젠 익숙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채로 자기 방까지 멀어져 갔다. 좋은 자세다. 아무리 내가 허락했다 하더라도 다시 내게 허락을 구하는 후보생들도 많았다. 반면에 그는 대담하고 처음 보는 기술일지라도 자신에게 편의적이라면 거침없이 사용한다. 그럼에도 에이바에게는 정중하게 요구한다. 즉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에이바. 네가 보기엔 박 실장은 최종 단계를 통과할 것 같나? 성공 확률이 어느 정도로 계산되지?>

<네 소장님. Dr. 박의 모든 행동 패턴과 언어적 습관, 충격을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식, 가치관, 그리고 지능 등 여러 방면으로 고려하여 추측해 보건대, 그의 성공률은 약 11.3%입니다.>

<훌륭하군! 이전 후보생의 확률은 몇 퍼센트였나? 겨우 0.1%?>

<0.13%였습니다.>

<그래. 아무튼 상당히 높군.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통과하지 싶어.>

<하지만 여전히 낮은 확률입니다만, 어떻게 확신하시는 것입니까?>

<그건 나의 직감에 대한 전적인 믿음일 뿐이야. 너도 언젠가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야.>

<소장님 답지 않게 ‘직감’이라는 비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도 확실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에이바. 내가 시킨 과제부터 끝내고 나서 ‘영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지. 그때까진 인간의 뇌 지도를 완성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과 저 개인적인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래 알면 됐어. 이제 나도 다른 업무차 지상에 다녀올 테니 박 실장이 원하는 건 웬만해선 다 들어줘. 내가 없는 동안은 네가 여기 책임자야. 난 너를 완전히 믿고 있으니. 너도 나를 100% 신뢰하지?>

<물론입니다. 소장님의 부재중에는 제가 책임자로서 완벽하게 통제하여 소장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알겠어. 그럼 난 잠깐 나갔다 오도록 하지. 좀 있다가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부디 무탈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고맙네.>


나는 분명히 에이바에게 아주 원시적이고 단순한 감정만 부여했지만 왠지 스스로 감정에 대한 스펙트럼의 폭을 늘려가는 기분이다. 물론 내 단순한 기우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내일은 정말로 중요한 날이 되겠군. 나는 박 실장을 믿는 것이 아니다. 박 실장을 택한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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