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꽃 Jun 14. 2024

나의 텃밭 농사는 뭐다?

내가 분양받은 텃밭은 땅 주인이 소유한 텃밭농장 세 곳 중 하나, 주인이 사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농장의 일부이다. 널따란 마당의 쉼터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이 가장 크게 들리는 우리 텃밭농장엔 약 50개의 분양 텃밭이 있다. 4월 5일 개장해 두 달이 넘은 지금, 텃밭들은 모든 종류의 초록을 모아놓은 듯 바라만 보아도 휴식이 되는 그린 필드를 이루고 있다.     


어디, 다른 집 텃밭 구경 좀 할까? 밭고랑을 따라 걷다 보면 풉 웃음이 난다. 비슷비슷한 작물들을 키우지만 주인에 따라 텃밭의 모양이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텃밭의 모범 사례로 제시해도 좋을 만큼 작물 상태와 관리 상태가 좋은 텃밭, 씨를 뿌리고 자주 와보지 않아 채소들을 잡초처럼 만들어놓은 텃밭, 흔치 않은 채소를 키워 눈길을 끄는 텃밭, 한 가지 작물만으로 밭을 채운 텃밭, 여러 종류의 채소가 자유분방하게 섞여 정신이 없지만 재미난 텃밭……. 텃밭의 모양은 주인의 성격대로 나오는 것 같다. 내 밭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정돈된 느낌을 유지하고(대체로 가로세로를 맞춘 작물들), 그러면서 또 너무 고지식한 질서는 싫어 몇 군데는 파격을 주거나 살짝궁 비뚤배뚤 리듬을 주고(가지 두 개는 사선으로, 얼갈이배추를 솎을 때는 중간중간 삐죽삐죽 튀어나오게), 그런 가운데 준비는 없이 모험정신을 보여주고(미친 듯 자라는 수박은 텃밭농장 세 곳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만 시도한)……. 딱 보면 텃밭에다 내 성격을 구현해놓은 것 같다.     


그제는 되도록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성격을 보여줬다. 무엇에 한번 정신이 팔리면 그 외의 것은 돌아보지 못하는 ‘정신 나감’. 부채만 한 방울토마토 잎들이 너무 많다 싶어 가위로 잘라내기 시작했는데, ‘그냥 놔두면 잎들이 양분을 다 빼앗아간다’는 이웃 농부의 말이 텃밭의 십계명처럼 떠올라 충성! 충성! 하듯 자르다 보니 토마토 나무가 불쌍할 만큼 앙상해졌다.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아찔했다. 으악,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친 짓’을 하는 동안 ‘채소의 잎은 광합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계명은 왜 생각나지 않았을까. 이 아이들, 앞으로 힘들어할지도 몰라.     


내가 키우는 채소에 죄책감을 느낄 줄은 몰랐다. 내가 정말 미쳤지, 중간에 고개를 한 번만이라도 들어 얼마나 잘라냈는지 확인이라도 하지, 얘들아 미안하다…….  텃밭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의 싱싱한 기분은 실종되고, 무겁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돌아왔다. 사랑한다는 티만 요란스럽게 냈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공부하지 않는 철부지 엄마처럼 텃밭 아이들을 즉흥적으로 다뤄온 무책임함이 ‘개’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정신 차리고 모범적인 농부가 되자는 의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채소들까지만 키우고 텃밭 농사는 마무리해야 할까……, 마음이 해저물녘처럼 사위어 기운이 빠졌다. 처음으로 텃밭에 가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어제, 다시 텃밭에 갔다. 수박은 물을 많이 많이 먹는다니 잠깐 물이나 주고 오자, 이런 이유를 생각해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가기 싫은 마음이 하루이틀 이어지면 정말 텃밭에서 마음이 떠나고 결국 망해먹을 것 같아서……. 실패를 하면 배울 것이라도 있지만 포기를 하면 그냥 망해먹는 것이다. 순전히 내가 못나서 포기하는 거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적어도 지금 밭에 있는 아이들이 발달과정을 다 마칠 때까지는 포기하지 말아야지.      


이날은 밭에서 힐링을 하는 대신 마음을 밭에다 내려놓았다. 

‘내 능력과 성격과 기질, 내 그릇의 크기를 인정하고 뭐든 딱 그만큼만 하자.’ 

언제부턴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은 텃밭에서도 적용해야 마땅했다.      


그래, 나 실수로 방울토마토 나무를 심란하게 만들어버렸어. 하지만 잎으로 가는 양분을 토마토에게 더 많이 주려는 의도였어. 시간이 지나면 방울토마토 이파리가 또 여기저기 삐죽삐죽 나와 하루가 다르게 자랄 거야. 토마토 알이 더디 자라거나 더디 익으면 좀 작게, 좀 적게, 좀 천천히 먹으면 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자기변명과 자기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 그건 텃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다발보다 예쁜 루꼴라 다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