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대환장 파티
조선의 스물다섯번째 왕 철종(재위 1849~1863)은 솔직히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는 편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 '존재감'이란, 미디어에의 노출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는 말은 곧 미디어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콘텐츠화'가 덜 되었다는 뜻이다.
철종은 '강화도령'이라는 즉위 전의 특이한 이력 덕분에 나름대로 매력적인 소재로 보이지만, 재위기간이 짧고, 그마저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라는 두 세도가문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던, 유약한 임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것이 아마도 철종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간택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철인왕후>는 철종과 철인왕후를 메인 캐릭터로 전면에 내세운 유일무이한 콘텐츠다. 물론, 철인왕후의 몸에 21세기 남성의 영혼이 들어간다는, 황당하기도 하고 식상하기도 한 판타지적 설정이 가미되었지만, 그럼에도 소재 자체는 신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챙겨보려고 했다. 웬만하면.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고증을 다 내팽겨쳤지만, 감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혜선과 김정현, 두 배우의 연기가 좋아서 볼 만 했다. 특히 철종의 목에 비녀를 들이대던 신혜선 배우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한 이유는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야! 본격 왕의 한테 반말하는 중전)
하지만, 5화 엔딩을 기점으로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그 이전의 회차들에서 고증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가 가벼운 분위기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조선을 모티프로 한 AU(Alternative Universe)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톤의 에피소드들이 가미되자,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니 몰입이 깨지고, 몰입이 깨지니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렇게 굉장히 오랜만에 본방을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어져 버렸다. 펜트하우스 시즌2 빨리 보고싶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철인왕후>의 고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호칭이나 전각의 명칭 같은 기본적인 용어 사용에 치중되어 있다. 물론 그것만 문제라는 건 아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 의금부장이 대조전에 칼을 자고 들어와
후궁을 '자가님'이라고 부른다던가, 자가면 자가고 마마님이면 마마님이지 자가님은 무슨 끔찍한 혼종인지
창덕궁 희정당을 '희정전'이라고 부른다던가, 그 와중에 대조전은 그대로 고증한 게 코미디
의금부의 수장이 되는 걸 '소박한 꿈'이라고 부른다던가... 그거 너네 아버지보다 높은 자리다 병인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헌종과 효정왕후 홍씨를 삭제해 버린 것이 처음부터 제일 불편했다.
철종은 조선에서 제일 졸속으로 즉위한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점이 철종이 헌종보다 한 항렬 위라는 것이다. 아래 가계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사도세자의 아들 하면 정조만을 떠올리지만, 사도세자에게는 서자도 있었다.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등이 그들인데, 철종은 그 중에서 은언군의 후손이다.(참고로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이 은신군의 양자가 되면서 왕실의 직계 혈통과 가까워졌다) 은언군은 짧은 생애 내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수도 없이 역모의 수괴로 지목되었고, 결국 사사된다. 이 때 은언군의 후손들도 대부분 죽음을 맞지만, 서9남인 이광은 용케 살아남아 자손은 보전했다. 그 이광이 바로, 철종의 아버지가 되는, 가계도상에 전계대원군이라고 적혀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이 된다. 하지만, 철종의 선대 왕인 헌종은 사도세자의 고손으로, 철종보다 한 항렬 아래이다. 조카뻘이라는 뜻이다. 선대 왕보다 윗 항렬에서 후대 왕이 나올 수 없다는 건, 중국과 조선을 막론하고 당연한 진리였다. 철종의 지위는 처음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왕대비 혹은 대왕대비, 그러니까 선대 왕의 왕비였던 여성들이 셋이 된 것이다. 가장 서열이 높은(?) 순원왕후를 기준으로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까지 생존해 있었는데, 이렇게 되자 세 왕후를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겼다.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왕의 어머니는 대비, 왕의 할머니는 대왕대비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철종대 이전까지 대비는 왕대비의 줄임말이었다. 즉, 선대 왕의 왕후에 대한 호칭이 (왕)대비-대왕대비의 2단계였던 것이다. 시어머니-며느리-손자며느리의 3단계를 구분하고 규율하는 호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성종 때, 자성대왕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인혜왕대비(예종비 안순왕후), 인수왕대비(덕종비 소혜왕후)의 세 대비가 생존했던 시기가 있지만, 이 때는 인혜대비와 인수대비가 동서지간이었기 때문에, 둘 모두를 왕대비로 호칭하고, 사적인 관계에서 차등을 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동안 왕대비의 준말로 쓰이던 대비를 왕대비의 며느리에게 주는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그에 따라 헌종비 효정왕후는 명헌대비가 되었다.
철종의 미약한 존재감은, 단순히 왕위계승서열이 낮다거나 유년기를 강화도에서 보냈다거나 하는 원인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꾸어 생각해보면 당시 철종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효종의 직계였다. 살아있는 왕손들 중에서는 계승서열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다.
역적의 혐의를 쓰고 세상을 하직한 왕자군의 손자까지 찾아내야 할만큼 직계 왕손은 씨가 말랐고(...) 왕위를 이을 후손이 없다는 건 곧 왕실의 불안정함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불안정성은 족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선은 전례와 예법으로 굴러가는 나라였다. 왕위를 계승하면서 항렬이 거꾸로 올라가는 초유의 사태와, 그로 인해 야기된 '대비'라는 새로운 호칭의 개발은 불안정한 왕실과 더 불안정한 왕권의 징표였다.
그래서, 이 길고 긴 글의 결론은,
희정전이나 자가님이나 의금부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왕대비-왕대비-대비의 3단계는 남겨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라고 쓰고 분노라고 읽는다이다.
철종의 불안정한 왕권을 베이스로 깔고 싶었다면 말이다.
제작진과 애청자들은 중국 웹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판타지, 라는 말로 모든 논란을 피하고 있지만, 아예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내세운 <해를 품은 달>이 향원정의 (구)명칭이 취로정이라는 것까지 고증한 걸 보면 솔직히 변명에 불과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희정전과 자가님과 의금부장과 효정왕후의 삭제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고증해"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