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하지 못했다
우리 반 부역장과 나는 상반기 근무평가를 엉망으로 받았다. 폭탄주로 마음을 적시며 서로를 위로했다.
부역장은 내년에 임금피크제에 들어간다. 그래서 올해 퇴직금 영향으로 근무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
난 같은 4급 부역장들이 4명, 그리고 강력한 김 차장이 있다. 자연스레 '양'은 내 차지다.
그래도 막상 '양'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부역장님, 하반기 근평에 열심히 하는 우리 막내직원 한 번 '수' 만들어봅시다"
다른 반 부역장중 한 분은 본인반 조원부터 사회복무요원까지 끔찍이 챙겼다.
이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폭탄주를 마신김에 불만과 건의를 적절히 섞어서 건넸다.
"코와붕가 차장님이 나한테 불만이 있구먼.. 그래요. 노력해 볼게요"
구석에서 우리 막내 직원은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홀짝거리며
"부역장님과 차장님이 잘 되셔야죠."라고 했다. (그래, 나도 잘 되고 싶다!)
우리 반 부역장은 하반기에 근평을 잘 주기로 약속을 받았다.(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퇴직금 때문이다)
나는 굳건한 포지션으로 '양'은 내 차지다. 다행히 표창을 받아서 그나마 감사했다.
회식 다음날, 부역장은 역장을 보자마자 막내 칭찬과 하반기 근평에 잘 봐달라고 쑥스러운 요청을 했다.
역장은 근평 때문에 곤란스럽다며 대신에 근무평가서에 꼼꼼하게 실적을 써 놓으라는 힌트를 줬다.
"코와붕가 차장, 내가 역장님께 막내 직원 말씀 드렸어."
"아유.. 잘하셨습니다."
난 막내직원에게 역장님이 보도록 각종 기안과 보고를 막내직원 이름으로 올리도록 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빌드업을 해 나갔다.
한 번은 막내직원이 유실물을 찾아 주었다며 승객이 홍삼음료를 선물로 줬다. 지난번 부역장 면접을 보고 난 후 역장님과 같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 냉장고에 있는 홍삼음료가 생각났다. 부리나케 냉장고에 있는 홍삼음료를 역장님께 드렸다.
"역장님, 이번에 우리 막내 직원이 친절하게 유실물을 찾아 주어서 승객께서 사가지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잘했네요."
부역장은 약속대로 받았다. 나는 약속은 없었지만 '양'을 받았다. 보고 싶지 않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릭을 했다. 점점 근무평가에 덤덤해지는 나를 본다. 힘내라 '코와붕가 차장'
막내 직원에게 확인해 보라고 말을 건네지 못했다. 주변에서 노력해도 근무평가를 주는 건 역장이다.
오늘따라 얼굴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혹시 확인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안내 센터에서 근무를 하는데, 막내 직원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왔다.
"이게 뭐야?"
"차장님,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좋은 평가받았습니다."
"이야 축하해~"
"감사합니다."
막내 직원은 늦은 나이로 입사해서 동기들보다 열심히 했다. 그런 모습에서 신뢰가 갔고, 합당한 평가를 받게끔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앞으로 이번에 받은 평가가 동기부여가 돼서 승승장구해 나가길 바란다.
이번에도 '양'을 받았다. 차장을 달고서부터 이어지는 '양'이다. 그래도 막내 직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다. 내 주변 사람이 잘 되면 언젠가 내게도 영향이 온다고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보다는 축하해 주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오늘도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