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왜 제 책을 내려고 하세요?

by 러너인

2024년 4월 1일 출근 직후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혹시...? 두근대는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N 출판사입니다. 정승우 작가님 맞으시죠?" "네.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출간에 관심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저는 메일로 이것저것 간 보는 걸 싫어하고 관심 있으면 바로 전화해서 약속부터 잡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입니다. 자비출간은 하지 않고 작가님 비용 부담은 없습니다. 1쇄는 00부이고 종이책 정가의 00%를 인세로 책정하고 있습니다. 작가님, 혹시 전체 원고는 다 준비가 되셨을지요?"

"샘플원고 외에 대부분 소재는 제가 4년 간 sns에 꾸준히 써온 내용들이고, 짧게 쓴 글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 들어갈 꼭지 형태의 완전한 글로 다시 다듬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투고한 샘플원고 외에 몇 개 없어서 초고 작업에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원고를 더 쓰셔야 하시는군요. 저와 함께 하시는 작가님들이 대부분 직장인이셔서 책 원고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괜찮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드릴 수 있으니까요. 더 자세한 건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계신 곳이 어디신지요? 전 오늘도 괜찮습니다. "

"저는 수원입니다."

"아! 전 근처 OO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사시네요."

"그러네요. 그럼 제가 오늘 오후 2시쯤 작가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잠시 후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오시기 바랍니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회의실로 달려가서 리딩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N출판사에서 전화 주셨어요. 출간에 관심 있어서 전화했다고 하시네요.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셔서 오늘 약속 잡고 바로 뵙기로 했어요."

"와! 승우님, 축하드려요. 미팅 잡히면 사실 99% 진행되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자가 거절하지 않는 이상요."

"네. 정성스럽게 꾸준히 책을 내시는 것 같아서 저랑 잘 맞으면 오히려 큰 출판사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그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대형출판사와 작업했다가 후회한 적 있어요. 한 권씩 세심하게 들여다봐주고 저자 의견도 물어봐주는 출판사가 훨씬 좋더라고요. 나중에 저자 입장에서도 후회도 없으시까요. 오늘 미팅 파이팅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N출판사, 아까 그분이었다.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드리고 캠퍼스 내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혹시 직함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저는 1인 출판사 대표입니다. 큰 출판사에서 20년 이상 편집 등 출판에 관한 전체 프로세스를 다하다가 이제는 독립해서 1인 출판사를 차리고 제가 혼자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1인 출판사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평소 내 머릿속 출판사의 이미지는 편집, 디자인... 등 여러 분야가 나뉜 분업화된 모습이었다. 대표님 혼자서 다 편집, 디자인, 퇴고, 출간까지 가능할까? 내 표정에서 불안이 읽혔는지 덧붙였다.

"작가님들이 착각하시는 것 중 하나가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홍보를 엄청 잘해주는데, 작은 출판사에서 내면 거의 홍보를 안 해준다고 아시는데요. 사실은 안 그래요. 큰 출판사도 이름 있는 작가들, 소위 돈 되는 작가들이 쓴 책은 여기저기 홍보하고 밀어주지만, 이름 없는 초보작가들 책을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는 않아요. 결국 초보작가님들 책은 큰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나 홍보 잘 안 해주는 건 비슷해요."


혼자서 다 하신다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그럼 책을 출간하면 어디에서 유통되나요?"

"유통망을 통해서 전국으로 유통되죠.(웃음) 교보문고, 영풍문고, 각종 대형서점을 포함해서요. 유통은 제가 알아서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죄송해요. 제가 출판계를 몰라서 1인 출판사 개념이 생소해서 여쭤봤어요."

"괜찮아요. 또 궁금하신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대표님은 왜 제 책을 내주시려고 하세요? 투고를 시작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신 곳도 있지만, 대표님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출간에 관심을 보여주신 분은 없었거든요."


"작가님 달리기 이야기가 예쁘지 않아서요. 그게 좋았어요. 보내주신 출간기획서를 보고 저는 느낌이 왔어요. 이 사람 글은 진짜구나, 정말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글이 가치 있다고 믿어요. 달리기 책은 많이 있지만, 거의 예쁘고 멋진 달리기 이야기만 하는데, 작가님의 이야기는 예쁘지 않았거든요. 진짜 살아있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 쓸 수 있는 작가님은 드물어요. 예쁜 이야기는 좋아 보여도 금방 질려요.


작가님 SNS에도 들어가 보았어요. 작가님이 쓴 소개와 인스타그램 글이 똑같았어요. 이 사람은 진짜구나. 정말 자기 이야기구나! 그것까지 확인하니까 책을 내고 싶어서 바로 연락드렸어요. 책은 물성이 있어요. 영원히 끝까지 남죠. 출판사도 좋은 글을 쓰는 분과 작업을 해야 같이 성장할 수 있어서 아무 책이나 내지 않아요. 계약을 하고도 작가님들이 보내주시는 원고가 출판까지 하기 부족한 수준이라고 판단이 서면 저는 책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중간에 멈춘 적도 있어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심스럽게 다른 출판사에서 제안했던 자비출판이나 예약판매, 또는 저자부담금 같은 게 있는지 여쭸다.

"저도 출판사에 다닐 때 저자구매, 예약판매, 자비출간., 선금내고 하는 방식 등 별의별 방식을 다 해봤어요. 하지만 저자 본인이 원하면 모를까 출판사에서 먼저 저자에게 일정 수량의 책을 구입하라고 권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작가님과 순수한 형태로 계약한다고 보시면 돼요. 작가님은 한 푼이라도 비용을 댈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세요. 출판사인 제가 비용을 대고 책을 만들어 드리는 거고, 작가님은 원고만 제대로 써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표준계약서로 계약하고 인세를 드릴 거예요."


책을 출간하는데 출판사에서 최소 천만 원 이상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첫 책을 내는 초보작가인 나에게 기회를 주신 출판사 대표님께 감사했지만, 혹시라도 책이 잘 안 돼서 손해를 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무 경력도 없는 제 뭘 보고 책 내시려고 하세요?"

"인생 뭐 있나요? (웃음) 그냥 가보는 거죠. "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믿고 내 이야기를 밀어주시는 대표님께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야겠다고, 나를 믿어주신 만큼 더 잘되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표님, 지금 여기서 바로 계약하나요?"

"아니요. 제가 오늘 중으로 표준 계약 안을 보내드릴 테니 보시고 수정이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논의해서 진행하시죠. 참, 작가님이 원하시는 책 출간시기가 있으세요?"

"지금이 4월 초니까... 제 생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거든요. 4개월이면 초고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까지 초고를 드리는 거로 진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올해 전체 출간 스케줄을 잡아야 해서 여쭤봤어요. 그 내용으로 출간계약서 초안을 잡아보겠습니다."

"대표님.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너무 기쁜 날이라 꼭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요."

"하하. 그러시죠. 저도 좋습니다."


예쁘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너도 예쁘지 않아서 예쁘다. 참 예쁘다. 예쁘지 않은 나의 달리기 이야기가 간다. 앞으로 몇 달간 일하며 틈틈이 사투를 벌이며 글을 쓰고 퇴고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꿈을 위해 끝까지 행복하게 달리기로 했다.


2024년 4월 2일 (화) 오후 7시, 계약서 초안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N출판사 OOO입니다. 계약서 초안을 보내드립니다. 확인 후 협의 내용이 있으시면 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4월 3일 (수) 오전 7시, 답장을 보냈다.

"N출판사와 인연을 맺을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저와 제 글을 믿고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신 계약서 초안은 검토결과 특이사항 없습니다. 원고 최종 인도시기는 2024년 8월 15일(목)로 기재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고 대표님을 믿고 달리겠습니다. 원고든 방향이든, 전문가이신 대표님 의견에 맞추어 완성도 높은 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N출판사의 얼굴이 되는 책을 쓴 작가로 기억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날 밤, 계약서를 품 안에 넣고 잠이 들었다. 아기를 안듯 조심스레 배 위에 올린 뒤 두손으로 출간계약서를 끌어안았다. SNS에 작가가 되겠다는 선언을 한지 딱 3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앞으로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출간계약은 42km 마라톤의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곧 내게 닥칠 일들을 그땐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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