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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Jul 07. 2021

[단편 소설] 취향

다만 소수에 속함으로써 성립되는 폭력

친구가 게임 속 캐릭터와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또 다른 친구로부터였다. 심심이랑 결혼하겠다고? 듣고도 기가 차서 반 농담으로 받았다. 하지만 며칠 후 만난 친구 앞에서 나는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꺼낼 수도 없었다. 사랑? 그래 사랑이라면 사랑일 테다. 친구는 자기가 결혼할 사람이라며 가방에서 닌텐도 DS를 꺼냈다. 이윽고 능숙한 손길로 부팅을 하고서는 내게 게임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소개해줬다.


“안녕하세요, 테헷~★”


외양은 2D였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는 3D였다. 마음속으로는 이 미친놈아 정신 차리고 빨리 현실로 돌아와! 내일모레 서른인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타박하고 싶었다.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겨주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친구는 행복해 보였으니까. 서른에 다가오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그건 70억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그 삶은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 언젠가의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해외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늘 나를 따라다니는 게이 녀석이 한 명 있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상대는 집요했고 1년 이상 내 주변을 기웃거릴 만큼 소심했다. 어느 날은 캠퍼스에서 나를 어쩌다 마주친 척하며 이런저런 개수작을 부리길래 나는 일갈했다.


“어디 내 앞에서 오이 비누를 들이밀어!”


영어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말하자면 게이의 이유 없는 뒤쫓음은 그 후로도 몇 번 반복됐다. 그쯤 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겠지. 내가 골반이 큰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성욕을 느끼는 것처럼 당신도 날 보며 성욕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그걸 받아들이고 나자 내 앞에서 감자탕을 후후一불어주며 액정으로 가져다 대는 친구도 이해가 됐나 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했다. 하지만 친구는 행복한 표정으로 감자탕 셔틀질을 그만두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셔틀 하나는 죽여주더니, 이제는 일진이 아닌 2D에게까지 진상하게 되다니. 기가 막혔지만 나는 마음속으로만 이리 읊조렸다.


외로웠나 봐, 너.

정말 죽을 만큼 외로웠었나 봐.


캐릭터에게 감자탕을 먹이려고 드는 그 미친 짓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까. 만약,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진실을 알 수 있는 건, 내 앞에 있는 이 친구뿐이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건 세치 혀가 아니라 두근대는 우리의 심장일 테다. 누가 감히 타인의 사랑에 대해 판단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내 삶도 아니고 내가 살아갈 삶도 아닌데. 감자탕이 다 식어 빠질 때쯤, 그러니까 친구의 사이버 여친과의 대면이 끝날 때쯤 나는 나직이 말했다.


“여소 시켜 줄까?”


그러나 친구는 정색하며, 식어 빠진 감자탕의 뼈다귀보다도 구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우리, 네네 쨩 앞에서 그런 말하지 말라능!”


말투는 방사능에 중독된 것 같았고 목소리는 금형 프레스 기계만큼이나 날 서 있었다. 그건 켈빈의 절대 영도만큼이나 차갑고 CNC 선반의 날만큼이나 칼 같은 단호함이었다.


“어머! 영규씨의 여친은 저라구욧一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테헷~♥”


이쪽이 인간의 음성에 더 가까웠다. 닌텐도 풀 볼륨으로 울리는 여자의 음성이 감자탕 집 안에 퍼지자 모두가 우리를 쳐다봤다. 여자는 없는 데 여자 목소리가 난다. 사스가 니뽄……. 그 장인정신을 이런 데 발휘하고 있단 말이지? 요망한 닌텐도! 나는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넌 안될 놈이야. 어릴 때부터 인기가 없었지만 이젠 남자로서 완전히 끝났어. 전자 여친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다니, 오호통재로다. 여자는 없는 데 계속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나는 뭇 그 몰이해의 시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친구가 씹덕이라…….”


나는 왜 사과했을까?


친구가 게임 속 그녀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낸 건 그로부터 1년 후였다. 그사이 나는 취업을 해 꽤 유명한 외국계 기업에 출근하고 있었다. 연봉은 달콤했고 업무량은 씁쓸했다. 현실과 타협하자 나는 사람보다는 밤새워 마시는 맥주와 캔커피와 더 친해져 있었다. 소위 재미없는 어른이 돼가고 있는 셈이었다. 평소 이런 청첩장이 오면 짜증이 치밀었다. 친하지도 않은 데 보내온 청첩장들은 마치 이중으로 날아온 벌금 고지서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청첩장은 묘한 호기심과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누구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이, 친구 어머니가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게임 속 캐릭터와 결혼한다는 건 어떤 걸까? 수많은 감정의 뭉치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며칠의 철야를 거쳤다. 어렵사리 기획안을 기한보다 하루 일찍 끝내 최종 결재까지 받았다. 겨우 만들어낸 휴일이었다. 한 걸음도 떼기 힘든 피로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나는 청첩장이 적힌 곳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면도하고 정장을 입었다. 결혼식은 도심 속의 작은 예식장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나는 내 BMW 320을 타고 가려다 말고, 그냥 지하철을 탔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가상현실과 사랑하는 친구?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들은, 아니 내 친구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증강현실과의 사랑은 이렇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인가. 한때, 내 유년 시절에 했던 수없이 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결말처럼 그들은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보러 간 것인지. 다만 그 희뿌연 함 속에서 명료한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결혼식장의 풍경은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오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수많은 사람이 친구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서로 어색히 인사하는 그들의 눈빛은 누가 봐도 사이버상에서만 친한 인맥이었다. 그런 거로군. 너는 그런 세계에서 이런 인간관계를 맺어왔구나. 어쩌면 인간의 본질은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건 우리가 고독과 단절을 참을 수 없는 성마른 존재라는 뜻이겠지. 그날 내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본 것도 그런 거였다. 


소통에 대한 갈망.

그런 이들을 낙인찍고 싶어 하는 매스컴.

친구를 인정할 수 없어, 부재한 부모님의 자리.


세상은 언제나 소수에겐 폭력이다. 피해를 끼치든 그렇지 않든 다수의 몰이해는 소수에게는 압력이다. 이윽고 결혼식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닌텐도 DS와 함께 친구는 식장 앞으로 걸어왔다. 하얀 턱시도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마치 코난의 괴도 키드와도 같은 복장이라 우스꽝스러웠다. 또 그 옆에는 ‘네네’라고 부르는 거대한 3D 폴리곤이 마치 사람처럼 친구의 팔을 걸고 들어오고 있었다. 식장 천장에 달린 기기를 보니 거기서 쏘아 내려지는 홀로그램 같은 건가 보다. 만질 수는 없으나 느낄 수는 있는, 기술은 어느새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었다. 


어린 시절 토요명화에서나 봤을 법한 세기말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우리는 외로워서 기계에 모든 걸 맡겨버리지는 않을까? 인간은 로봇에게 지배당하고 싶지는 않아도 의지하고는 싶을 거다. 관계로 인한 상처가 두려워 내면으로 파고드는 나약한 개인의 종착역은 결국 고도로 발달 된 심심이와의 소통일 뿐이다. 외로움은 인간인 이상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거니까. 나 또한 너무 외로워서 잠 못 드는 밤이 있으니까.


플래시가 터졌다.

친구의 팔을 잡은 홀로그램은, 아니 이제는 제수씨가 될 그녀는 수줍게 인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다. 결혼식은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고 뭇 기자들이 하이에나처럼 친구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친구는 그쯤이야 별 것 아니라는 듯 당당히 말했다.


“신혼여행은 괌으로 갈 생각입니다. 네네쨩이 가고 싶어 한 곳이거든요.”


그러고는 닌텐도 DS를 소중히 접어 자기 셔츠 포켓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멀어지는 친구의 뒤통수를 보며, 때리기 딱 좋은 그 반질반질한 머리통에서 빛이 나는 걸 보았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나는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영규야!”


친구가 나를 돌아봤다. 반가운 눈길이 와줘서 고맙다는 웃음으로 변했다. 나도 말없이 친구를 향해 웃었다. 퀭한 눈 사위와 피로에 전 어른의 안색으로 나는 말했다.


“행복해라.”


친구는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턱시도를 입은 채, 허리를 꼿꼿이 편 새신랑은 멋있게 식장을 나갔다. 왼 가슴 주머니에는 그의 신부와 삶이 담겨 있었다. 친구가 나가고 나자 한 떼의 기자들이 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오프라인 친구는 나밖에 없음을 알았나 보다.


“방금 나간 분과 친구인가요?”


기자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방금까지 보았던 내 친구의 뒤통수를 떠올렸다. 만져주고 싶은 찰진 뒤통수였다. 아니, 쓰다듬어 주고 싶은 따뜻한 뒤통수였음을 나는 이제 깨달았다.


“네, 그런데요.”


나는 짤막이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는 먹이를 찾은 포식자처럼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윽고 그는 너무나도 뻔해, 이제는 지루해져 남루해진 질문을 했다.


“친구분이 게임 속 캐릭터와 결혼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내 대답이 나의 표정이 전파를 타고 흘러가겠지. 뭇 사람의 무더기가 내 말을 통해 친구를 기억하고 판단하고 또 비판하고 조용히 이해하겠지. 인간은 결국 자기 말고는 그 무엇도 보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함으로써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련하고 미욱한 짐승이다. 그러나 외로워서 또 너무 외로워서 비판하며 무리 짓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힘들었을 거예요. 걔는 누구보다 더 힘들었을 거야.”

“네, 뭐라고 하셨죠?”


기자가 내 말을 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오늘도 부인과 아이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이 가련한 개체를 위해 나는 조용히 말했다.


“취향이니까 존중해 달라능……!”


이튿날 신문에는 씹덕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결혼식이라는 기사가 나가겠지. 하지만 상관하지 않을 거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삶이 있듯이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다. 나는 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지 않았다. 인간을 증명하는 것은 문답이 아니기에, 그날 너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기에 그것으로 됐다. 남들이 뭐라든 삶이라는 건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지극히 외롭고도 개인적인 도정이다. 나는 식장을 나왔다. 방금까지 내 등과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는 사라져있었다. 그저 묘한 설렘이, 이제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달콤한 여독이 내 안에 남아 있을 뿐. 나는 원피스의 주제가를 불렀다. 남들이 들을 만큼 크게 아주 크게 불렀다.


“거센 바람~높은 파도가~우리 앞에 몰아쳐도 결一코오一두렵지 않아~”


연말에 받은 성과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드디어 알 것 같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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