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 책방 아저詩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이 마음에 서늘한 긴장을 유발하는, 예술. 이는 세계상의 반영이니 데칼코마니décalcomanie인 동시에 수집하여[collecting] 어지른 마음의 난장亂場 가운데서 그 면면으로 (브리)콜라주[(bri)colage] 하니 낯설 밖에. 콜렉터collector의 편집으로 재구성된 세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흔들리게 마련. 기성旣成에 고착된 상태의 안정이 실은, 착취의 토대 위에 구축된 공중정원으로 사상누각沙上樓閣과 다름 없어 일부 만이 편취하고 있음을 폭로, 이러한 진실을 의식의 수면 위로 인양하길 지속함으로써 출렁이게 만드는, 모든 분야(문학/인문/사회/예술/건축 뭐든 간에 세계 이해와 그를 토대로 재구축하는 방편의 차이일 따름이니)에서 출현하는 전위[avant-garde]는 그래서 항시 불온不穩 딱지 따놓은 당상. 어쩌면 좌우로 통칭할 수 있는 진영을 진정 가르는 건, 이러한 데서 이는 불편을 직시하고 감수하는 편으로 한 걸음 떼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기성의 안정에 안주하고 마느냐일 것. 불안 야기를 혐의로 연좌 거는 데에 기꺼이, 연대로 맞설지 아니면 제 밀실로 파고들지를 선택하는 시험대로 여길 수도 있을 것. 그저 늘어진 팔자의 권태를, 시답잖은 감상과 맞바꾸는 BG(부르주아지)의 소비 전형과는 그래서 천양지차(때문에 저 같은 책방 아재가 좀 못땅하게 여기는 축이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이 전위 흉내로 자본 일선에 들어선 제 이름으로 추수, 제 곶간에 쟁여두기 바쁜 치들. 이 작자들이 카프카 원용하며 내면의 얼음바다를 깨는 도끼 운운하는 꼴. 차마 욕은 못하겠고 야 이 氏, 자라는 세대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_'). 한편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연봉 (최)약체를 감수하는 일부 시인이 생산하는 시는 그래서 낭중지추 되는 듯. 허기로 벼린 말끝으로 세계의 풍요를 파고들어 낱낱의 갈급에 숨길을 열어주니. 파격다운 파격, 이런 것이야말로 제격으로서의 파격일 것.




어.. 그러니까 詩를 모두어 생산된 시집 읽을 적에도 (브리)콜라주 해보는 것도 방편이겠습니다. 한 시인의 해당 시집이어도 좋겠고, 전작 가운데 여러 편을 겹치어 보아도 좋겠고. 다른 시인의 시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문인의 글도. 굳이 이런저런 장르니 따위의 벽에 국한될 이유 없으니 분야를 종횡무진. 어차피 피차 술이부작이면 다종 다양의 면면이래봐야 하나의 세계를 제각각 딛고 선 자리에서 감각한 끝에 취한 것이므로 외려 이러한 데에 걸리는 바 없이 마음 오가는 그대로 재구성하여 나름 이해의 토대를 돋우는 편이야말로 참 '독자의 탄생'을 자발적으로 주조하는 게 아닐지요(뭐 이런 생각을 하는 터라 한편으론 그 서평?이니 하는 형식이랄까 뭐 그렇게 굳어지는 판이랄지 따위를 좀 답답하게 느끼는 형편이긴 합니다;; 책방 아재로 참 주제넘은 소리인데요. 어떤 의미에선 제 주제를 넘어서는 퍼스펙티브야말로 인간이라면 꼭 보여야 마땅하잖나 싶기도 해요. 아니라 하면 말고요. 왜냐하면 저는 계속 그럴 거거등요 ~ '_').




그런고로 오늘은, 여러분이 참 좋아하는 시인 최승자, 저도 참 좋아하는? 존경하는 시인인데요. 그분 시집 가운데 그래도 근작에 속하는 『쓸쓸해서 머나먼』을 다시 읽어봅니다.


무엇이 세계를 삭게 할까요?

(…)

위대한 비밀은
자본이었습니다

융성합니까?
풍성합니까?

헛돌고 헛도는
헛바퀴들의 이 유연한……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를
어쩔 수가 없어서
나도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가구가락*이라던가요)

_최승자,詩 「왜 세계는」 中
*중국인들이 코카콜라를 일컫는 말


가구가락可口可樂, 이게 내' 입의 즐거움 위해 이 삶 꾸리니 이 내' 궤적인즉 그야말로 구업口業을 길로 지음 같아 1차 쇼크. 그런데 이조차 자본제 아가리에 이르는 길로써 그야말로 식도食道. 나'를 삼켜 씹고 뜯고 맛보는 이 生의 저 거대한 아가리口의 즐거움樂을 상상해봅니다. 더하여 이에 이르는 길을 내' 스스로 짓고 있구나~라는 데에 생각 미칠 즈음. 아뿔싸 이미 저 아가리 저, 저, 저


문이 탁 하고 닫혔었다
뒤편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세계
그 안으로 급하게 빨려들었다

(왜 그 세계는 내 등 뒤에 있었을까?)

잠이 시간이었습니다
모릅니다
그간의 나와
저간의 나와
혹은 저 너머의 나와
한 육체였었으나
이미 한 생각이었으므로
자본도 월급도 못 되었던
내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도 아닌 나를 누군가 흔든다
나는 내가 아닌데 누군가 나를 흔든다
조용히 흔들린다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서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차례 詩,「문이 닫혔었다」, 「다른 생각」, 「흐린 날」, 「한 세월이 있었다」)


자본제 아가리로 난 식도. 그에서 달아나려니 마주한 1인용 사막¹. 이 광야를, 세기를 횡단하는 탕아로 한 사내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사내라 해서 꼭 특정한 건 아니고 이를테면 개명 후 바울로 일컫던 이로도 보이고 파계 후 저잣거리로 든 원효로도 보이고 등등(우선 떠오르는 예를 들었을 뿐, 딱히 성별과도 무관할 겁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에 불과한 주제. 그렇지만 이 날 것이 점화시킨 언어로 불 타는 내면, 타오르는 의식의 숯검댕으로 [人]visible, 존재 도약을 이루게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思과 깨달음覺을 날줄씨줄로 엮어 짠 겉감에 空의 안감을 대어 박음질하니 비로소 누설되는 무일물의 투명일 테니. 활자를 데불고 지면을 활보하는 시인의 卍行. 이렇게 미망迷妄의 문門설주에 활자로 해[日]를 그려 넣는 시인이야말로 사이(門+日=間)의 경계인. 이때 사각四角으로 네모진 책冊, 시집이야말로 사각공간思覺空間이다 싶구요.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을

아침 식탁, 커피 한 스푼의 無
커피 물 한 잔의 無限과 섞어

아침마다 그 하늘 虛 한 잔을 마십니다.
담담하게, 밍밍하게

_詩, 「시간이 사각사각」, 「구름 한 점 쓰다 가겠습니다」, 「하늘 虛 한 잔」 中
일부 떼어 엮음


재미있지 않습니까? 보잘것없는 이 삶에 다발로 묶이는 의미의 연쇄라니. 이를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됨으로 해서, 이 자본제가 규명하는 의미 바깥에서 나'는 나름의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구나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니 말입니다. 나'는 이런 게 참 고맙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미끄러지길 멈추지 않고 달음질하니 또 詩입니다. 지루할 틈이 없어요 ~ '0'/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내 詩 밭은 황폐했었다
(…)
아예는, 다른, 다른, 다, 다른,
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
이사 가고 싶다

_「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中
한 사내가 머리를 쓸어 넘긴다.
바람은 그의 등 뒤로 분다.
한 세기를 분다. 수천 세기를 분다.
한 사내가 영원히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_「한 사내가 영원히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中


이미 off-side 감행하는 전위, '그의 등 뒤로' '한 세기를' '수천 세기를' 부느니 바람. 흔들리는 마음 앞에, 바람도, 깃발도 아닌 '한 사내가 영원히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니 ~ *0*



¹ 사각공간 북클럽 【1인용 사막】은, 이 '한 세월이 있었다'라는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 비롯하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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