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미국인가?
1군(강원도 지역) 인사를 맡았다. 내 역할은 이렇다. 1군에 속해있는 부대 중에 한 곳이 공격을 받으면, 보충대 또는 다른 부대를 피해 입은 곳으로 지원해 준다. 다른 부대 중령이 날 데려갔다.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모니터만 봤다. WAR GAME이 시작되자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간부들은 매우 바빠졌다.
전화를 받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어디로 뛰어간다. 팩스가 오간다. 종이를 들고 사령관에게 전화를 한다.
난 임무가 있어도, 누군가 내게 지시를 내리거나 찾지 않았다. 그냥 사무실의 공기만 느끼고 있었다. 딱히 쉬는 시간도 없다. WAR GAME은 24시간 돌아간다.
모니터와 2시간 동안 눈싸움을 하는데 지쳤다. 밖으로 나왔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보기 좋았다. 야광색 조끼를 입고 러닝을 하는 미국 사람이 여럿 보였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느린 걸음으로 학교를 다녀오는 흑인 학생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하이"를 한다. 이곳은 한국에 있는 '미국'이다.
밖으로 나온 병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부대 소속이다. 그래서 서로를 '아저씨'라 불렀다. 서로의 사단마크를 보고 호기심을 가졌다. 여기서 전투병은 나밖에 없었다. 여기 왜 있는지 그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24시간 돌아가는 WAR GAME이라 밥 먹는 시간도, 취침하러 가는 시간도 없었다. 누구의 지시도 없기에 알아서 다녀왔다. 숙소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근처 부대로 갔다. 취침 점호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인원 파악이 되지 않아서다. 숙소에 없으면 사무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카츄사들이 이용하는 식당을 이용했다. 식당 옆 PX에서 영어로 나오는 방송이 틀어져 있다. 당연히 PX병도 카츄사다. 그들은 미군복을 입고 있었다. 흙에서 구르는 수색대대원들과 얼굴빛이 달랐다. 솔직히 부러웠고, 신기했다.
여기서 먹는 짬밥은 달랐다. 나오는 식자재가 달랐다. 축축한 빵과 싸구려 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는 없다. 이곳에서 먹는 햄버거는 달랐다. 한마디로 싸재 맛이 느껴졌다. 밥을 먹고 난 후, 서로 친해진 다른 부대 아저씨들과 미군부대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서울 안에 있는 '미국'이다.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미군 기지다. 난 이곳으로 유학 온 거 같았다. 우리 병사들은 WAR GAME에서 소외된 전력이다. 사무실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찾는 이가 없었다.
친해진 아저씨들과 미군 기지를 나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WAR GAME 참가증을 목에 패용하고 있었다.
"이걸로 나갈 수 있을까?" 이기자 부대 아저씨가 말했다.
"한 번 해보죠." 백두산 부대 아저씨가 대답했다.
미군기지 출입문에 우람한 팔뚝을 가진 미군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HELLO~"하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미군도 우리를 막지 않았다.
되려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