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세상은 풀 수 없이 흩어진
암호의 숲이었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숲에 갇혀
흔들리는 하나의 의문부호로 서서
몰아치는 폭풍의 위험을 고작
오십 킬로 미만의 체중으로 버티며
보이지 않는 세상 저편의 미지를 향해
손끝만 스쳐도 속절없이 울리는
악기처럼 울었다
나의 소망은 육법전서의 모범답안으로
인생의 갖가지 검열을 통과하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부의 반란으로
십계의 계명을 파계하며
미망의 골목길을 숨어 다녔다
앞뒤로 쫓아오는 추적의 포위망 속에서도
눈먼 장님으로 타오르던 산불
그 미혹이 그때는 암호의 해답이라 생각했다
이제 와서 누군가 나의 등을 치며 웃는다
<첫번째 단추부터 잘못 끼운 실수다
잘못 푼 암호는 정답이 아니다>고
그러나 나는 항의한다
그 시절 내 안의 열쇠는 오직 느낌표 하나
그 여린 감성 하나로
만신창이되어 세상을 열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푼 실수가 나의 정답이라고
_홍윤숙,詩 「정답正答」
시인의 시집 『낙법놀이』에 실린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관조觀照라는 표현과 짝하여 어울리는 詩로 더할 나위 없겠다 싶은 느낌이, 민둥산 벌판과 다를 바 없는 이 속에서 쑤-욱! 솟구치네요. 이 느낌, 소주 한 잔 털어놓고 돼지 등뼈 씹으면 그 '열쇠'로 각 떠지지 싶을 정도입니다. 캬~~
가출 탕자의 은혜로운 귀가 서사는 여러 장르 다양한 버전으로 숱하게 복제되었지요. 그런데 어째.. 하나같이 미심쩍으니, 이 느낌 온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남으니, 이 잔여 참 껄끄럽습니다;;
그게..
직업적인 (…)꾼들이 동서고금의 (…)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끄집어내다가 요리조리 장난질을 해서 써먹고 또 써먹어 단물은 다 빼먹고 씹어뱉은 찌꺼기뿐이다. 말장난질에 닳고닳아빠진 말뿐이다.
_박완서, 「닮은 방들」 中
와 다르지 않다 여겨서인지, 아니면..
이 여자들이 부처님을 온갖 번뇌, 집착, 욕심으로부터 해탈한 분으로 숭앙하고, 저다지도 간절한 에배를 드리고 있다고 봐주기는 암만 해도 좀 민망한 것이, 절하는 데만 열중해 있는 여잘수록 물욕적인 것을 짙게 탁하게 풍기고 있었다. (…) 노스님의 법문이 막바지에 이른 모양으로 (감히 그른 말씀이라고 반박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옳은 말씀인데도, 전연 심금에 와 닿지 않고 공소한 게, 다분히 쇼적이다.
_박완서, 「부처님 근처」 中
라고 느끼기 때문인지. 아예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나라는 인식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파계 후 방황 중에도, 그러다 기어코 저 자신 박살나기까지 꿋꿋하게 저를 밀어붙이는 존재라니. 저를 길들이려는 운명의 손길을 거부하는 존재라니. 게다가 솟구친 의문의 노른자로 바위 전면 칠갑, 제 전 존재를 처바르며 항의하는 인간이라니. '그 미혹이 그때는 암호의 해답이라 생각'한 바를, 세속의 잣대로 가늠하는 그 '실수'라는 것이야말로 바위에 부딪친 자인 자신 만의 '정답'임을 선언하는, '만신창이'된 운명을 적극 긍정하는 '반항하는 인간'이라니. 마치 제 힘 다할 때까지 튀어올라 결국 누구 손아귀 일 뿐임을 가늠 후 내려 앉은 벼룩과 같은 존재랄까요.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 뭐 알겠는데 그러면 어떠냐는 식? 제 실수를 경작하여 답을 수확한 자 만의 어떤 여유를 생성/생산하는 존재-되기에 성공했달까요. 어쩌면 이야말로 조적照寂과 적조寂照 간 쌍조雙照 쌍적雙寂 이룬 상태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심우尋牛/십우十牛와도 겹치는 듯싶으니 참 묘합니다.
이 세상, 이 부조리한 영내에서의 탈영이라면, '보이지 않는, 세상 저편의 미지를 향'하기 위해서라면 자살도 문제로 여기지 않을 듯싶은 인간種의 자발적 원대 복귀. 탕자 복귀 서사가 자아내는 은혜(의 참모습)에는 어쩌면
부조리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귀결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사막'(부조리)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나는 마땅히 견지해야 한다. 나에게 그처럼 분명하게 나타나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비록 적대적인 것일지라도 지탱해야 한다." 아니, '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탱해야 한다. 앞서 카뮈는 "각성 끝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은 자살일 수도 있고 원상복귀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자살이 적절한 결말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제 막 검토해보았다. 남은 것은 '원상복귀'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반항과 통찰력을 간직한 채' 인간의 삶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즉 '비통하고도 멋들어진 내기를 지탱하는 것',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카뮈는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_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역자 김화영 <작품 해설> 中
이와 같은 선언이 배경으로 자리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말이지 '만신창이되어 세상을 열었'으니 '누가 뭐래도 내가 푼 실수가 나의 정답'!!
아, 머시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