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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Oct 14. 2024

전쟁과 평화 제4장 대화




희미한 조명아래 탁자를 앞에 두고 스미스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며 앉아있다.


잠시 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얀이 군인들에 의해 끌려온다.


"이런.. 얀장군!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당장 수갑을 풀어리세요!"


스미스는 젊은 병사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한다.


"네! 사령관님!"


병사들은 얀의 수갑을 풀어주고 방을 나가고 얀은 손목을 매만지며 탁자 건너편의 스미스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만 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는 것이?"


"직접 보는 것은 아마도 오래전 그 콘퍼런스 이후 처음일 겁니다. 그때는 제가 감히 얀장군님을 쳐다보지도 못할 때였지요"


"그렇군요. 그때는.. 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렇게나 빠르게 승진하시다니요."


"얀장군님보다야 못하겠지요. 한대 우시겠습니까?"


스미스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내밀어 보지만 얀은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거절한다.


연기를 한 모금 뱉은 뒤 스미스가 담담하게 하기 시작한다.


"장군님"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까? 혹시 그것을 부정하시는지요."


작정한 듯이 묻는 스미스의 질문에 얀은 작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전지전능한 신의 흉내를 내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럽니다."


"신의 흉내를 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옳은 일인지 심사숙고 한 끝에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당연한 듯 대답하는 얀의 말을 듣고 스미스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면서 이유 없이 손바닥을 쳐다본다.


"그 신념이.."


스미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게 일어나서 괜히 서성거린다.

얀은 허공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그런데 식사도 못하신 것이 아닙니까? 식사하시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아.. 그럼 실례지만 저는 조금 먹겠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요."


스미스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뭔가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휴대폰을 보고 얀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잠시 후 병사가 접시에 담 햄버거를 가지고 들어온다. 두툼한 고기패티에 신선해 보이는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누가 봐도 최고급 요리사의 작품이다.


스미스를 기쁜 표정으로 양 손바닥을 비비다가 접시를 받아 탁자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주저 없이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입가에 묻은 것을 냅킨으로 닦낸다.


그리고 르게 한 입 더 베어 물고 계속 우물거리며 스미스가  다시 말을 꺼낸다.


"그런데 그 신념이 말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한다.


"모두의 신념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민주적으로 투표를 해서 결정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주적이라.."


스미스는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결심한 듯 말한다.


"혹시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의 총통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얀은 살짝 눈을 감고 대답한다.


"수십 아니 수백만의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이 된 것이 사람들은 당연히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주적인 정부를 강제로 무너트렸다고 생각하는데요."

스미스살짝 격양된 어조로 말한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얀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스미스 탁자를 부서져라 쾅-하고 내려치며 소리친다. 쨍그렁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탁자아래로 떨어져 나뒹군다.


"88퍼센트!! 무려 88퍼센트의 독일 국민이 아돌프 히틀러를 국가원수로 선택했습니다."


얀은 말없이 스미스를 바라본다.


" 잘난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가두고 괴롭히고 죽였단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민주주의가 항상 완벽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얀이 따져 묻스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을 계속 이어간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영장류라서 무슨 다른 동물들보다 아주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며 거만을 떱니다."


얀이 할 틈을 주지 않고 스미스는 계속해서 떠어댄다.


"아.. 영장류든 뭐든 다른 동물들보다 강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종들을 동물원에 가두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약육강식"


계속 듣고 있던 얀이 한마디 한다.


"이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얀이 묻자 스미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우리는 그냥 동물입니다. 뭐라도 된 것처럼 까불어봐야 서로 간에 고통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럼 평생 그냥 전쟁이나 하면서 살다가 죽자는 말입니까? 밀림 속의 동물들처럼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자는 배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배가 고프면 잡아먹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밥을 해 먹기를 요구하면 안 됩니다. 사자는 육식동물이니까요."


"순순히 잡아먹혀라 이겁니까?"


"물론 반항은 해도 괜찮습니다. 당연한 생존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설교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자도 피곤하니까요."


그때 갑자기 병사 한 명이 급하게 뛰어들어와 스미스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말한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스미스는 굳은 표정으로 병사와 함께 방을 나선다.





[다른 취조실]


"사령관님의 딸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인이 말을 하면 몰라도.. 신분증도 없고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엉망이 되도록.. 누가 이런 거야 도대체?? 누가 책임질 거야! 사령관이 오시면 어떡할 거냔 말이다!"

병사의 말에 화가 난 장교가 분해서 소리친다.


"얼마나 난동을 피웠으면 그랬겠습니까? 우리 애들이 미친놈들도 아니고.. 어찌나 힘이 센지 우리 애들 중에 걷어 차여서 넘어진 병사 한 명은 팔이 부러져서 깁스까지 했다고 합니다."


"사령관님 딸이니 어련하겠냐만은.. 이거 정말 큰일이네.. 어떡하면 좋지.."


새치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장교가 아이들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요란한 구두소리와 함께 스미스가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다.


"내 딸 줄리가 여기와 있다고??!"

"네! 사령관님!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스미스는 피투성이가 된 줄리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찌나 심하게 당했는지 군데군데 옷이 찢어져 너덜거리며 핏덩이와 얽혀서 뭉개져있는 부분도 보인다.


"아니? 누가 우리 딸을.. 폭도들 짓인가??! 이런 쳐 죽일 놈들.."


병사는 장교의 눈치를 보고 장교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그게 저희도 말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현장이 엉망이었던지라.."


장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얼버무린다.


"일단 당장 구급차 부르고.. 나중에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이상"


"네!"


병사와 장교는 바로 서서 경례를 하고 사라진다.




"으.. 음.."


줄리가 신음소리를 내며 뒤척인다.


"줄리! 내 딸 줄리야 정신이 드니??"


"스.. 미스.."


"그래 아빠다!! 우리 딸 이제 괜찮아 안심해"


"스미.. 스를.. 탄핵하라.."


"뭐..라고?"


"미치광이 스미스를.. 끌어내려야.."


줄리는 몇 마디 말을 뱉다가 다시 정신을 잃고 황해서 다리가 풀린 스미스는 쓰러질 뻔하다가 벽을 짚고 간신히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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