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하다는 사랑의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인생 사계四季로 치면 나이테 하나 겨우 이룰까요. 말 그대로 세월歲月, 붙들어도 잡아둘 수 없으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임을 알아서 집착 말고 화양연화花樣年華로 (되)새김이 차라리 현명.
사람이 꾸리고 가꾸는 인생이니 바라는 바도 제각각일 법하건만 천편일률, 여러 갈래 품지 못하니 이는 당장의 옹색한 사정 곧 저마다의 처지에 드리운 그늘이 짙고 깊기 때문 아닐지요. 각각의 바람이 한 곳으로 쏠리고 한 자리만 탐하는 풍경, 이건 이것대로 참 서글픕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매인 인간種의 형편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현장이라니 아, 착잡 -_-;; 이처럼 한 자리로'만' 모여드는 형편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면 '꽃길만 걷자' 아닐지요. 물론 대부분, 연예인을 비롯한 (화자인 자신 아닌 자신이 이르는 말이 가리키는 그) 대상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표현합니다만. 그러나 결국 '대리 만족' 아닌가요. "그이가 실제 족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타적이지 않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표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떤가요. '자기만족'을 '대리'하는 것뿐이라면? 이기利己에 지나지 않음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 않나요.
저마다의 바람이래야 죄다 물신物神의 신전神殿만 찾아들 것 같으면, 배금拜金을 척도로 사는 모습 재단하니 우열과 순위 벗어나기 어렵겠죠. '잘 산다' 할 때의 '잘'이 가리키는 바가 그저 부富일 뿐이면 그야말로 살풍경殺風景 아닐 수 없겠습니다. 언제/어디서/어떻게 그리고 왜를 소거시킨 1인용 부富. 1차원 사고를 바탕으로, 누려라 풍요! 울려라 풍악~이랄까;; 이 모습 두고 '잘 산다'라고 할 것 같으면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격格, 굳이 유지할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애쓰지 말고 내려놓는 편이 차라리.. 법을 비롯한 기타 등등 사유재 보호를 근간으로 구축된 '상부 구조'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재장전은커녕 내팽개치는 마당이면 새삼 뭐;;
초월超越도 포월匍越도 방편, '넘어선다' 할 때 그 본의라면 휩쓸리는 자리에 이목이 따라붙게 두질 않고 오히려 그렇게 쏠리는 이면異面 탐사에 게으르지 않은 형편을 가리키는 것. 그러니 real을 sur-(超)함도 섬세가 기본이어서 절로 그늘 살피고 이내 소외 보듬는 데에로까지 나아가게 되지 않나 싶고요.
詩를 비롯한 말글은 물론이거니와 광의廣義의 예술 또한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 싶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읽고 쓰며 생각을 거듭하여 다듬는 근본은 모름지기 꽃길'만' 걷겠다는 자뻑 서사의 한심함을 성찰하는 데서 시야를 넓히며 주변을 돌(아)보는 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해하기보다 보살피는 존재, 그럴 수 있는 힘을! 정신 가다듬는 데서 찾는 것이고 말글로 닦아 기르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가려거든 꽃길'만'이 아닌 오히려 '꽃 지는 길' 그 낮은 데로 갈 수 있어야 사람이지 싶습니다.
길을 가려면 꽃길로 가라 꽃길 중에서도 꽃이 지고 있는 길로 가라 움켜잡았던 욕망의 가지를 놓아버린 손처럼 홀가분한 꽃들이 바람의 길로 가는 그 길로 가라 꽃들은 그늘지고 어두운 곳까지 나풀나풀 다가가고 꽃이 진 자리는 어느 순간 당신 삶의 의미를 바꾸리라 삶이 가볍고 경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