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어도적당하오.)
제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오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육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칠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팔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_이상,詩 「오감도 - 시제일호」 전문
군계群鷄 가운데 일학一鶴을 꿈꾸는 서사, 아 이거 뭐랄까 좀 시들하고 어지간히 지루했나 봅니다.
아마 그래서 한 마리 까뮈 아니 ㅎㅎ 까마귀[一烏]의 perspective 빌어다 감도瞰圖 그려낸 게 아닐까 싶고요.
이리 생각 뻗치니 건축(학)도 '김해경'을 끄고 off / 시인 '이상'을 키는 on, 그 시간에 절로 주목하게 되더군요.
그제야 다르게 읽힙니다, 詩 '오감도 시제일호'.
詩에서 표현된 공간에 시간을 대입하니, '질주하는 아해'들이 시계열에 늘어놓은 낱낱의 프레임 같더란 말이지요.
이를테면 13번째 아해가 12시에서 1시로 질주하는 아해로 보인달까..
무서워하는 자아(또는 타자)/무서운 타자(자아) 역시 서로를 mirroring 하는 갑을甲乙로도 보이고, 당초 이러한 사태가 한 사람 내에서 on/off 거듭하니 다름 아닌 일상이라는 데에로 미치는 생각.
어쩌면 안팎으로 중첩되는 이런 변증 구도 통해 일보 전진하니, 그야말로 이진二進 거듭하는 개인이고 사회 아닌가 싶고요.
긍정적으로 보자면, 적막한 시간을 달려 박명薄明으로 향하는 주체의 탄생을 예감하는 詩?!
오독일망정 나름의 해석은 이처럼 또 과감해집니다.
하니 어쩌면 '이상李箱'이라 스스로를 명명한 의도야말로 또한 '육면각六面角' 속에 저를 가두길 '무한無限'으로 거듭하는 이 system/계界를 이루는 기성의 몸[體系]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자 속의 사내'는 詩를 방편 삼아, 시공을 축으로 붙들린 당장의 좌표 그 한계에서의 도약한달지. 그 시도, 의지를 드러내는 몸부림이 고스란히 옮겨진 매뉴얼이 詩랄까.
아무튼 '막다른 골목'이 '열린 길'로 탈바꿈되는 사태를 주조하는 것이야말로 주체로 도약하는 구름판 임을 느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무명無明에 처處한 개인이 어두운 시간을 헤쳐 박명으로 나아간다?!
이를 머릿속에 그려보니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아해'의 '질주'는 꼭 '질주' 아닌 것도 같습니다.
달음질이 빚는 자전/공전, 좌회전 거듭하는 세계라니.. 이렇게 보니 오묘하네요.
어쩌면 쳇바퀴 굴리는(구르는?) 낱낱의 일상, 그 쓸모라면 결국 역사의 진(일)보로 맺히나 싶고요.
어쩐지 '현란을 극한'* 자정을, 기어코 뚫고 나아가고 말겠다는 의지가 샘솟지 않습니까?!
'이때 뚜우 하고 (…) 사이렌이 울'*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_'
*이상, 단편 「날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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