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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Jan 24. 2024

프랑스에서 400일 - 3)릴3대학




미술학교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순서상 릴3대학 Universite Lille 3 부설 어학원의 이야기를 먼저 써야 할 것 같다.


사실 어학원까지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장기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대학 부설 어학원에 등록해서 학생비자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것 같기도 하다.


릴3대학은 공과대학인 릴1대학만큼 거대하진 않았고 작고 아담한 문과대학이었다. 학생이 엄청나게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시설은 조금 낡았지만 적당히 쓸만했고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못쓸 정도로 더럽지는 않다.


프랑스에 한국처럼 새로 만들어서 번쩍거리게 깨끗하고 좋은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려웠다. 그러다 보니 꼭 깨끗하고 새로 만든 것이 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파리의 대부분의 건물들 문화재로 지정하여 수리를 할 수 없게 막아버렸다.

나중이 돼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런 것들이 프랑스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런 프랑스적인 것들은 아주 조금씩 나의 사고를 점점 변화시켰다. 금 싫증 난다고 버리고 새로 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고 유행이 지나 못쓰게 되지 않도록 유행을 타지 않는 쪽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와 맞는 않는 소비행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들은 한국이나 미국등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프랑스란 나라에서 배울 점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점심때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점심을 만들어 먹으면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당시의 루틴이자 일상이었아마도 그동안의 인생에서 본 영화보다 더 많은 영화를 을 것 같다.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도 잘하지 못하던 나는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실력이 월등하게 상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어는 너무 부족해서 써보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영어는 버벅거리며 할 수는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영어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가끔 길거리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도 꽤나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영국유학을 다녀온 선배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서바이벌 잉글리시를 프랑스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나중에 프랑스어가 늘고부터는 영어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어 수업은 기본적으로는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지만 도저히 설명하기 힘들 때에는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마저 모른다면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


초급반에서 시험에 통과하면 중급반으로 넘어갔는데 학생들을 유급시키기로 악명 높은 프랑스의 대학은 어학원에서도 동일하게 절반이상을 낙제시켰다.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언어를 정말 효율적으로 잘 가르친다는 것이다. 영어이렇게 배웠더라면 훨씬 영어를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른 과목과는 다르게 언어는 확실히 배우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프랑스는 자국의 언어인 프랑스어가 영어에 밀려 2~3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어학교습법 대해 연구를 많이 했을 것이 분명하긴 했다.


언어 지식을 그냥 대략적으로 주입한다기보다는 최대한 학생들끼리 실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새로운 동사라던지 어휘 문법을 소개해서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아주 잘 짜인 커리큘럼이 느껴졌다.


수십 년 경력의 노련한 조련사가 여유 있게 훈련을 시키는 느이랄까. 프랑스에서 가장 감탄한 것은 프랑스어 교습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Cite Scientifique 전철역


기숙사가 있는 시테 시엉티피크역에서 학교 있는 뽕  부아역까지는 전철로 3 정거장 거리였는데 전철표 도 아끼고 동네 구경도 할 겸 그냥 걸어 다니게 되었다.


지금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3킬로 미터정도인데 그렇게 다고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구글맵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장기 체류를 결심한 상태에서 어학원을 다닌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서 일자리는커녕 일반 사람들과 대화도 잘하지 못하는데 학교라도 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프랑스어를 조금이라도 빨리 익히기 위해서 한국사람들을 멀리 하며 지내다 보니 재미있게도 한국어실력이 점점 떨어졌고 특히 글을 쓰려고 할 때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점이 신기했다.


감옥에 가서 독방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인생에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몇 달간 혼자 지내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나날들이었다.


한국에서 전 직장동료가 보내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세 번 정도 읽을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글이란 것을 써보기 시작한 것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마의산의 주인공 한스처럼 나도 요양원에서 진료를 받는 대신 어학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인생이 흘러갈 때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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